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랫동안 지구 최고의 포식자로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군림해왔다. ‘우리’만의 사회를 꾸려가며 ‘우리’안의 윤리와 제도,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스스로 가진 힘과 지능으로 계속해서 더욱 더 인간을 닮은 것들을,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존재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인간이 가졌(다고 믿었)던 ‘고유함’은 도전 받고 있다.
갈고 닦아야 할 인간의 조건으로 여겨져 온 인간의 합리성과 지성, 그리고 이성은 이제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졌다.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면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로운 기준과 변화하는 가치가 어지럽게 공존하는 지금, 인간답게 산다는 건, 또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뮤지컬 <펑크>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계에서 인간이 아닌 주인공의 눈을 빌려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AI의 통제 아래 모든 고통과 불안이 삭제된 ‘에덴’에 사는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에게 쓸모를 다한 클론들이 모인 곳 ‘인페르노’, 뮤지컬 <펑크>는 이 두 세계가 공존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인페르노에서 에덴으로 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지만 매번 떨어지는 클론 ‘레오’와 인페르노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온 또 다른 클론 ‘잭’은, 에덴에서 인페르노로 스스로 내려온 인간 ‘글렌’을 찾아간다.
글렌은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음악을 통해 처음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낀 레오와 잭은, 글렌, 그리고 글렌과 함께 인페르노로 온 AI ‘리베르’와 함께 밴드를 하기로 한다. 이들이 선택한 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음악’, ‘펑크’였다.
펑크는 원래 ‘못 쓰는 것’, ‘폐물’이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던 단어였지만,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들어 현실에서의 문제를 제기했던 문화 운동과 다양한 시도를 가능케했던 음악 장르의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펑크의 유래는 AI에 밀려 ‘쓸모’를 잃은 채 인페르노에 모인 클론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더 이상의 쓸모를 잃은 클론으로서 레오는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찾기 위해 인간들의 사회인 에덴에 편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글렌을 통해 음악을 접하고, 새로운 동료들과 펑크를 한 이후로 레오는 더 이상 에덴에 가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음악을 통해 인페르노와 클론들을 함께 변화시키고자 한다.
서로를 통해 또 음악을 통해 변화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주체성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이는 이미 정해진 운명과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오롯이 자신으로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그러한 선택 속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와 이유를 만들고, 찾아낸다.
"에덴을 안 가면 우린 뭘 위해서 살아?"
"너 그리고 날 위해서”
– 뮤지컬 <펑크> 넘버 '너와 함께라면' 中
<펑크>는 무작정 희망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극 속에서 레오, 잭, 글렌, 리베르가 처한 상황은 모두 절망적이고, 미래를 기약하는 것도 요원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삶의 의미와 이유가 되어준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함께 하며, ‘죽지 못해 사는 삶’에서도 ‘어떤 의미’를 찾는다. 그렇게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음악과 연대는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힘과 용기를 준다.
<펑크> 속 주인공들의 분투는 꼭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롯이 자신으로서 생존하고, ‘우리’로서 함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 사회 안에서 ‘우리’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던 주인공들은 서로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고,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인간으로 산다는 건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 뮤지컬 <펑크> 넘버 ‘인간으로 산다는 건’ 中
어쩌면 인간 사회의 지난한 역사 속 ‘우리’의 범주를 넓혀온 연대 역시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연대를 통해 우리 스스로로서 선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고, 새로운 ‘우리’로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살아있음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하나의 외침이자, 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