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읽히고 다시 쓰이기를 반복하며 역동하는 이야기 - 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

프레임 밖으로 나온 <집이 없어>
글 입력 2024.11.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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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가, 어떤 컨텐츠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관점에 따라 많은 기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재생산할 수 있는지인 것 같다.


이는 단순히 어떤 컨텐츠가 높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현실을 비추는 컨텐츠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통해 그 현실을 조금은 바꾸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한 힘을 가진 컨텐츠는 더 이상 어떤 매체나 프레임 안에 갇힌 이야기가 아닌 현실 안에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며 역동성을 획득하게 된다.


모든 컨텐츠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는 없지만, 영양가 있는 다양한 논의를 끌어낼 수 있는 컨텐츠들은 한 사람의 삶과 감정에, 또 그들을 둘러싼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위로와 용기를 더한다.


웹툰 <집이 없어>를 창간호 작품으로 선정한 국내 최초 웹툰 전문 매거진 『매거진 조이』를 읽으며 <집이 없어>도 그러한 이야기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산북스]매거진조이_집이없어_표지(평면).jpg

 

『매거진 조이 Vol1: 집이 없어』에 실린 7편의 리뷰(칼럼)는 <집이 없어>라는 작품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각기 다른 이야깃거리들을 짚어낸다.


그 중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던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리뷰 ‘성장하는 건 은영과 해준만이 아니다’는 <집이 없어>가 제시하는 성장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성장을 그리기 위해 <집이 없어>가 채택하는 방식은 끝내 고난을 극복하는 모험담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오해와 오답을 반복하며 이해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집이 없어>를 보며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사실은 이러한 지난한 과정 안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게임 캐릭터처럼 일정한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올라가고, 차근차근 성장한 끝에 마침내 ‘만렙’에 도달하는 선형적인 서사의 주인공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할수록 더 편협해지기도 하고,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며 자포자기하기도 하며, 삶의 경험을 통해 직접 얻어내고 믿게 된 정답들이 한 순간에 오답이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애초에 우리는 너무 다른 각자의 지반 위에서 각기 다른 상처와 고난들 속에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쉽게 변할수도, 타인의 변화를 쉽게 기대할 수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집이 없어>는 공통점에만 천착하지 않는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에서, 오해와 오답을 반복하며 역동하는 스스로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혀 명확하지도 완벽히 보장된 것도 아니지만, 이 가능성은 독자들이 웹툰과 함께 역동할 때 그 존재감을 더욱 확실히 드러낸다. 그 뒤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서사의 전개 방식이 작동한다. 의도가 의문스러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들 역시 인물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으로 그에 대한 오해와 오답을 반복하며, 인물의 일부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독자들 역시 웹툰 속 인물들과 함께 성장한다.


 

"만약 성장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좋은 어른이라는 하나의 옳은 답을 향해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오답 가능성을 계속해서 경험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 P.126


“수많은 성장 서사가 고난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뭐든 결국 혼자 이겨내라는 각자도생의 메세지로 소급한다면, <집이 없어>는 세상의 폭력성 앞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 서로 오답을 주고받으며 함께 헤매는 것만이 유일한 성장의 기회라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독자에게도 준다. 나를 비롯해 영혼의 성장판이 닫힌 어른들도 함께 흔들리고 함께 헤매며 성장할 기회를.” - P.128

 

 

위근우 님의 리뷰에서는 <집이 없어>에서 개인적으로도 인상깊게 봤던 장면이 등장한다. ‘백은영은 다시’ 에피소드 중 은영의 담임선생님이 은영에게 잘 해주는 이유가 은영이 바뀔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은영에게 누구도 은영의 변화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은영 자신만은 자신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에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넌지시 내비친다.


우리는 타인의 변화와 성장을 요구할 자격이 없음을 인정할 때에서야 비로소 타인과 함께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서로의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차이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갈등의 시작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단단한 관계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


박사 칼럼니스트의 리뷰 ‘집이 없는 아이들이 쌓아올린 집’도 이러한 부분을 언급한다. ‘집이 없어’라는 작품의 제목으로 요약될 수 있는 백은영과 고해준의 불행은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이 가지는 삶과 타인에 대한 태도는 매우 다르다.


둘의 갈등과 화해는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계속해서 다시 인지하고 마주하는 과정에서 반복된다. 이는 은영과 해준을 비롯하여 <집이 없어>의 주요 등장인물인 주완, 마리, 하라, 민주 모두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심지어 독자와 각각의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갈등과 화해는 계속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6명의 아이들은 모두 너무 달랐지만, 그들 모두에게서 조금씩 과거의 나와 또 현재의 나와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슷하다는 이유로 모두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고, 다른 부분에서 오히려 그들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러한 면에서 <집이 없어>가 인물들 간에 다양한 갈등과 대립 구도를 설정하면서도 그것을 일방적인 가해와 피해의 관계나 선악의 구도로 명확히 나누지 않은 점이 좋았다. 이용건 만화평론가의 리뷰 ‘불행의 가능성에 대한 노트’에 언급되었듯, <집이 없어>는 인물의 전사(前史)를 조금씩 풀어내며 각 인물들간의, 또 독자와 인물들 간의 ‘끈질긴 화해’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폭력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끝끝내 역동하고 변화하는 인물과 관계들 사이에서, 가정 폭력과 같이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억압이 주는 무력함과 가혹함은 더욱 부각된다. 또한 이와 함께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일방적인 관계의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만이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 위에 <집이 없어>는 오랜 시간 이어진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목격자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뒤에는 우리 사회의 ‘가족규범’과 청소년에 대한 몰이해가 작용한다. 우리 사회의 가족규범은 여전히 안락하고 따뜻한 집 밖의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상상하기에는 부족하고, 최소한의 보호와 안락함을 보장하는 ‘집’이 없어진 아이들은 제도권 안에서 수용되고 통제되지 못하는 존재들로 규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불행에 머무르기를’, ‘규범에서 벗어나기를’ 스스로 선택하며 새로운 형태의 ‘집’을 모색한다.


이용건 평론가는 라뷰 마지막에 <집이 없어>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들의 미래는 오로지 이들의 선택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며, 그들의 선택지는 독자들의 기대와 심지어 작가 본인의 상상력으로도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에는 일종의 경계와 응원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집이 없어> 속 인물들은 서로 피해와 가해의 관계를 넘어, 오해와 이해, 공감과 화해를 넘어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있는 가정 폭력 가해자들은 끊임 없이 역동하는 그들의 미래에 끼어들 자리가 없을 거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이들을 다시 헤매고 부딪히게 할 많은 것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또 이들이 끝내 변화했다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이들과 같은 변화와 성장을 함부로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미래에 대한 힌트는 민주의 어머니나 마리의 고모를 통해 아주 조금은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의 어머니도, 마리의 고모도 과거의 폭력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에 흔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

 

 

“넌 어디든 갈 수 있어. 네가 조금만 더 크면, 네가 네 집도, 동네도, 같이 살 사람도 고를 수 있어. (...) 네가 떠나면 돼. 세상엔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거야. 그럴 땐 힘든 사람이 떠나야지. 앞으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죄책감 가지지마.”

 

- <집이 없어> 57화 중 마리의 고모가 마리에게 하는 말

 

 

<집이 없어> 속 집을 빼앗기고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 집을 떠나고자 했던 아이들은 ‘구 기숙사’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집을 만들고, 또 서로에게 ‘집’이 되어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필연적으로 떠나야 하는 ‘집’이지만, 이들에게 집은 ‘떠남’으로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조유진 에디터의 리뷰 ‘떠나는 방법을 연습하는 아이들’ 속 말처럼 말이다.

 

 

“집이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떠나야 한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영원하게 머물러 버린다면 그 공간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을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감옥으로 변모해 버린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는 집이 가지는 유일한 전제일 것이다. 떠나갈 집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숙사를 통해 자립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결국 <집이 없어>는 어른의 도움 없이 떠나는 방법을 연습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된다.” - P.216

 

 

‘집’은 단순히 주거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범과 계급, 권력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쉽게 떠날 수도, 새롭게 만들기도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집이 없어>는 결국 집을 떠나 ‘돌아올 곳’을 함께 만들어낸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란 떠날 수도, 만들 수도, 심지어 없을 수도 있는 곳이란 이야기를 전한다.


이 과정에서 <집이 없어>는 다양한 질문과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매거진 조이』는 조금 더 정제된 방식으로 이러한 이야깃거리들을 엮어낸다. 이를 통해 작품 자체가 가졌던 역동성만큼이나, 이 작품이 반복해서 읽히고 다시 쓰이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방면에서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웹툰만이 할 수 있는 소재와 표현을 통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품은 작품들이 『매거진 조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나를 포함한 다양한 독자들이 좋은 이야기들과 함께 계속해서 역동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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