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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왜 플리백은 힐러리를 끌어안고 무너졌을까 - 연극 '플리백' [공연]

연극 <플리백>이 상실을 견디는 방식

by 신수빈 에디터
2026.08.07 11:14

1. 플리백Fleabag_통합.jpg

 

 

연극 <플리백>은 끊임없이 관객을 웃게 만든다. 플리백은 객석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속마음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성적인 농담도, 타인을 향한 냉소도 숨기지 않는다. 그녀의 솔직함은 때로는 통쾌하고, 때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그 웃음이 아니었다.

나에게 <플리백>은 힐러리를 끌어안던 순간의 이야기였다.

 

극 중 힐러리는 플리백이 가장 친한 친구 '부'에게 선물했던 기니피그다. 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힐러리는 플리백 곁에 남아 있는, 둘을 이어 주는 마지막 흔적이다. 그래서 힐러리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플리백이 끝내 놓지 못한 기억이자 상실 그 자체처럼 존재한다.

 

그런 힐러리가 다치고,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유난히 길게 이어진다. 플리백은 힐러리를 품에 안아 달래 보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힐러리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플리백은 힐러리를 바라보며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작품이 말하는 정답이 아니라, 공연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하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플리백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사람이라기보다, 오랫동안 고통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플리백_공연사진_김규남_3.jpg

 

 

플리백은 늘 상처를 다른 방식으로 덮어 왔다. 관계를 반복하고, 농담을 던지고, 욕망으로 공허함을 메우려 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잠시 감정을 미룰 뿐, 상실 자체를 지워 주지는 못했다. 힐러리 앞에서는 그 어떤 농담도, 충동도 통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고통을 끝까지 바라봐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힐러리를 안고 있던 플리백의 표정은 단순한 슬픔보다 복잡하게 다가왔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어야 하는 마음과, 끝내 자기 자신만큼은 놓아주지 못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겹쳐져 있었다. 그 감정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김규남의 연기를 통해 충분히 전해졌다.

 

김규남은 이 장면을 격정적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절제한다. 크게 무너지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처럼 힐러리를 품에 안는다. 그 절제가 오히려 감정을 증폭시킨다.

 

관객은 울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울음을 참는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감정은 폭발하는 순간보다, 끝내 삼켜지는 순간 더 크게 다가온다.

 

 

플리백_공연사진_김규남_6.jpg

 

 

돌이켜 보면 <플리백>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상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잃고 난 뒤에도 사람은 살아야 하고, 그 빈자리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플리백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끝내 부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상실은 새로운 관계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끝내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힐러리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이라기보다, 상실을 처음으로 외면하지 않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전까지 플리백은 상처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고통을 끝까지 바라본다. 어쩌면 그 장면은 힐러리를 보내는 장면인 동시에, 자신의 슬픔을 비로소 인정하는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플리백>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품은 아니다. 다만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순간이 비로소 치유의 시작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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