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기
‘은/는’, 다른 것과 대조되거나 문장 속에서 어떤 대상이 화제임을 나타내는 보조사다. 국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보조사 ‘은/는’을 주격 조사 ‘이/가’와 동일시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법적 역할과 의미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하곤 한다.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그렇다. 5월의 광주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은 이들이 지난 12월의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사실은 증명됐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개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어본다. 정말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부딪히기
대학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스무 살들이 우르르 일자리를 구하던 시기인지라 아르바이트는 쉽게 따내지 못했다. 숫기가 없는 데다 낯가림도 심하고, 공부만 하다 보니 사회성도, 재치도 부족했던 시기였다. 아르바이트 실습을 나갔다가, 카페 면접을 봤다가 영 힘을 못 쓸 것 같다며 잘렸다. 그렇게 몇 달을 전전긍긍하던 끝에 한 수학학원에서 보조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최저시급을 받고 하루에 여덟 시간씩 일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눈치껏 알아서 보조 강사끼리 돌아가면서 간식을 먹고 돌아오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도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했다. 계속 서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가르치고, 청소를 했다. 분명 나는 수학학원에서 일하기로 했는데 원장님의 부탁으로 수학학원과 붙어있던 영어학원의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첫 아르바이트였고, 나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바쁘니까 시간도 잘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했다. 7달을 더 일했다.
4명분의 일을 하루에 혼자 다 하면서도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해 혼난 날이 있었다. 집에 가서 문득 힘들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학원 일이 가장 쉬운데 그걸 못 하냐고 했다. 내가 일을 못해서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앓기만 했다. 모두가 나보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엄살 피우는 것 같아 괴로웠다. 삶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퇴근 후 인스턴트 음식과 라면, 과자로 폭식하고. 차라리 길을 가다 사고가 나서 출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일을 관두고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일을 관둔다고 하니 학원은 보조 강사를 3명 더 뽑았다.
증명하기
너무 오랫동안 자존감이 떨어진 터라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할 용기가 들지 않았다. 나는 돈을 받고서 일할 자격이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교육 봉사활동을 다녔다. 투철한 봉사심보다는 단지 내가 필요한 곳이 세상 어딘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보란 듯이 잘해서 그때의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다양한 학생을 상대하며 길러진 사회성으로 자연스럽게 말은 할 수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수업 방식을 본떠 수업은 준비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봉사 담당자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수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다음 주에 또 봐요.’ 나를 구하는 말이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 내가 나를 괴롭히며 발버둥 치던 와중 생존을 위해 익혔던 그 능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리 상담 센터에 방문하며 그때 얻은 내 상처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쉬는 시간과 분업만 보장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자 용기가 고개를 들었다. 영혼에 간 금이 빈틈없이 채워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력서를 구직 사이트에 올렸다. 어느 영어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첫 출근 날부터 원장이 반말을 하더니 소리를 지르길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럼에도 내 잘못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다음 연락이 온 국어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다. 긴장하며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원장님은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했다. 그 눈에서, 숫기가 없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내 성격은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비쳤다. 정식 강사로 일하게 됐다. 첫 학원에서의 경력을 높이 사 뽑았다고 했다. 그 뒤로 가르치는 게 마냥 즐거운 날만 있지는 않았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아가기
지난 2년을 통해 처음의 물음을 증명해 냈다. 나의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다. 고통스러운 경험일지라도 결국엔 전부 지금의 내가 있게 한 양분이 된다. 그때의 상황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으며, 더 이상 내 고통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보호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는’은 강조의 표시이자 확인의 증표이다.
한 발짝 더 나간다. 현재’도’, 과거로부터 형성된 나의 신념은 과거를 도울 수 있다. 이제는 나의 상처를, 그때의 나를 보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도’는 더함의 의미다. 현재와 과거는 서로를 도울 수 있다. 그 주체가 누구든, 시간은 사람을 살린다. 사람은 살 자격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제 나는 과거와 현재를 차곡차곡 모으며 미래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