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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이제는 익명의 노동자가 한 개인으로 보여야만 하는 때 -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 / 씨네토크 [영화]

현실의 추악함, 영혼의 숭고함

by 김하은 에디터
2026.06.17 14:33

 

 

사람들은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고 한다.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아름답고 달콤한 도시. 그러나 어떤 이에겐 생존의 공간이다. 술레이만의 이야기다. 그리고 또 다른 술레이만들, 즉 이주 노동자와 배달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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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아프리카 기니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온 술레이만의 망명 심사 직전 이틀을 뒤쫓는 영화다.

 

제77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화제작은 파리의 연인도, 파리의 예술가도 아닌 파리의 노동자를 택했다.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그들이다.

 

술레이만은 살아보겠다고 파리에 도착해 아등바등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안고 분투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에 전화해 오늘 밤 몸을 뉠 침대를 예약한다. 낮에는 겨우 산 자전거 하나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음식 배달을 하고, 틈틈이 난민으로서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한 심사 대본을 마치 주문처럼 중얼중얼 외운다.

 

기니에서 자신이 민주군 연합당이었다고 인증해 줄 만한 서류를 제작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줄 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배달 앱은 자꾸만 본인 인증을 요구하고, 계정 주인은 약속한 돈도 제때 주지 않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하느라 쉼터행 버스는 겨우 타거나 혹은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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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시간의 촉박함과 돈의 모자람 끝에서 망명 심사 날이 되고, 그간 준비하고 꾸민 이야기를 심사관 앞에 꺼내놓는다. 심사관은 수없이 들었던 레퍼토리 속 빈틈을 발견하고 술레이만에게 말한다. ‘당신의 진짜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 영화의 원제는 직역하자면 ‘술레이만의 이야기’다. 늘 타인의 이름으로,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배달원으로 익명성 아래 숨겨졌던 그가 처음으로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 과정이 바로 영화에 녹아있다.

 

보리스 로즈킨 감독은 “도시는 무대이고, 배달원들은 그 안의 그림자다. 나는 그 그림자를 빛 속으로 끌어내고 싶었다”고 말하며 우리가 어떻게 자연스레 배달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을 우리의 시선에서 제외하는지를 지적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노동자 이미지의 어떤 총합이 이 휴먼 드라마의 목격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 되고,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눅진한 현실에서 사회를 탓하기보다 잘해보려고 묵묵히 하루 어치의 최선으로 발버둥 치는 사람은 아름답다. 또 숭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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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된 이 영화의 씨네토크에는 ‘빠트롱 나와’로 화제가 된 일명 ‘코리안 트래버’, 자타공인 프랑스 현실 전문가 정일영 교수가 함께했다. 정 교수는 이날이 근 30년 만의 영화관 방문이라며 남다른 소감을 알렸다.

 

우선 정 교수는 이 영화가 파리의 민낯을 까발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즈킨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주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번엔 단지 배달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리는 두 가지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눈에 비친 파리는 즐겁고 볼거리도 많고 로맨틱하다. 반면 그곳을 현실로 삼고 사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보인다. 실제로 정 교수는 유학 생활 중 ‘거의 즐거운 날이 없었다’고 역설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영화는 파리의 낭만을 일부러 걷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의 현장을 보여주었을 뿐이란 게 그의 입장이다. 또 이민자 주제가 대두된 이유로 프랑스의 ‘égalité’ 정신, 즉 평등 정신의 약화를 꼽았다. 프랑스는 인종, 민족,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정신을 자부심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 외국인의 주택보조금을 폐지한다거나 Eu 외 국가 출신 유학생의 학비를 대폭 인상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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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으로 마지막 장면을 택하며, 현실이라면 다르게 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망명은 정치적인 이유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알렸다. 이를 비롯해 프랑스 전반에 관한 여러 ‘썰’들을 언급하며 본인 이야기 중 95%는 거짓이라고 해명하며 농담을 던졌다.


정 교수는 이 영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며,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공부보다 먼저 사람이 되란 교훈을 전하기도 했다. 정 교수가 언급했듯, 우리나라도 해당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힘든 육체노동은 자국민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남아 있지 않는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술레이만 역을 맡은 비전문 배우 아부 상가레는 영화 촬영 이후 실제 난민 심사가 통과되어 무사히 프랑스에 체류가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그와 잠시 함께한 48시간 같은 1시간 30분이 아직도 아련하다.

 

시드니 거리에서 본 한 택배기사의 밑창 닳은 신발이 함께 떠오른다. 영화는 오늘(6월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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