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이프'라는 이름 속 가려진 것들 [공연]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의 역사와 계보를 다룬 연극 <와이프>
글 입력 2024.03.0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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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와이프>는 2020년 초연 이후 지난 2023년 12월 26일부터 올해인 2024년 2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되었다.

 

재연을 기준으로 <와이프>는 영국을 배경으로 1959년, 1988년, 2024년 현재(2023년에는 자막 등이 2023년으로 표현되었다)와 2046년의 4가지 시대가 타란텔라의 탬버린 소리를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등장하며 각각의 등장인물은 서로 연결된다. 각 시대가 열리며 헨리크 입센의 희곡인 <인형의 집>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재현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무대와 여러모로 관계가 있는 커플 혹은 커플들이 등장하고, <인형의 집>의 노라로 대표되는 ‘와이프’도 등장한다.

 

여성과 성소수자 권리 신장의 역사를 다루기도 하는 이 연극에서 ‘와이프’는 억압받는 자의 상징이고 자유를 꿈꿨던 노라가 표상하는 바이기도 하다.

 

 

 

퀴어와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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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와이프>는 퀴어의 계보학적 역사를 ‘성소수자’가 함의하는 가부장제와 이성애규범성에 대한 위반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친족 관계’와 ‘혈연’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거대한 아이러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성소수자가 이 사회에서 은폐되거나 억압받는 삶을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모순이기도 하다. 1959년의 커플인 데이지와 수잔나 중 데이지가 위장결혼을 해 낳은 아들인 아이바는 1988년에 에릭이라는 아직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성에 확신이 없는 어린 애인을 둔 게이로 등장한다. 2024년 현재 중년이 된 아이바는 남자친구 핀과의 결혼을 앞둔 에릭의 딸 클레어와 대면하고, 2046년 클레어의 딸 데이지는 연극을 하는 수잔나를 찾아온다.

 

작품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날수록 변화하고 있는 인식과 제도, 담론과 그 당시 차별과 억압의 역사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를 몰락시켰던 남성 간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정책, 마거릿 대처가 동성애를 ‘공론화’하는 것을 금지하는 ‘섹션 28’이 각각의 시대에서 언급되기도 하고,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2024년 현재의 모습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변화하고 있는 사회 역시 엿볼 수 있다. 1959년 데이지가 자신의 연인인 수잔나에게 자신이 남편 로버트에게 강제로 당한 것은 아니었다고 표현하지만, 1988년 에릭이 아이바에게 너희 엄마(수잔나)는 너희 아빠(로버트)한테 강간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29년 후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이 변화시킨 사회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또한 1959년에는 타인에 의해 ‘뒤집혔다’, ‘뒤집힌’이라고 불리고 은폐되는 데이지와 인물들의 동성애 성향은 시대가 지나면서 ‘퀴어’, ‘레즈비언’, ‘게이’ 같은 구체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원래는 성소수자를 비하하고 모욕을 위한 용어였던 ‘퀴어’를 당사자들이 전유해서 소수자성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로 만들었듯이, 1959년부터 현재 시대까지 변화하는 제도와 성소수자 정치의 발전이 대사에서 드러난다. 이때 현재 성소수자의 권리는 이전 세대의 실패와 도전이라는 유산을 딛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동시에 2024년 행진을 하다 소수자 혐오 범죄로 인해 총에 맞아 죽은 중년 에릭의 일화는 여전히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이 단순히 ‘동성혼 합법화’에서 끝나지 않으며 퀴어가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현재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인형의 집>에서 타란텔라를 출 때 등장하는 무대용 소품인 탬버린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4개의 시대와 그 시대 속에 인물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그 인물들은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고, 경합하고, 타협하기도 하면서 대를 이어 내려온다. 1958년도의 ‘실패한 연인’인 데이지가 수잔나에게 남겼지만 전해지지 못한 글귀가 적힌 탬버린이 2024년의 새로운 데이지를 통해 수잔나에게 전달되고 1959년과 2046년 속의 수잔나와 데이지가 겹쳐지며 4대에 걸친 기나긴 여정은 끝을 맺는다.

 

 

 

무결하지 않은 ‘와이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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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캐릭터들은 서로 갈등하거나 부딪힌다. 동성커플이더라도 ‘와이프’의 위치가 있는 것처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간의 관계는 여러 면에서 평등하지 않다. 1959년의 수잔나와 데이지, 1988년의 아이바와 에릭의 관계에 있어서 결국 그 둘의 입장 차이를 만드는 것이면서 이별에 개입하는 것은 계급이고, 데이지가 이성 간 결혼으로 유지한 중산층 계급은 아이바에게 대물림된다. 아이바는 자신이 경제적인 차원에서 애인인 에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고 에릭을 경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계급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퀴어로서의 삶에 교차하고 개입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두 커플과는 반대로 2024년의 아이바와 카스의 관계에 있어서 카스는 에릭이 그랬듯 중년의 아이바보다 어리지만, 카스는 아이바를 자신의 ‘와이프’라고 소개하는 등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카스가 관계의 우위에 있다는 것이 암시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이전 시대에 등장했던 사건들이나 인물들의 근황이 다음 시대에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대표적인 인물은 연인을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성을 숨긴 채 살게 된 데이지다. 1988년도의 데이지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이바와 에릭의 대화 속에서 1959년의 삶의 궤적들을 알 수 있다. 아이바가 묘사하는 데이지는 자신의 아들인 아이바와 반목하고 아이바의 퀴어성을 억압하는 인물이다. 1988년까지 아이바의 말에 따르면 아이바는 자신의 ‘별남’, 특이함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로버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데이지와 아이바가 겪었을 수많은 갈등은 마치 앨리슨 백델의 <펀 홈: 가족 희비극>의 젠더 반전 버전으로 뻔히 연상된다. <펀 홈> 속에서 게이 아버지 브루스가 레즈비언 딸 앨리슨을 통해서 봤던 자신과의 동질감, 차이, 양육자로서의 질투, 사랑, 자기혐오 같은 수많은 감정을 데이지도 아들 아이바에게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들 아이바는 어머니 데이지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중년의 아이바가 겪게 될 변화를 예고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이바는 1959년에 정상성의 삶을 결국 포기하지 못하고 수잔나를 따라가지 못한 자신의 어머니 데이지의 패착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어머니의 위선을 비난하기 위한 근거로 들었던 1988년 아이바의 말 속에서 밝혀지는 에녹 파월의 연설을 듣고 감동받아 울었다는 엄마 데이지의 행보는 소수자이지만 중산층이기 때문에 계급 이슈가 더 선행하게 되는 인간의 다면성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데이지는 수잔나와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렸던 것일 수도 있다. 아이바와 에릭의 대화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데이지의 진짜 의도를 알 수는 없다. 여기서 애증의 대상인 양육자와 자식의 관계 속에서 세대 간 정보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관객은 그 격차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몰이해를 인지할 수밖에 없다. ‘와이프’들은 억압과도 마주하고, 수많은 모순과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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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들이 정점을 이루는 부분은 2막에서 중년이 된 아이바와 아이바의 남편 카스, 아이바를 찾아온 클레어와 클레어의 애인인 핀이 모두 대면했을 때이다. 2024년은 현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1959년, 1988년의 대립보다 더욱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다. 카스와 클레어의 대화는 여러모로 동시대적인 정동을 자극한다. 카스는 유명한 게이 배우로서 젠더 문제를 ‘표백’하고 여성 억압을 더 이상 심각하지 않은 ‘과거의 일’로 치부하면서 <인형의 집>에서 노라 역을 맡기도 한다. 카스와 클레어는 논쟁이 붙고 싸움 끝에 카스와 핀이 퇴장한 이후, 더 이상 급진적으로 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아이바와 이를 지적하는 클레어의 대화가 이어진다.

 

아이바는 영미권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이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주류화된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 시민권 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어찌 보면 전형적인 퀴어 커뮤니티 내부의 ‘동성애규범성’을 그대로 따르게 된 존재다. 브렉시트에 찬성했냐는 클레어의 물음은 정치적 급진성과 퀴어성을 유지하던 아이바의 변화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막에서 불꽃이 튀는 지점은 소수자 정치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자본가 게이 꼰대가 된 (중년) 아이바에게 자신의 아버지 에릭처럼 살지 않았다며 비난하며 카스와 헤어지라고 조언하는 클레어의 말과 이를 대하는 아이바의 태도다.

 

여기서 또 다른 모순은 자신의 아버지 에릭이 죽고 없자 아버지의 진정한 첫 애인을 결혼식에 초대하겠다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인 클레어는 자기 삶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위해서 소수자성을 지닌 타자를 하나의 대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클레어는 아이바와의 대화에서 진정한 퀴어의 삶을 예찬하며 퀴어에 대한 대상화를 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 그리고 네 사람의 ‘티키타카’는 의미심장한 지점들이 많다. 카스는 자신이 여성혐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클레어는 자신이 퀴어를 존중한다고 믿으며 핀은 겉으로는 착한 소위 '키링남'으로 보인다. 이러한 무지는 아이바가 자신의 어머니 데이지의 과거를 알지 못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데이지의 이야기는 에릭에 의해서 일부 폭로됨으로써 아이바는 그 모순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선택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아이바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류 사회의 커버링 요구에 순응한 중년 아이바가 되었다.

 

결국 클레어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바는 퀴어로서 살아오면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내고, 아이바 역시 카스가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핀도 클레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클레어와 중년 아이바의 대화가 둘에게 미친 영향이 어떠한 종착점에 가 닿았는지는 뛰쳐나간 아이바의 모습과, 2046년 클레어의 딸 데이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클레어가 핀을 떠났다는 사실로 유추하게 될 뿐이다.

 


 

연극 <인형의 집>이 관통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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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형의 집>이 각각 네 개의 시대 속에서 등장하고, 희곡 텍스트 <인형의 집>을 연극(공연예술)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1959년의 <인형의 집>은 고전적인 그 당시의 시대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올려진 무대이고, 1988년은 ‘외국어’가 들리고 ‘모던’한 무대예술을 보여준다. 2024년 카스와 아이바가 올린 버전은 카스가 노라를 맡는다. 아이바의 프로덕션에서 올린 <인형의 집>은 모던하지만 1988년만큼 추상적이지는 않다. 2046년은 1959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형의 집>이 표현된다. 노라가 집을 나와 독립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인형의 집> 연극과 달리 1959년의 데이지는 집을 떠나지 못한다. 문학 작품인 <인형의 집>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연극 속 대사는 수잔나를 붙잡지 못하고 ‘자신으로 살지 못하는’ 데이지를 떠오르게 한다.

 

<인형의 집> 속 노라는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소수자들의 아이콘이다. 2046년의 데이지가 수잔나에게 이 연극을 보고 퀴어 여성으로서 감명받았다고 말하고, 동성애자들이 자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시기인 1988년의 아이바는 <인형의 집>을 접한 후 노라에서 동성애자인 자신이 받는 억압을 겹쳐서 보며 자유를 찾은 노라를 동경한다. 1988년도의 아이바와 ‘노라’를 연기한 배우 수잔나의 대화가 소수자 간의 연대에 대한 가능성이자 텍스트가 가질 수 있는 확장적인 의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2024년에 재해석(?)된 <인형의 집>은 일종의 ‘절망편’이다. 현재 프로덕션의 대표가 된 중년 아이바의 애인인 카스에게 노라를 맡긴 <인형의 집>은 경제적인 이윤 추구라는 측면 속에서 젠더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맥락을 누락시키며 <인형의 집> 속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몰성화된 ‘보편의 것’으로 전유하며 페미니즘의 맥락을 탈락시킨다. 그리고 이 논쟁적인 친자본주의적 연극은 클레어와 카스가 벌이는 논쟁의 주요한 쟁점이 되며, 후에 있을 클레어와 변해버린 중년 아이바의 대화까지 이어진다.

 

이 작품은 퀴어를 적극적으로 등장시키는 분야는 매체보다 연극(공연예술)이라는 맥락의 극 속의 대사처럼 이 작품은 연극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극 중 2046년에 노라를 연기하는 배우인 수잔나는 연극이 좋아서 의사가 되지 않겠다는 자신의 팬 데이지를 말리는 등 공연예술 분야에 대한 ‘자학 개그’를 선보이기도 할 정도로 연극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 극은 연극이라는 공연예술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울림과 감동, 사회적 메시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전으로 여겨지는 <인형의 집> 속 노라와 역사 속, 그리고 지금의 와이프들이 공명할 수 있듯이 연극이 줄 수 있는 영향은 영속적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연극은 여전히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남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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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연극 <와이프>는 영미권의 퀴어와 페미니즘 담론의 발전과 계보를 추적하며 동시에 그 과정에서 연극과 공연예술이 가지는 힘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여권 신장과 퀴어 인권 운동의 역사를 연극사와 겹쳐 놓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주제를 더 부각하기 위해서 ‘마조리’ 혹은 연극의 하녀 캐릭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더 유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품을 보며 2046년의 <인형의 집>을 재현하는 연극이 왜 1959년과 유사하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또한 이 작품은 영국 배경이지만 한국에 맞추기 위해서 대학교 입학시험을 ‘수능’이라고 번역하거나 2046년 수잔나와 데이지의 대면을 굉장히 한국적인 팬덤 정서를 반영해 ‘배우님’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설정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오스카 와일드가 받은 형벌과 연관되는 영국의 사법제도, 에녹 파월과 마거릿 대처, 그리고 브렉시트까지 영국을 연상시키는 소재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중간중간의 각색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배우들이 여러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있다. 1막 1959년에서 가부장제의 위계를 체화하고 아내인 데이지를 제압하는 남성상인 로버트를 연기하던 배우가 몇 분 뒤 1988년으로 전환된 이후 로버트와 데이지의 아들이자 급진적인 퀴어 운동에 참여하며 외설적이고 일탈적인 말을 내뱉는 청년의 아이바를 연기한다. 1959년에는 삐걱대던 부부인 로버트와 데이지 역할을 맡은 배우가 2024년에는 곧 결혼할 예정인 의사 클레어와 간호사 핀으로 등장하며 겉으로 보기에 핀은 어수룩하고 클레어의 말을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영미권의 가부장제 시스템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실 이는 근대성이 초기 근대에서 후기 근대로 이동하면서 단지 더 교묘해진 가족주의와 가부장제의 모습이고, 아이바와의 대화를 겪고 그것을 깨달은 클레어가 핀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바의 청년 시절 애인 에릭과 중년 시절 애인 카스는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한 배우가 여러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작품 속 복잡한 관계들을 고려한다면 다소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성과 여성 인권에 대한 백래시가 심화되고 여전히 강도 높은 퀴어 혐오가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전 세계가 극우화되고 있는 도중 아직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지 않은 나라인 한국에서 이 연극이 가질 수 있는 전복적인 힘은 이 연극이 처음 만들어진 영미권보다 유독 클 수밖에 없다. 많은 것들이 계속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억압받는 ‘와이프’들이 존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연극 <와이프>는 소수자 정치에 있어서 새로운 방식의 저항과 연대의 방법론을 말하고 있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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