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게임에서 발견하는 삶의 순간 - 연극 'FBW'

글 입력 2022.11.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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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1번지 7기동인] 2022 가을페스티벌_통합 포스터.jpg

 

 

 

게임 속에도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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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삶의 축소판이다. 둘은 여러 가지로 닮았다. 둘 다 주어진 조건이 있으며 그 조건 안에서 일정한 성취를 달성하면 보상을 얻는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삶을 대리 체험하곤 한다.

 

게다가 오늘날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히 게임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게이머가 게임 스트리밍 방송을 하며 시청자에게 후원을 받거나 희귀한 게임 아이템이 현실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것을 보면 게임 세계 안에서의 권력과 경제력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는 게임이 이야기 소재가 되는 것을 넘어서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 자체만으로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 페스티벌 네 번째 작품 FBW는 사흘간 'FBW'라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fun, friend, free라는 세 가지 가치를 표방하는 게임 공간에서 유저들은 브릭으로 자신만의 건축물을 만들고, 그 건축물을 바탕으로 시티를 조성한다. FBW는 fun, friend, free를 통칭하는 F와 브릭의 B, 월드의 W를 따서 지은 제목이다.


공간적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어떤 브릭을 모으느냐, 그리고 그걸 조합해 어떤 건축물을 만드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으므로 과거 많은 사람이 여기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 랭킹 제도가 도입되면서 경쟁이 시작된다. 이제는 일주일 단위로 유저들의 ‘좋아요’ 수가 반영된 가상 시티의 랭킹이 발표되고, 랭킹 진입 후 100위권 밖으로 벗어나면 가상 시티는 사흘 안에 삭제된다.


연극은 삭제를 앞둔 ‘글램 시티’가 배경으로, 이곳에 남은 레어 브릭을 차지하기 위한 사흘간의 쟁탈전을 담는다. FBW에서 자신이 만든 가상 시티가 랭킹 안에 드는 유저들은 현실에서도 브릭 크리에이터로 인기를 끌고 돈도 벌 수 있다. 그 결과, 현실에서의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려운 이들이 레어 브릭을 차지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게임에 뛰어든다.

 

 

 

게임 맵을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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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연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게임 맵을 무대에 그대로 구현한 점이다. 게임이라는 설정을 살리기 위해 실험적인 무대를 택했다. 우선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아예 없다.

 

극장에 입장하면 공간 전체가 게임 맵으로 꾸며져 있고, 관객석이 곳곳에 띄엄띄엄 놓여 있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게임 캐릭터고, 관객은 게임 맵 속 일종의 배경이 된다. 인물들은 관객석 바로 앞에서 또는 뒤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돌아다닌다. 관객은 무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안에서 그것을 체험한다.


무대 곳곳에 보이는 훌라후프와 풍선, 튜브, 형광색 선 등도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과 함정 등을 나타낸다. 이곳은 게임 속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물과 소품에 게임 규칙이 적용된다. 각 인물의 움직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 속 캐릭터와 비슷하다. 게임 특유의 경직되어 있으면서도 과장된 동작을 배우들이 소화해낸다.

 

채팅을 치면서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키보드 치는 시늉을 하고 채팅 말투를 쓰거나, 외국 유저와 소통하기 위해 번역기를 돌리는 등 온라인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웃을 법한 부분이 곳곳에 있다. 시티가 랭킹 밖으로 밀려나 삭제되는 상황은 무대가 어둠에 잠기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렇듯 FBW는 게임 속 상황이 어떻게 무대에서 구현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만, 온라인 게임의 환경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사전에 관객에게 간략한 게임의 설정과 규칙을 알려줘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설정과 규칙이 꽤 세세한 데다가 연극의 진행 속도가 빠르므로 인물이 행동하는 동기와 대사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넘겨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브릭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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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제도 도입 전 유저들이 FBW를 플레이하는 이유는 대부분 현실에서 갖지 못하는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그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사회에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곧 자본의 문제다. 돈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그렇기에 돈과 상관없이 원하는 브릭을 모으면 자신의 공간을 갖고 꾸밀 수 있었던 FBW는 현실의 도피처이자 자존심을 지키고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랭킹제도가 도입된 FBW는 이제 현실과 다를 바 없는 곳, 더 나아가 현실에서 성공을 거머쥐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게임 속에서 전문 업자가 나타나 다른 유저들이 모은 브릭을 교모한 방식으로 빼앗고, 대학교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현실을 떠올린다. 현실에서 도망쳐 온 곳에서 또다시 현실의 법칙을 따라야 할 때, 어떤 유저는 이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복잡하지 않다. 삶의 축소판인 게임, 일종의 대안현실로 만들어졌지만 점점 현실을 닮아가는 게임 공간에서 캐릭터가 플레이하는 게임을 체험하며 우리의 삶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우리가 좇고 있는 것은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좋다니까, 또는 희소성이 있다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 한정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인가. 순수한 재미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에서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이제는 본래 목적인 재미마저 찾지 못하는 상황일 될 때. 우리는 그 일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극중 인물들이 다시 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힘을 합쳐 민트색 브릭을 가져올 때다. 금전적 가치가 없는 이 브릭을, 추억이 담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갖고 싶어한다. 이 브릭은 '그루브 구역'에 있는데, 여기서는 세 명의 유저가 함께 동작을 맞춰야지만 브릭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 희귀 브릭을 짧은 시간 더 많이 찾는 데만 집중하던 이들은 어설프게 합을 맞추며 즐겁게 브릭을 가져온다. 세 사람이 합을 맞추기 위해 몇 번이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은 유치하고 무의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FBW 게임공간이 지향하는 세 가지 가치(Friend, fun, free)가 모두 발현되는 순간이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거창한 게 아니라 순간순간 함께하는 사람과 경험하는 단순한 즐거움이 전부라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희귀 브릭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브릭을 찾아서. 모험은 계속된다.

 

 

*사진: 프로젝트그룹 쌍시옷 ⓒ이미지 작업장 박태양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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