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뚝에 바코드가 그려져 있고 이름 없이 번호로 불리는 존재, '클론'. 그들은 먼 미래 지구, 스스로 번식을 멈춘 인류가 오직 노동만을 위해 대량 생산한 인조인간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더 이상 죽지 않게 되고, 클론의 존재 이유는 사라져 그들의 생산은 즉시 중단된다. 이후 세상은 AI의 통제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인간들의 유토피아 '에덴'과, 살아남은 클론들이 폐기 처리된 '인페르노'로 나뉘게 된다.
인페르노에 버려진 클론들은 생존 최소치로 지급되는 배급을 서로 뺏으며, 매일을 전쟁 속에 살아간다. 그들이 인페르노를 떠나 에덴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격 시험'이다. 시험에서 클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에덴을 위한 노동력 제공에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두는 것. 클론 2847번 '레오'는 인페르노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며 자격 시험에 응시한다. 그러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탈락한다. 그저 도구가 되어야 하는 클론이 감정을 느낀다면, '제품 결함'이기 때문이다.
이후 레오는 그와는 반대로 에덴에서 인페르노로 내려온 인간 '글렌'의 음악을 듣게 되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낀다.
"나는 오직 음악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어."
글렌은 자신의 음악을 알아봐 준 레오와 그의 친구인 클론 2848번 '잭', 그리고 에덴에서 함께 내려온 AI '리베르'와 함께 4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이 이상한 밴드가 선택한 장르는 비판과 저항의 음악, '펑크'.
그들은 음악으로 다른 클론들에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인페르노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펑크(punk)는 영미권을 중심으로 탄생한 록의 한 장르로, 젊은 층들의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 극심했던 1970년대에 탄생했다. 이는 직관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 적나라한 가사와 퍼포먼스로 젊은 층들의 마음을 대변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권위적이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거부하고, 개방적인 사고와 가치관이 피어났었던 당시의 젊은이들의 분위기에 맞물려 이러한 과격한 문화는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펑크를 옹호했던 젊은이들이 외치던 것은 다름 아닌 '차별' 그리고 '평등'이었다. 인종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정부와 이민자들의 갈등, 계급 사회 등 당시에 사회적으로 뿌리내린 차별들과 냉전 시대 이후 실업이 만연한 현실의 절망적인 상황. 이 속에서 청년들은 갈등하게 됨으로써, 결국 그들은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혼란 그 자체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렇듯 펑크는 단순히 음악이 아닌, 특정 세대와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르였다.
그리고 뮤지컬 <펑크>는 해당 장르가 가진, 주어진 체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오롯이 무대에 구현해낸다. 동시에 신나는 멜로디 속에 인간이란,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정의를 내린다. 주요 넘버들을 통해 함께 살펴보자.
M2. 차가운 천사
레오는 매일 꿈을 꾼다.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의 손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지만,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천사는 미소를 지은 채 레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잔인하게 떼어내 결국 추락하고 마는 꿈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외친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하늘을 날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그 날개를 달라고.
그렇게 희망은 갑자기 다가와 예쁜 얼굴로 손을 내민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의 손을 놓아버리고는 한다. 사실 꿈속에서 레오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자신을 하늘로 이끄는 손은 자신을 추락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손을 계속 바라게 된다.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믿으면서. 혹은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으로.
사실은 그것이 인생 아닐까. 희망에 부풀다 터져서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 그럼에도 하늘에서 느꼈던 잠깐 동안의 해방감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것. 헛된 일이 되더라도 더 높이 날아오르며 그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것.
M5. 인간으로 산다는 건
글렌이 기타를 배우러 온 레오에게 불러 주는 노래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이 기타 줄, 그냥 코드가 아니야. 네 심장 박동이야.
C는 네 첫 호흡, F는 매일의 숨결,
Am는 네 슬픔이고, G는 네 분노야.
너의 리듬을 느껴. 너의 말을. 그게 인간이야.
이 비유에 따른다면, 모든 사람은 호흡과, 숨결과, 슬픔과, 분노라는 코드를 모아 오늘이라는 악장을 연주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때 하나의 코드만 반복된다면 단조롭고 지루할 테지만, 여러 가지 코드가 등장하기에 음악은 더 아름다워진다.
넘어져도 괜찮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충분한데
죽지 못해 산다 해도 그 안엔 이유가 있는 법
인간으로 산다는 건,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이 넘버에서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오늘의 코드들을 충실히 연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M11. 깨어나
글렌, 레오, 잭, 리베르가 클론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다. 이 곡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보급을 빼앗았던 다른 클론들을 '형제'라고 부른다. 또한 진짜 적은 서로가 아니라 저 멀리에 있고, 이 세상을 우리가 바꿀 수 있다며 연대와 저항의 메시지를 외친다.
이제는 알아 그 선은 우리가 함께 바꿀 수 있어
이 노래가 우리를 바꿔놓은 것처럼
이 세상도 서로의 손잡고 밖으로 나와서
울부짖어 자 일어나
노래의 후반부 브릿지 부분에서는, 레오가 'M2. 차가운 천사'에서 희망을 향해 부르짖던 후렴의 멜로디가 에너제틱하게 리프라이즈된다. 이는 '에덴'이라는 무지한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레오의 변화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이 노래를 통해 클론들은 싸움을 멈추고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레오와 잭은 함께 힘을 모아 이곳에 자신들만의 에덴을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인간이 되기를 갈망했던 그들은, 이미 모두 인간이었다.

글렌은 왜 에덴을 떠났던 걸까? 인간들이 사는 에덴은 사실 노동도, 고통도 전부 사라져 공허하고 의미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서로의 아픔을 안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코드들이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인생에는 쾌락만 있을 수 없다. 다채로운 감정들이, 그것을 나누는 과정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펑크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DIY(Do It Yourself) 정신이다. 한 마디로 누구든 자기 스스로 펑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개인의 실천과 참여로 누구든 펑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페르노의 그들은 당신에게 악기를 다룰 수 있는지, 노래를 할 줄 아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함께할 것인지 묻는다.
[참고 자료]
김주리, "“여자야? 남자야?”…파격적인 존재감, 폭력없이 저항한 ‘펑크의 대모’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헤럴드경제』, 2026.05.02.
롤리스트릿. "펑크(PUNK) 는 제도권을 향한 젊은이들의 짙은 호소였다." Youtube, 2022.04.18.
스그. "펑크가 뭐야?" Youtube, 202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