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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영화 <다음 소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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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자해, 자살 등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상담원 김소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완주생명과학고 애완동물관리과 3학년 6반 7번 김소희
소희는 고대하던 첫 현장실습을 콜센터로 나간다. 담임 교사는 어렵게 뚫은 대기업 사무직이라는 말과 함께 소희에게 절대로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한다. 소희가 맡은 업무는 각종 인터넷 상품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회유하여 또 다른 상품을 판매하는 '해지 방어'이다. 길고 복잡한 해지 과정을 거치다 최후의 수단으로 콜센터를 찾는 고객은 불만이 가득하다. 그런 고객들을 상대로 위약금을 물어내야 한다고 하거나 추가 혜택을 제시하면서 고객 이탈을 지연해야 하는 상황은 고역이다.
소희는 화난 고객들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면서, 채우지 못한 콜 수를 메꾸면서, 심지어는 성희롱까지 당하면서 점차 웃음을 잃는다. 열심히 일하겠노라 다짐하지만, 악성 고객을 상대하면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악을 쓴다. 이를 지켜보던 팀장은 그다음 소희의 출근길에 숨진 채 발견된다.
팀장이 부당 노동 강요 및 성과급 산정 방식의 불합리함을 유서에 고발했지만, 이는 본사의 입막음으로 흐지부지 넘겨진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주겠다며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소희는 이에 불복하여 마지막까지 남지만 결국 본사 직원이 방문하자 계약서에 서명하고는 다시 업무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소희는 변한다.
무언가 포기한 듯 실적을 급속도로 올리고, 기계적인 태도로 업무를 수행한다. 센터 실적 1위까지 차지하지만 소희는 실습생이라는 신분으로 인센티브는 물론 정직원만큼의 월급도 받지 못한다. 이에 항의하다가 새로 부임한 팀장을 폭행하여 받은 무급 휴직 기간 자해하기도 한다. 찾아간 학교에서도 담임 교사에게 혼이 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걱정하는 와중에도 괜찮은 척을 한다. 소희는 홀로 찾아간 저수지에서 영원히 앵글 아래로 사라진다.
전주경찰서 형사계 오유진 경감
소희가 사라진 앵글 너머 오유진 경감이 올라온다. 소희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수사를 진행하는데, 영 꺼림칙하다. 찾아간 직장도, 학교도, 교육청도 모두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회피하기만 한다. 고등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가다 자살했는데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콜센터에서는 소희가 실적을 잘만 채우다가 불성실해졌다며 소희를 탓한다. 학교는 자신들이 취업률을 유지하거나 높이지 않으면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특성화고에서 소속된 학과와 연관된 일이라도 시키지 그랬냐고 하니, 그걸 원해서 애들이 갔겠냐며 유진을 나무란다. 마침내 찾아간 지방 교육청은 교육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교육청 운영이 가능하다며 전부 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춤추는 걸 좋아하던 명랑한 소희는 이제 없다. 가상 인물의 죽음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그렇다. 영화 속 소희의 모티브가 된 인물 홍수연 양은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근무하다 2017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과 실적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만으로는 소희, 그리고 수연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자살이었다. 피상적인 원인만을 밝힌 채로, 무엇이 그들을 우울로 밀어 넣었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다음 소희'는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다. 원인의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현장실습의 목적은 학생들이 진로와 관련하여 취업 및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및 태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 반드시 실습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오직 머릿수로만 특성화고등학교의 실적을 평가하는 평가 시스템, 근속 기간을 유지하도록 현장실습을 관두고 돌아온 학생에게 낙인을 찍는 학교, 학생들이 수행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모르는 채 일터로 학생들 보냈던 교사까지. 담당 교사들은 입을 모아 사료 공장이든 비료 공장이든 숫자만 채울 수 있다면 어디로든 학생을 취업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이다혜
대입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했던 겨울, 친구가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 채 평소처럼 일상을 보내다가 영화관으로 향했다. 충격적이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내가 태평하게 공부하면서 일상을 단조롭게 보내고 있던 시기에, 스크린 속의 동갑내기 친구는 매서운 사회의 바람에 베이고 있었다. 뉴스로 스쳐 지나갔던 과거의 현장실습 사고 등이 이제야 와닿았다. 유진의 발걸음을 따라 소희의 행적을 찾아가는 길에서 소희는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18년의 세월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늘 되뇌는 말이 있다. 왜, 만약에, 나라면. 어떤 일을 마주하든 내 일인 것처럼 여기기 위해서 필요한 단어들이다. 이러한 질문 앞에서 나는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이 된다. 소희는 '왜' 현장실습을 해야 할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 어엿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만약에' 소희가 회사를 관뒀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학교로 다시 돌아가면 빨간 조끼를 입고 벌을 받았겠지.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며 구박받았을 것이다. '나라면' 현장실습을 나갈까? 그렇다. 학교에서는 현장실습을 나가기 좋은 일로 여긴다. 내가 현장실습을 나가는 것을 학교에 남은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게다가 돈도 벌고 사회생활도 배울 기회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책을 전공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음 소희>를 보고 확신했다. 나는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고. 모든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사회적 건강을 확보하도록 돕는 정책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연구원이 되겠다고. 보건정책관리학부에 입학한 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이 지났다. 3년 전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넷플릭스로 시청하면서 느꼈다. 나는 아직 사회의 부조리함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며, 특히 노동과 장애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곧 세상을 보는 눈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다. 내가 보지 못했던 소희를 내 세상에서 이제야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예술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화예술은 ‘소통’이라는 아트인사이트의 비전과 같이,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을 쭉 유지하고 싶다.
다시, 상담원 김소희입니다.
그렇게 소희는 실습을 나가서 연신 내뱉는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그 사랑은 소희를 사랑으로 키운 부모와 무엇보다 스스로 올곧게 자라난 소희로부터 뿜어져 나온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받아야 할 사랑을 도로 빼앗아 고작 욕받이의 방패로 쓰이게 할 것이라면. 직원이 스스로 지키지 못할 정도로 벼랑 끝까지 내몰아야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랑, 그리 쉽게 앗아도 되는 것 아니다. 그 일, 결코 그보다 가치 있는 일 아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수많은 실습생의 이야기는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내가 언젠가 소희가 일하는 콜센터에 전화를 걸 수 있다. 내가 언젠가 태준이 일하는 택배사로부터 택배를 배송받을 수 있다. 내가 언젠가 정인이 일하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갈 수 있다. 내가 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처지를 바꾸었을 때 부당함을 느끼지 않아야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고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맞서야 하지 않을까.
왜, 만약에. 그리고, 당신이라면. 소희가 되었을 때 아래의 현장실습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질문해 본다.
현장실습 서약서
위 본인은 현장실습 파견에 동의하며 교칙과 파견 근무하게 되는 회사의 사규를 엄수할 것은 물론 현장실습 근무 장소 무단이탈 및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현장실습에 임할 것을 약속합니다.
만일 실습 중 본인의 과실로 인한 안전사고에 대하여도 학교 측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음을 보호자 연서로 서명합니다.
다음 소희 (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