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각형 하나엔 모두 담기 벅찼던 그들의 이야기 - 영화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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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디깅(자신의 관심사에 깊이 파고든 행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주로 자주 듣는 장르 신곡을 폭넓게 챙겨 듣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앨범을 발매하면 들어보는 식이다. 하지만 때론 예상치 못 하게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거리에 나오는 음악이 좋아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해서 알게 된다거나, 비정기적으로 스트리밍 플랫폼 최신 앨범 섹션을 들여다보고 마음에 드는 앨범 커버 속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특히 후자는 음악 본연의 매력이 아닌 앨범 커버에 주목하여 곡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앞선 디깅 방식과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어렸을 적 우연찮게 시도했던 일명 앨범 커버 디깅 방식은 꽤 보석같은 곡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다. 때론 경험해보지 못 한 장르의 세계로 데려가 주기도 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밴드를 처음 알게 된 순간도 앨범 커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자주 듣는 퓨처 베이스(전자 음악의 한 장르) 장르 앨범 중 오래도록 좋아하는 앨범 또한 처음엔 앨범 커버가 흥미로워 듣게 되었으니 이쯤되면 우연치곤 꽤나 운명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이젠 종종 최신 앨범란의 앨범 커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동시에, 이미 발매된 앨범들 사이에서도 눈길이 가는 앨범 커버는 곡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기도 한다.
물론 이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음악은 청각을 기반으로 한 예술이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앨범 커버엔 그다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피지컬 앨범을 사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음원만을 듣는 일이 만연해졌으니 말이다. 음반을 만들어내는 음악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유명 아티스트들이 발매하는 앨범 커버엔 가수 자신의 모습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기 컨셉츄얼한 분위기를 풍기긴 하지만, 작게 보이는 비슷비슷한 앨범 커버가 감상자에게 그렇게 와닿을 리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과 다르게 LP 커버 자체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 시기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은 아주 반갑게 느껴졌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록 음악 전설들의 LP 커버를 제작한 디자인 스튜디오인 ‘힙노시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힙노시스는 기획자 스톰 소거슨과 사진작가 오브리 파월이 만나 탄생했으며, 어릴 적 친구였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일이 그들의 시작이었다. 이후론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와 같은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며 큰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모두 옛날 록 밴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영화는 17개의 LP 커버 제작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스톰과 파월의 작업 비하인드에 당시 힙노시스에 커버 디자인을 맡겼던 아티스트들의 짤막한 인터뷰를 더한다. 실제로 디자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은 4,000점이 넘는 방대한 시각자료가 쓰인 만큼 이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들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그간 등한시되던 앨범 커버가 음악 시장에서 갖는 의미를 상기할 수 있었다.
영화 내에서 노엘 갤러거가 딸에게 앨범 커버에 대해 알려주며 ‘이거 때문에 몇 시간이나 회의를 했다’고 이야기했던 부분은 그 시절 아티스트들이 얼마나 앨범 커버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의 예술성이 컸던 만큼, 힙노시스는 앨범 커버에도 개성과 창의성을 부여하며 이를 또다른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들이 작업한 앨범 커버를 보면 비슷한 느낌을 주는 커버가 없다. 그 많은 커버들이 각기 다른 느낌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은 앨범 커버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기 충분하다.
또다른 면에선 작업 비하인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장인 정신에 주목할 수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촬영을 위해 축구공 60개의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는 수작업을 진행하여 제작한 더 나이스 [Eldgy]나 포토샵이 없어 스턴트맨을 데려와 그에게 불을 붙인 후 촬영한 사진이 사용된 핑크 플로이드 [Wish You Were Here] 등의 작업 스토리만 봐도,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웬만한 장인 정신과 집요함이 아니라면 전설적인 앨범 커버는 나오지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성기를 구가하다, 안타깝게도 돈 문제로 한순간에 갈라서며 힙노시스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럼에도 힙노시스의 스토리는 특별하다. 음악은 들어야 감각할 수 있는 청각적 예술이지만, 나아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즐길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앨범 커버가 단순히 작은 사진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상업적인 트렌드에 맞춰 앨범 커버가 예술적으로 함의하는 바가 적어진 요즘, 영화는 그 시절로 돌아가 앨범 커버에서 생동하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다큐멘터리 특성을 반영하여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재치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점도 흥미롭다.
여기에 긴 이야기를 앨범 커버는 컬러로 보여주면서도 그 당시 모든 자료와 인터뷰 영상은 흑백으로 처리한다는 점은 시각적으로 탁월하다. 대조적인 속성으로 인해 앨범 커버의 예술성이 극대화되고, 흑백의 영상을 통해선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힙노시스의 창의성과 집요함에 찬사를 보내게 되는 영화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은 오는 5월 1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영화는 옛날 록 밴드를 좋아했던 사람들과 당시 앨범 커버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단지 음악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하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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