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돼. 진심이 담기면.”
코드 3개, 진심 하나. 여기 음악으로 살아있음을 외치는 한 밴드가 있다. 떨리는 기타의 현이 그들의 혈관을 울린다. 쿵, 쿵, 쿵, 쿵. 리듬에 맞춰 뛰는 심장을 느낀다. 마음을 다해 찍어 누르는 코드에 감정이 실리며 음악과 공명한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들 안의 무언가가 깨어난다.

뮤지컬 ‘펑크’는 황폐해진 세계 속, 음악으로 인간다움을 찾아 나가는 인물들의 여정을 그린다. AI로 완벽하게 통제되는 인간의 낙원 ‘에덴’과, 인간이 만들었으나 이제는 버려진 클론(복제인간)이 사는 도시 ‘인페르노’가 그 배경이다. 극은 주로 인페르노를 무대로 진행된다.
극장은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폐허가 된 도시를 연상시키는 차가운 회색빛 무대, 철제 기구들, 전선과 스피커. 따뜻한 클래식 기타의 사운드보다는, 금속의 마찰음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공간이었다. 무대 한쪽에 놓인 전자드럼이 눈에 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음악을 연주할까.

극 중 인물 ‘레오’와 ‘잭’은 클론으로, 우연히 에덴에서 인페르노로 스스로 내려온 인간인 ‘글렌’의 음악을 듣게 된다. 레오는 그 리듬에서 처음으로 자기 안에서 뛰는 무언가를 느끼고,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며 반대하던 잭을 설득하여 글렌과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글렌과 함께 인페르노로 넘어온 AI인 리베르까지 4인조 밴드가 된 그들의 목표는 ‘인간답게’ 살아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순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불완전에 대한 갈망, 즉 세상에서 사라진 인간성에 대한 갈망이었다. 오직 완벽함만이 존재하는 에덴에도, 그들이 바라는 인간은 없었다. 기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누구도 욕망하거나 선택할 수 없다. 글렌은 그곳에서 변화를 외쳤지만 오류로 낙인찍혔고, 결국 회의를 느끼고 인페르노로 내려와 새로운 혁명을 꿈꾼다. 에덴이라는 완벽하지만 공허뿐인 세계와, 그들이 원하는 불완전하지만 진정성 있는 삶의 대비가 진짜 인간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말해준다.
“우린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어떤 노래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떤 노래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오직 음악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는 글렌의 생각 아래, 그들이 하려는 음악은 ‘펑크(Funk)’이다. 1970년대 영미권을 중심으로 탄생한 록의 한 장르로, 기존 체제에 반항적이고, 거칠고 강렬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그들은 규정 따윈 없는 그 음악에서 3개의 코드로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인페르노 전체에 상실한 인간성을 깨우기 위한 그들의 연주인 넘버 ‘깨어나’에서 이러한 펑크 정신이 잘 드러난다.

연주가 시작되면 회색빛 무대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든다. 각 코드에 담긴 호흡과 심장 박동, 슬픔과 분노가 무대 위에서 빛깔이 되고, 리듬은 황폐했던 그들의 마음과 공간을 울린다. 비로소 어떤 삶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들의 연주는 클론들의 싸움을 멈추고 연대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극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가치는 바로 ‘연대’이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네 명, 만 명이 되는 과정은 음악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성의 회복과 연대의 깊은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비록 AI 아르케(에덴과 인페르노를 통제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들은 최후를 맞이하지만, 끝까지 인간으로 살아있기를 바랐던 그들은 ‘마지막 축제’라는 넘버를 통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 고통이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이 눈물이 살아 있다 말하네"
"인간이란,
죽음 앞에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닐까
인간이 되어 그들처럼 살고 싶었지 하지만
살아있는 꽃들은 언제나 피고 지네"
죽음이 다가와도 한순간 인간으로 살아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외치는 그들의 음악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불완전성을 완성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올더스 헉슬리의 책 <멋진 신세계>의 야만인 존은 이렇게 말한다.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완전한 쾌락만이 존재하는 에덴. 그와 대척점에 있는 불완전하고 위태롭지만 음악을 통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인페르노의 클론들, 거기서 찾은 연대와 살아있다는 감각. 뮤지컬 ‘펑크’의 인물들은 노래한다. 무엇이 우리를 진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지, 불완전한 삶이란 얼마나 인간다운 것인지.
뮤지컬 ‘펑크’는 오는 5월 3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