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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불안 속에서도 반짝이는 청춘의 모습 - 연극 '갈매기' [공연]

니나가 그토록 찾아 헤맨, 갈매기와 배우라는 자아 사이에서 발견한 것들

by 권혜선 에디터
2026.08.21 19:30

고전은 어렵다. 명확한 주인공이 없다면, 특정한 주제가 잡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더더욱. 바로 ‘안톤 체홉’의 희곡이 그렇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가 주인공이기에 부각되는 자가 없고, 삶을 선언하기보다 관찰하는 예술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무대 위에 오르고, 연극을 공부하는 이들이 필수적으로 거쳐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많은 극장에서 체홉의 희곡을 연출하고 연기했다. 8월 동안 체홉의 4대 장막 중 하나인 <갈매기>를 극단 맨씨어터가 공연 중이다. 해당 공연이 화제가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들며 사랑받고 있는 전미도 배우가 ‘니나’ 역을 맡았기 때문일 것이다.

 

 

 

Ⅰ. 열정이라는 재능, 배우 전미도와 '니나'


 

갈매기 니나2.jpg

 

 

‘니나’는 여성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역할이다. 니나에게서는 무너지면서도 “나 배우가 너무 되고 싶어!”라는 포기할 수 없는 꿈과 성공에 대한 욕망, “나만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거야.”라는 좌절 끝의 의지가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니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위태롭게 반짝이는 청춘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인물이다.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전미도' 역시 이를 잘 표현한다. 배우 전미도의 니나는 ‘열정이라는 재능’을 가졌다는 설명처럼 극중극을 연기하는 순간마저도 빛이 난다. 뜨레쁠레프의 공연 중단 외침을 듣지 못할 정도로 연기하는 순간 보인 몰입감, 그리고 그때 그녀의 뒤를 가득 채운 꽉 찬 보름달은 니나라는 여배우가 연기할 때 내뿜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예술가로서 인기를 누리는 뜨리고린의 창작의 고통까지도 동경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배우로 성공하고 싶다는 아주 강력한 니나의 욕망은,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1막에서 억압하고 대우받지 못하는 가족의 시선을 피해 '연기를 위해 달려와 뜨레쁠레프에게 안기던 니나의 모습'과 4막에서 사랑도 성공도 멀어진 채로 내내 외면하던 뜨레쁠레프를 다시 찾아온 '흐릿하고 누추한 니나의 모습'은 그 극적인 낙차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적 아픔으로 다가온다.

 

 

 

Ⅱ.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어른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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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불안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가장 공감하고 또 혐오할 나이대가 바로 이때다. 니나도, 뜨레쁠레프도 이 나이에 속해 있다. 이들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을 갈망하고, 성공을 동경한다. 그 반대편에는 이미 바라온 것들을 이루어 미래가 확정된, 혹은 이제 나이가 들어 기대할 여력이 없는 기성세대가 있다. 아르까지나는 성공한 여배우, 뜨리고린도 성공해 늘 펜을 놓지 못하는 유명 작가, 도른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평판 좋은 의사, 소린은 나이 들고 병들어 기력이 없는 인물이다.


4막의 호수 위에서 니나와 뜨레쁠레프의 대화,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 간의 로또 게임 장면은 단연 <갈매기>의 하이라이트다. 니나는 “나는 갈매기예요. 아녜요, 그게 아녜요. 난 배우예요.”라고 반복해서 말하며 갈매기와 배우라는 꿈 사이에서 자아를 찾아 헤맨다. 뜨레쁠레프는 어머니에게조차 끝내 인정받지 못한 채 난항을 겪고 있는 꿈과 여전히 뜨리고린을 향해 있는 니나의 사랑을 절박하게 갈구하지만 실패한다.


니나가 호수를 가로지르며 여기저기 물이 튀는 혼란스러운 순간에도, 로또 게임을 하는 식탁 주변은 평온하다. 그 순간 뒤편에 있는 식탁에선 웃음소리가 ‘찌르듯이’ 흘러나온다. 뜨리고린은 날개가 펼쳐진 채로 박제된 갈매기를 보고도 자신이 박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호수라는 초현실적인 공간의 일렁이는 분위기, 두 집단의 단절감은 앞으로도 철저한 무관심 아래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청춘의 고독함과 불안감을 체감하게 한다. 그래서 결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 감각을 알고 있으므로 니나와 뜨레쁠레프 둘 중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다.

 

공연에선 어른들을 보며 그들이 이룬 꿈을 동경하고 욕망하는 청년들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그중에서도 불안과 추락을 동력 삼아 반등하기 위해 버텨내기를 택하는 니나와 추락에 지쳐버린 뜨레쁠레프의 삶은 결말을 달리하게 된다. 두 청춘은 자신을 갈매기에 대입해 본다. 박제된 갈매기는 기성세대의 기억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잊혔지만, 두 청춘은 계속해서 의미를 찾아 헤맸다. 니나와 뜨레쁠레프뿐만 아니라 마샤와 메드베젠코 등 모두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원하는 꿈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다.

 

 

 

Ⅲ. 슬픈 순환을 마친 자의 선택


 

명확한 주제가 없어 보이는 체홉의 희곡에서 일관되게 받은 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보자”라는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명령이 아니라 함께 살아보자는 독려 같은 것 말이다. <갈매기> 속 니나는 1막에선 뜨레쁠레프가 쓴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연기하고, 4막에 이르러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 공연 속 독백을 다시 연기한다. 공연에서는 해당 연기를 할 때 두 장면 모두 동일한 손동작이 함께 삽입되었고, 니나는 몰입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열정적으로 대사와 움직임을 행했다. 니나가 다시 과거의 연기를 하는 독백, 특히 “목숨 가진 모든 것들은 슬픈 순환을 마치고 나서 죽어 버렸다….”라는 대사가 공연을 통해 새롭게 보였다. 그 안에서 내 것이 아닐 것만 같았지만 내게로 돌아온 절망, 처절히 외치고 있는 좌절에 대한 슬픔,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발악이 읽혔기 때문이다.


 

니나 : 이제 난 알아요, 코스챠,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마찬가지예요, 당신이 글을 쓰건 내가 무대에서 연극을 하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견뎌내는 능력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견디는 법을 배우고, 또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해요. 난 믿어요, 그래서 난 그렇게 괴롭지 않아요. 나의 사명을 생각할 때면, 난 삶이 두렵지 않아요.

 

뜨레쁠레프 : 당신은 자신의 길을 찾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분명히 알게 됐군. 그런데 난 여전히 혼란스러운 망상과 꿈속을 헤매며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어.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고, 무엇이 내 사명인지도 모르겠어.

 

 

뜨레쁠레프가 그때 그나마 확신할 수 있던 것은 니나를 향한 사랑이다. 그는 니나를 따라가고 싶어 하지만, 니나는 이를 만류한다. 뜨레쁠레프는 그녀에게 뜨리고린이 되어줄 수 없고, 그녀가 아르까지나처럼 되도록 만들어줄 수도 없으며, 그 자신조차도 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 연극을 하며 빛나던 연인의 불행을 목도하고 어머니조차 읽어주지 않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자각한 그는, 결국 마음이 무너진다. 그렇게 그는 갈매기를 총으로 쏴버리듯 자신의 인생을 끝마친다.

 

한편으론 그의 비극을 보며, 더더욱 니나가 - 니나만큼은 - 타인에게 욕망당하기보단 스스로 욕망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면, 가장 순수한 사랑을 저버린 뜨리고린과 같은 존재를 버리고, 호수 주변에서 조금은 벗어나기를. 그녀가 박제되지 않고 정말로 훨훨 날아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Fin. 고전, 그리고 <갈매기>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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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선 여러 인물이 자연물로 운명을 점쳐보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암묵적으로는 살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 '끝없는 불확실성'을 말이다. 흔들리면서도 계속해서 살아갈 존재들을 통해, 지금 '나의 삶'을 대하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당신이 <갈매기>를 읽고, 또 보기를 바란다.


고전 <갈매기>는 어렵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던가. 체홉은 세상에 너무나도 다양한 삶과 사랑이 있고, 한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극은 텍스트로 된 고전을 살아 숨 쉬게 만들어 관객 앞에 놓는다. 맨씨어터와 김정 연출의 <갈매기>에는 꿈과 사랑을 주축으로 한 수많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배우의 말과 행동, 연출을 통해 ‘서브텍스트’의 내용까지 구현되는 것을 보며, 관객으로서 멀게만 느껴지던 고전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경이롭다.


본 글에선 전미도 배우에 의해, 전미도 배우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은 귀한 ‘니나’와 <갈매기>를 바라보며 든 생각을 풀어보았다.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를 지나 그 이상으로 접어든다면 니나와 뜨레쁠레프보다 아르까지나나 소린, 도른에게 더 이입해 텍스트를 읽게 될지도 모른다. 살아온 삶의 궤적에 따라, 그리고 연출가와 배우의 시선에 따라 체홉의 글은 매 순간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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