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쟁 소식이 들린다. 끝날 것처럼 하다가도 아닌 듯하다. 이 전쟁은 언제까지 ‘그들’의 이야기일지 질문하게 된다. ‘우리’의 이야기는 고작 주식의 등락에 그친다. 몸서리치면서도, 도무지 내 얘기로 삼지는 못한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을 보면 드론, AI 기술이 현대 전쟁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정확한 장거리 타격을 가능케 하는 자폭 드론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부터 그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번 이란 전쟁에서 미국은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을 사용해, 작전 지휘권을 AI에게 일정 부분 위임한 사실을 밝혔다. 마주 본 채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과, 멀리서 손쉽게 죽이는 전쟁의 공포는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 세계는 이제 모두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서로 두런두런 손잡은 지구촌 그림, 국제 결혼이나 이민 같은 걸 생각하면, 이제 국경이란 ‘장벽’보다는 ‘문’ 정도로 보이는데 말이다. 먼 나라의 전쟁은 주식 얘기가 되고, 전쟁 당사자들조차 서로를 본 적 없는 세계는 지금, 얼마나 가까운가?
전쟁과 물리적 거리감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난 후였다. <마션>의 작가로 유명한 엔디 위어의 또 다른 장편 SF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우주적 규모의 광활함 속에 홀로 남은 주인공은 한 외계생명체를 만나 가까워지고, 그 우정 덕분에 11.9광년 떨어진 거리에서 지구를 구한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쟁 중인 인류에게 어떠한 해결책도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런 이야기에 감동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인간다움을 여전히 희망해본다.
일반적인 영웅 서사와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대의를 위한 희생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의사와 관계없이 등 떠밀려 지구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작품의 배경은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 미생물이 태양 빛을 갉아먹기 시작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기온이 감소한 지구에서 인류 문명의 멸망은 시간문제이다. 이때 감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별 ‘타우 세티’를 발견하고, 지구로부터 11.9광년 떨어진 이곳으로 갈 우주선을 준비한다. 그러나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킬 연료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는 편도행이자 자살행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제로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 ‘그레이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고, 함께 온 대원들은 비행 중 사망했음을 확인한다.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은 그레이스는 패닉에 빠지지만, 이내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자신의 정체와 임무를 되짚어간다. 그러던 중 주변을 맴돌던 낯선 우주선에서 지적 생명체를 만나게 되고, 그 또한 자신의 행성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가 혼자 남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레이스는 이 외계 생명체에게 ‘로키’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소통을 시도하고, 둘은 우정을 나누며 문제해결에 가까워진다.
‘우정’을 테마로 삼은 이 SF 영화를 보며, 생의 목적을 물어보았다. 말하자면, 우리가 삶을 이어가고, 인류 멸망을 막고자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혹 다른 누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가 흔들리면, 그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이어갈 수 없다. ‘생명’의 탄생, 그리고 이것의 ‘소중함’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극 중 그레이스가 우주선 탑승에 떠밀린 이유는, 물론 과학자로서 그의 탁월함도 있지만 ‘남은 가족이 없고, 미혼에, 키우는 강아지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무연고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말이다. 이만큼이나 인간은, 존재의 가치를 타인으로 입증하며 살아간다. 모든 비극은 관계에서 시작되나, 관계 없이는 극 자체가 없다.
그러니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로키가 그레이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고독 속에 찾은 유일한 ‘이야기’의 시작이니, 끝도 될 수 있다. 숭고한 희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 같다. 꼭 숭고하지 않아도 생물들 사이에 어디서나 싹트는 우정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존속하기를 바랄 이유가 된다.
한편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레이스가 과학자로서, 주어진 현상을 이해하고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의 논증적 사고가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SF 작품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사고의 흐름을 아주 간략히 압축하기에, 소설 팬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도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좀 더 확대해석해 보면 ‘과학적 사고’의 핵심적인 정신을 찾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실패, 협력, 그리고 낙관이다. 그레이스는 야심 차게 발표한 논문이 학계로부터 조롱받고, 이후 연구에 손을 떼고 중학교 교사가 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외계 미생물의 등장이 그러한 평가를 뒤집을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또 한 번 실패를 확증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몇 번의 실패에도 종국에 그레이스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던 힘은 협력과 낙관에 있었다.
전 세계 과학자들 및 주요 관계자들과의 협력은 물론이거니와, 음파로 세상을 보는 외계생명체 로키와도 협력했다. 로키는 고향 행성에서 뛰어난 엔지니어이다. 우리 과학의 기본적인 합의점인 ‘상대성 이론’을 로키는 모른다. 그러나 로키는 그레이스가 생각지 못하는 공학적 관점을 제시하고, 이런 식으로 둘은 외로운 우주에서 최고의 더비가 된다.
이들의 시도는 모르는 것, 어려운 것, 확률이 낮은 것들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마션>과 더불어,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인 엔디 위어의 과학에 대한 믿음과 낙관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유쾌한 성격은 사건의 긴장감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관객들을 그의 여정에 동화시킨다. 제목에 쓰인 ‘헤일메리’ 또한 이러한 낙관의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노리고 시도하는 마지막 한 방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면서, -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 존재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울고 웃는 생명의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걸어온 우리 인류는 이제 목적을 상기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자유주의에 따라 우리는 단숨에 연결되었고, 과학기술은 물리적 한계와 언어적 한계를 모두 허물었지만, 우리는 아직 제대로 가까워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 성장’이, 혹은 ‘발전’ 그 자체가 인류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희미해질수록 ‘나’도 희미해지고, ‘목적’이 희미해질수록 ‘생존’도 희미해질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 가면 미국의 개전을 규탄하는 대자보가 한국어와 영어로 써 붙어있다. 닿을지 몰라도 던지는, 생명들의 간절한 헤일메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