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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가 한국 초연으로 GS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 호평을 받은 작품이며, 2019년 영국 초연으로 시작한 공연은 올리비에상 5개 부문과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서도 무대화한 ‘라이프 오브 파이’가 관객을 만났다.


필자는 어렸을 때 책과 영화를 본 적이 있으나 십 년도 지난 일이라 “호랑이와 바다에서 살아남기” 정도의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파이 표류기”로 요약할 수 있는 단순한 생존담이라고 생각했거나, 어쩌면 지루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파이 이야기’를 만나니 이 작품은 결국 수용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서사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창작진이라는 1차 수용자를 거친 연극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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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파이 이야기’는 왜 무대화되어야 했을까? 다시 말해, ‘파이 이야기’가 공연의 형태일 때에만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표류기는 생존 기록이기 때문에 특히 일인칭 화자를 통해 경험이나 감상이 서술되는 구조를 취한다. 물론 리처드 파커의 시점이나 전지적 시점도 가능하겠지만, 전자의 경우 과도한 환상성이 이야기의 주제를 해칠 위험이 있고, 후자의 경우 소설이 아닌 (파이가 참고한 바다 생존법과 같은) 기록물에 가깝다.


오카모토는 파이에게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설명을 원하지만, 파이가 청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아닌 이 이야기를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다.


공연은 텍스트처럼 내면을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배우의 목소리, 표정, 침묵을 통해 심리를 드러낸다. 관객은 설명이 아닌 배우의 반응을 통해 파이를 이해한다. 텍스트라는 매개를 거쳐 전달되는 추상적 이미지보다, 배우가 관객 앞에서 직접 전달하는 이미지는 훨씬 즉각적이고 효과적이다.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소설 읽기보다 자발적인 해석의 여지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그만큼 감각적이고 풍부한 감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파이 이야기’의 무대화는 충분한 정당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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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창작진은 무대가 지닌 물리적·현실적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는가.

 

‘파이 이야기’는 액자 서사 구조를 갖는다. 액자 서사는 고전 서사에서 흔히 사용되며 연극이나 뮤지컬 또한 이를 차용해온 전통이 있으므로 형식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파이 이야기’가 지닌 환상성은 현실적 제약이 가장 큰 장르인 공연에서 구현하기 매우 어렵다. 바다라는 광대한 배경, 배의 침몰과 기상 변화, 동물들(특히 ‘파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리처드 파커), 살인과 죽음. 게다가 파이의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기대어 돌발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소설과 영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연극은 필연적으로 서사극적 형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파이 이야기’는 서사가 중심을 이루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작품의 환상성을 어떻게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느냐에 있다. 파이는 이야기의 진위를 ‘믿음의 문제’로 환원하지만,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장르를 택한 이상 공연은 (그것이 환상이라도) 직접 보여주어야 할 책임을 지닌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번 작품은 창작진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들은 관객의 몰입을 위해 장면 간 연결고리마다 음악을 넣었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일사불란한 무대 장치는 훌륭했다. 특히 동물 퍼펫(인형)을 조종하는 퍼펫티어들의 움직임과 호흡, 울음소리는 놀라웠다. 동물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창작진은 그들의 공연을 연극이 아닌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고 명명했다. 무대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매끄러운 호흡이 가장 중요한 이 공연은 보통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과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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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공연을 봐야 할 이유를 발견했으니 (동시에 공연의 후기를 읽는 일도 의미를 갖게 된다), 작품 내부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파이는 리처드 파커로 인해 자신이 아끼던 염소가 죽은 이후, ‘신이 있다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폭력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자연 아래에서 모든 생물은 거대한 먹이사슬 안에 속해 있으며, 죽음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생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신의 욕구를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이성이 있다. 파이가 들려주는 두 개의 이야기가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동물이 등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윤리적 무게가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오카모토는 공식 문서에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작성하기로 한다. ‘파이 이야기’가 진실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지 않듯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파이는 관객에게 어느 쪽의 이야기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선한 세계를 믿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신을 믿는 일과 다르지 않다. 비가시적인 가치에 대한 믿음은 논리나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다는 인간의 순수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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