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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드넓은 흙바닥 위에 스피커가 조심스럽게 쌓인다. 위아래와 양쪽 정렬을 맞춰서 신중히 배치된 더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이윽고 음악이 흘러나오자 군중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춤을 춘다. 정해진 것 없이 자유롭고 쉬이 형언할 수 없는 몸짓이다.

    

'십자 모양'으로 구분된 덕트에 손을 갖다 대고 온몸으로 진동을 느끼거나, 한밤중의 협곡에 계단을 그리는 레이저 쇼를 보고 있자면, 이곳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 같다. 누군가는 해방을 만끽하고 누군가는 은혜를 받는 시간. 그렇게 의심 없이 믿고 싶은 하나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기억하라.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다. 건너려는 자 명심하라. 그 길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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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등장하는 레이브 파티(Rave Party)는 전자음악을 들으며 춤을 즐기는 대규모의 현장으로 주로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비주류 문화다. 본래 1980~199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기성 사회에 대한 탈출구로 활용되며, 어떠한 규제나 제한 없이 원하는 방식으로 몸을 쓰기 위해 마련됐다.


그래서 이곳에 참석하는 레이버(Raver)들은 공통의 가치관인 PLUR(Peace · Love · Unity · Respect)에 근거해, 인종/성 정체성/성적 지향/계급 등에 상관없이 함께하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셋(set)을 집단적으로 경험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들 문화를 반영하듯 감독은 실제 레이버들을 전문 배우 대신 고용했다.


덕분에 보다 날 것의 색다른 연기와 춤 선 그리고 감정이 전달되는데, 이때 또 다른 흥미로운 배치가 눈에 띈다. 바로 동일 선상에 놓이는 이슬람교도들과 레이버들이다. 모스크와 신앙심, 레이브 파티와 극도의 몰입. 이것이 유일한 피난처, 마음의 안식처, 회복의 장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깊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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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대전'이 농담처럼 언급되고, 곳곳에 배치된 군인과 삭막한 사막의 풍경이 디스토피아를 암시하는 가운데, 저마다 믿는 구석은 결국 비슷한 모양이다. 실제로 레이버들은 마약까지 흡입해 무아지경에 이르는데, 이는 종교적 체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안 톨렌티노가 『트릭 미러』에서 밝힌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와 마약 둘 다 초월로 향하는 길을 제공한다. 현실을 뛰어넘는 황홀감과 용서의 세계로 초대하며, 매우 실제적인 느낌 속으로 빠뜨린다.(231) 물론 이는 ‘엑스터시’라 불리던 ‘MDMA’에 대한 개인들의 경험을 종합해 내려본 결론이지만, 〈시라트〉는 이를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갈 곳을 잃고 상처를 입은 영혼들이 홀린 듯이 향하는 황홀경. 세상의 종말 앞에 정처 없이 떠돌면서 택할 수 있는 오아시스는 바로 이런 순간적인 도취라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닥쳐오는 진짜 죽음 앞에서는 진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당장의 답답함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리면 또다시 고통받고 소멸하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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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종교들이 인간의 존재 의미에 '목적'을 부여하곤 한다. 아마 우리 자체가 '이유'에 대한 강박을 타고난 건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그냥'은 아닐 거라는 착각. 이 영화는 그 믿음을 철저히 깨부순다. 에스테반과 피파도, 기껏 정들었던 루이스와 일행들도, 가차 없이 다음 희생의 후보에 오르기 때문이다.


산길에서 차가 밀려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지뢰를 밟아 터져버리거나. 실종된 딸을 찾겠다는 부자(父子)의 목표는 어느새 사라지고,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이 중후반부에 계속해서 몰아친다. 이는 허탈함과 함께 분노마저 일으키면서도 나름의 메시지를 던진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그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다.


전쟁, 가난, 정치, 재난, 사고 등 보다 거대한 영향력 앞에 인간의 생사는 갈려왔다. 목적과 목표를 따라 걸어가던 이 대신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하는 이가 살아남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 여부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지는 그저 가거나 멈춰 서는 것일 뿐, 그 이상은 관여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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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견디기 힘든 이 흐름의 끝까지 기어코 관객을 끌고 오는 동력은 장엄한 풍경과 중독적인 음악에서 나온다. 광활한 대지와 거친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동안 자연스레 〈매드맥스〉 시리즈와 〈노매드랜드〉가 떠오른다. 불필요한 대사가 끼어들지 않기에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관찰하게 된다.


특히 시작부터 흥에 취하게 하는 테크노는 그 뒤로도 끊임없이 변주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기세의 비트와 신비로운 사운드. 물아일체의 경지에 데려다 놓는 한편, 후퇴가 없는 전진을 격려하는 신호 같기도 하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촘촘히 사로잡는 이 소리는 극장을 나와서도 계속해서 귓가에 맴돈다.


'시라트'는 죽음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삶에 관한 영화다.

가장 깊은 심연을 건드린 후에 찾아오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

- 올리베르 라시(Oliver LA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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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배신감이 꽤 강렬한 작품이다.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받은 충격도 크지만, 전반적으로 거대한 은유처럼 느껴지는 만큼 곱씹어 보는 횟수도 늘어난다.


폭력적인 묘사를 남발하진 않지만 분명히 폭력적인 장면이 계속될 때 드는 윤리적 회의감이 있다. 그러나 감독이 말한 것처럼 이 또한 '죽음을 추방해 버린, 극도의 죽음 공포증적인 사회'에 살고 있기에 드는 거부감인가도 싶다.


오르막길을 기어이 넘어가는 방식으로 삶의 이어짐을 말하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와는 달리, 이 영화는 그 길을 넘지 못하고 희생된 많은 사람을 기억하며 이어지는 삶을 얘기한다. 지뢰밭에 깔린 기찻길 위 선민(選民)이 아닌 유목민을 보여주면서.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낯선 얼굴들을 조명하면서 말이다.


결국 〈시라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갈, 잔인하지만 여전히 한 줄기의 희망이 있는 현실, 결코 녹록치 않은 그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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