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이라고는 대학 축제에 얼쩡거리기가 다였던 내게 행성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다. 홍대 음악의 성지 롤링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며 2025년에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올해에도 그 명맥을 이을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 2026'이다. 9월 5, 6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이 축제는 총 5개의 실내외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약 70여 팀의 대규모 뮤지션들이 출연하여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인파가 넘실대고, 입장하기 전부터 밴드 음악이 들려오고 있었다. 넓은 부지를 적극 활용하듯 5개의 스테이지와 F&B 코너, 그리고 각종이벤트 부스까지 지루할 틈 없이 콘텐츠가 펼쳐져 있었다. 어느 스테이지를 골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라색, 그리고 우주 콘셉트의 드레스코드 공지와 베스트 드레서 시상이 있을 예정이어서 그런지 다채롭고 꾸민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일사분란하게 돌아다니며 무대를 즐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 관객들을 지켜보기만 해도 공연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페스티벌이 처음인 내게 제일 인상 깊었던 점은 여러 무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마음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음악 어플에서 랜덤 재생 버튼을 누르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빠지는 것처럼, 파라다이스시티 일대를 거닐다 좋은 음악 소리를 따라 멈춰서서 마음에 드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라디오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실내와 야외 공연을 번갈아가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워낙 인파가 많은 탓에 이른 오후부터는 실내 스테이지 입장이 제한되었지만 야외 공연만 감상해도 만족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번외로 스테이지 전환 때마다 열리던 레슬링 경기까지 볼 거리가 넘쳤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페퍼톤스, 크라잉넛,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체리필터 등의 열정적이고 신나는 무대를 연속하여 즐기다보면 어느덧 정수리가 푹 익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알던 노래는 더욱 신나게, 모르던 노래도 라이브로 감상하다 보면 떼창도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너무나도 더웠는데 웃음이 자꾸 흘러나왔다. 무대 위에 선 이들도 모두 라이브 공연에서의 프로였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무대가 이어졌다. 음악에 맞춰 깃발을 휘두르며 모였다가 흩어지며 무대를 즐기던 팬들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한참 뙤약볕에서 뛰놀다보니 곧 내가 제일 고대하던 가수의 공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에서 가장 기대했던 가수는 심규선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심규선의 모든 앨범을 반복하면서 듣고, 팬카페 활동도 했던 내게 심규선은 추억이자 현재진행형의 절친이었다. 꼭 실물을 맨앞에서 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대기하다 잽싸게 1열에서 본 그의 무대는 이어폰으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주 콘셉트에 맞춰 세트리스트도 '혜성충돌', '섬광', '창백한 푸른 점' 등으로 구성하는 등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곡들로 선정하였다. '뱃사람의 노래'나 '오스카', '요란'까지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준 무대였다.

팬들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무대의 맨끝을 오가며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춤추고 노래하는 그를 보며. 내가 이걸 위해 이곳에 왔지, 아, 살아있지, 앞으로도 이 기억으로 살아갈 테지.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바람과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날아다니는 비눗방울들, 햇빛에 잔뜩 그을렸다가 적당히 식은 피부까지 좋지 않은 게 없었다. 1열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빛나는 눈으로 같은 사람을 바라보는 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떨림 기타 줄
한숨 부드러운
달 밤이 차면 허물을 남겨요
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락을 맞춰요 나의 운율에
- 심규선, <오스카>
내 취향대로 만든 직접 플레이리스트가 나를 익숙하고 편안한 심상으로 데려다 준다. 그러나 예상 밖의 세트리스트는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선물해준다. 스피커의 빠른 박자에 속절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 삶의 박자를 미리 당겨쓰듯 심장이 뛰는 방향을 성큼성큼 쫓아가다 보면 내 취향이 새롭게 열리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페스티벌에 가나 보다.
페스티벌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공항철도에 오르기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분명 같은 한국에 있었는데도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여운이 남았다. 해외여행 외의 목적으로 처음 방문한 공항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우주 여행이고, 성간 여행이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