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셔터 소리가 들려.”
영화 〈여름의 카메라〉가 내세운 한 줄 카피다. 시사회를 보고 나서야 이 문장이 얼마나 정직한 카피였는지 알았다. 이 영화는 사랑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사랑이 도착하는 순간의 소리를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 단순한 멜로의 언어가 아니라, 정체성의 언어가 된다. 아빠도, 여름도, 결국 같은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그 소리를 숨겼고, 한 사람은 그 소리를 따라갔다.
상영관 불이 꺼지고, 화면이 켜지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처음 들리던 순간. 나는 내가 무언가를 좋아할 때 어떤 소리가 났었는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잊고 산 시간이 꽤 길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여름, 카메라를 다시 들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영화는 아빠와 함께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여름이, 아빠가 떠난 뒤 카메라를 놓아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일.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세계는 조용히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다 운동장에서 축구부 에이스 연우를 보고 첫눈에 반해, 여름은 다시 아빠의 카메라를 든다. 연우에게 줄 사진을 현상하던 여름은 필름 속에서 아빠가 고등학생 때 찍은 사진을, 그리고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비밀을 발견한다. 멈춰 있던 셔터가 다시 눌리는 순간, 멈춰 있던 진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필름 카메라를 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필름은 찍는 순간 결과를 알 수 없다. 현상이라는 시간을 지나야, 어둠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듯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기다림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과 닮아 있다. 노출이라는 단어가 사진에도, 커밍아웃에도 똑같이 쓰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름이 필름을 현상하며 아빠의 비밀과 마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떠받치는 은유로 읽힌다.
학교라는 세계, 여름을 설명하는 문장들
영화는 퀴어라는 소재를 학교라는 작은 세계와 아이들의 풋풋한 얼굴로 풀어낸다. 성스러운 감독은 작은 영화 속 공간일지라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 말 그대로, 스크린 안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느라 숨이 가빠지지 않는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흔히 조지 버나드 쇼의 문장으로 알려진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은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청춘은 젊음을 낭비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후회한다. 하지만 영화 속 여름은 그 젊음을 흘려보내지 않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받아낸다.
여름은 레즈비언이다. 여름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여름은 여름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게,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를 설명하는 문장은 셀 수 없이 많고, 그중 어느 것도 틀리지 않다. 영화가 정체성을 하나의 선언으로 묶지 않고, 여러 문장으로 흩어놓는 방식이 좋았다. 사람은 한 줄로 요약되는 존재가 아니니까.
연우라는 인물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축구부 에이스, 중성적인 매력. 전형적인 첫사랑 서사라면 남자 주인공이 서 있었을 그 자리에, 영화는 성별의 경계를 흐려놓은 인물을 세운다. 첫눈에 반한다는 익숙한 클리셰를,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채워 넣은 셈이다. 그 낯선 얼굴 앞에서 여름의 표정이 무너지는 순간, 영화는 여름의 성장에 주목하게 된다.
여름을 연기한 김시아는 〈미쓰백〉과 〈우리집〉, 〈길복순〉을 지나 최근 화제작 [기리고]까지, 줄곧 성장하는 얼굴을 연기해온 배우다. 이번에는 또 다른 결의 표정을 보여준다. 마루를 연기한 곽민규는 독립영화계에서 다져온 단단함을 그대로 가져와, 어른의 온도를 만들어낸다.
아빠가 물려준 것
아빠는 학령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쓰던 카메라를 물려주기로 한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아빠의 초등학생 시절 카메라를, 중학생 때는 그때의 카메라를. 두 사람만의,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죽음으로 끊겼다. 그리고 여름은 끊어진 약속 대신, 끊을 수 없는 비밀을 물려받았다.
그 카메라 안에서 발견한 사진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다. 어쩌면 아빠도 한때 숨겨야 했던 마음이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카메라라는 물건은 그렇게, 취미를 물려주는 매개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것을 물려주는 매개가 된다. 여름이 마주하는 첫사랑과, 아빠가 평생 가두어두었을 마음은 결국 같은 모양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한 세대는 그 두려움을 숨겼고, 다음 세대는 그 두려움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 차이만큼이, 부녀가 살아낸 시간의 거리인 셈이다.
그 두려움 앞에서 여름의 편이 되어준 건, 곽민규가 연기한 마루였다. 마루의 말처럼, 마주해야 한다. 끝내 그래야 한다. 그래야 두렵지 않다. 보기 전까지, 마주하기 전까지 품었던 두려움은 마주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어른이라는 존재가 청춘의 서사에서 훈계자가 아니라 동행자로 그려진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따뜻한 쪽으로 한 걸음 더 가 있다.
마지막 찰칵, 같은 선 위에서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 하나. 텅 빈 사거리, 흰 횡단보도 선들이 사방으로 갈라지는 자리. 그 한가운데, 두 줄로 그어진 노란 선 위에 여름이 서 있다. 빨간 배낭을 메고,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그저 그 선 위에 멈춰 서 있다가 앞으로 나아간다.
카메라는 그 모습을 위에서, 멀리서 내려다본다. 드론으로 찍은 듯한 그 거리감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노란 선은 원래 넘지 말라는 뜻으로 그어진 선이다. 차도 위의 그 선 위에 한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는 것. 그건 가야 할 방향을 잃었다는 뜻일 수도, 두 갈래 길 중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멈춰 서는 것도 하나의 용기라는 걸, 그 장면에서 배운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또 하나의 선이 등장한다. 텅 빈 축구장, 반으로 가른 하얀 중앙선. 그 위로 동그란 원이 그려져 있다. 연우는 한쪽에서 공을 다루고, 여름은 그 반대편에서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헤어진 사람의 모습을, 좋아하던 걸 하고 있는 그 순간의 연우를, 여름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찍는다.
찰칵. 같은 소리지만, 다른 의미였다.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여름은 사랑에 빠지고 있었다. 이번엔,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좋아하는 걸 볼 때 들리던 그 소리가, 이제는 좋아했던 걸 떠나보낼 때도 들린다는 걸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사랑한다는 일과 사랑했다는 일 사이에, 같은 셔터 소리가 놓여 있는 셈이다.
두 사람 사이의 그 중앙선도 오묘하게 다가왔다. 누구도 넘지 않는다. 정확히 반으로 나뉜 그 거리는, 더는 서로의 영역에 들어서지 않기로 한 두 사람의 약속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선은 동시에, 두 사람을 똑같은 크기로 마주 보게 만드는 선이기도 했다. 더 가까워질 수는 없지만, 더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 그 균형 속에서 여름은 마지막 셔터를 눌렀다.
처음 만났던 노란 선과, 헤어진 뒤의 하얀 선. 두 선 사이에서 여름은 한 번은 멈춰 섰고, 한 번은 셔터를 눌렀다. 멈춰 서는 것과 기록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이 지나가는 두 가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크린 밖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설명이 부족한 결말을 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인물의 비밀이 흐릿하게 남으면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아빠의 죽음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연우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는 정말 유학 때문이 맞는지, 이 영화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한 뼘만 더 들어갔다면 좋았을 거라는 미련이,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흐릿함이 밉지 않았다. 어쩌면 그 비밀은 정확히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온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 법이니까.
34개의 해외 영화제가 먼저 발견한 작품이 국내 정식 개봉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실은, 퀴어 서사가 한국 극장가에서 아직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작품이 정작 만들어진 땅에서는 가장 늦게 도착한다는 것. 이건 영화 안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로 함께 기억해두고 싶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든 생각. 한 번 봤을 땐 감독이 담은 카메라 렌즈 안의 것을 봤다. 두 번 봤을 땐 그녀의 렌즈 너머에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 봤을 땐, 내가 카메라를 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을 나서면서도 그 셔터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노란 선 위에 멈춰 섰던 여름의 뒷모습도, 하얀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셔터를 누르던 손끝도. 누군가를 좋아할 때 들리는 소리가 있다면, 나는 그 소리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따라왔다.
감독의 이름은 성스러운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 이름이 더는 그냥 이름처럼 들리지 않았다. 여름은 여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체로 성스러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볼 때 셔터 소리가 들리는가. 그 답을 찾으러, 6월 24일 극장에 가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