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예술 -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 37.5

글 입력 2023.11.2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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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분의 시간 동안 아름다운 악기들의 선율들에, 잠시 난 음악과 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서로를 한껏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이 관람이 정말 소중한 기회로 다가왔다. 평소에 유튜브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듣거나 악기들에 관심은 많았지만, 직접 가서 관람하기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벽이 있는 것 같아 도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좋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덕분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포스터.jpg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의 <더 콘서트 37.5>는 인간의 평균 체온 36.5도에서 "음악을 향한 우리의 온도로 1도 더 높여보자"라는 의미로 지어졌다고 한다. 공연장의 들어가기 전, 이러한 공연의 포부에 어떤 음악들로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질지 기대가 된 것 같다. 공연장에 들어가서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분위기를 느꼈다. 무대 공간은 좋은 공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간과 조명에는 이유가 있기에 오케스트라의 시작이 더욱 궁금해졌다. 연주 무대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객석이 둘러싸인 형식의 빈 야드형 공간이, 어떤 좌석에서 관람을 해도 풍부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줄 것 같았다. 그렇게 지휘자의 손끝이 떨어짐과 동시에 시작한 오케스트라는 가히,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 황홀감이 지속되는 시간들이었다.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는 사람들이 조금 더 오케스트라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음악들과 클래식으로 관객과 유대감을 쌓아갔다.

 

처음 오케스트라를 보러 와 뻣뻣하게 굳은 마음도 어느새, 악기들의 선율에 녹아들었다.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주변의 시야들이 검게 흐려져 그 무대와 나 오로지 둘만 있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에게 푹 빠져있는 느낌은 이런 게 아닐까. 오케스트라를 보며 느낀 건, 많은 연주자들이 하나의 곡을 위해 달리는 여정의 노력과 그 결실을 내보이는 순간들이 빛나 보였다는 것. 수십 명의 연주자들이 모두 연주하고 있는데 음이 하나도 나가지 않고 하나의 소리로 흡착되어 내보내지는 것들이 신기했다. 멀리서 공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연주자들이 춤을 추듯 몸을 같이 움직이는데 그 물결들이 합쳐지니 그것 또한 하나의 행위예술처럼 보였다.

 

어벤저스와 아이언맨 OST 연주가 나왔을 때는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이라 그런지 내 머릿속의 영화 장면들을 더욱 웅장하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친숙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덕분일까. 오케스트라에게 점점 스며들었다. 오케스트라의 매력은 다양했다. 성악을 하시는 분들과 합을 맞추어 한편의 오페라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기억에 남았던 건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의 조화. 하모니카가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악기인 줄 몰랐다.

 

어릴 적 불던 하모니카의 기억은 꽤나 우스꽝스러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하모니카의 독주를 듣자마자 하모니카에 대한 생각과 기억이 바뀌어, 하모니카라는 악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톨레도 스페인 환상곡’을 연주했는데 하모니카의 소리는 부드럽고 청아했다. 쭉쭉 올라 뻗어나가는 음들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악기와도 잘 어울렸다. 음악 연주를 듣다 보면 가끔 추억 테이프를 돌린 듯 이전 기억들이 재생될 때가 있다. 하모니카는 뭔가 추억에 대한 회상이 많이 떠올랐던 것 같다. 하모니카 특유의 잔잔하고 느긋한 음들의 이어짐을 들으며 여러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이외에도 전자 기타와의 합주가 있었는데, 뭔가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기본 오케스트라 관현악기와 달리, 전자 기타는 좀 더 가볍고 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팝스 오케스트라여서 그런지 전자기타를 중심으로 한 연주는, 매우 현대적인 해석이었다. 그렇게 난 이 공연의 기획의도에 맞추어 처음 겪어보는 오케스트라에게 누구보다 진심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다. 국악과 오케스트라의 조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도 정말 신선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네 분의 국악 연주자분들은 신모둠 중 3악장 ‘놀이’라는 곡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주를 시작했는데, 서로의 조화가 새로웠던 것 같다. 국악은 신나고 빠르게 서로 마주 보며 덩실 거리는 잔칫집의 느낌이 강했다면, 오케스트라는 좀 더 차분하게 마주 앉아 인사를 나누듯, 각자의 악기를 좀 더 표현하는 파티장의 느낌이 들었다. 그런 장점들이 융화되어, 하나의 소리로 나왔을 때 동서양이 가진 음악의 매력이 더욱이 배가 되어 느껴졌다.

 

*

  

그렇게 어느덧 공연의 클라이맥스로 갈 때쯤 이미 난 오케스트라와 친구라도 된 듯, 연주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창일 때쯤 지휘자는 뒤를 돌아 우리에게 박수 표시를 했고, 어느새 나는 박수라는 악기를 맡은 연주자 중 한 명이 되어있었다. 다 같이 합을 맞춘 적도 없는데, 모든 공연장에 있던 관객들은 하나라도 된 듯, 똑같은 박자에 박수를 치며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소리 중 하나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표정을 보았는데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맴돈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오케스트라가 시작되었을 때는 진지한 표정을 하거나, 감명 깊게 눈을 감고 음미하며 듣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며, 지휘자를 따라 연주한다. 8분의 1박자, 4분의 1박자, 사람들은 악보라도 있는 듯 리듬에 맞추어 공연을 즐긴다.

 

나는 오케스트라의 분위기가 무겁고 조금은 딱딱하고 엄숙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예의도 찾아보며, 잔뜩 긴장하며 자리에 앉았었다. 그런 내가 공연이 끝나갈 때쯤엔 호응을 하며 박수를 치며 웃고 있다. 앙코르곡에선 영화 <위플래쉬> 마냥 드럼끼리의 대결을 펼쳤는데, 그들은 정말 악기와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고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황홀한 130분의 시간이 지나고 지휘자는 각 악기를 맡은 연주자들을 찬찬히 소개해 주었다. 연주자들이 일어나 인사를 할 때마다 사람들을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나 또한 멋진 공연에 대해 할 수 있는 감사의 답례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었다. 늘 마지막 무대인사 순간은 아쉽고 감동적이다. 인사하는 연주자들의 표정은 은은한 미소를 짓기도 울먹거려 보이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에 나도 벅참이 느껴졌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텅 빈 공연장을 보았다. 그 순간 든 생각은 오케스트라는 사람으로서 완성되는 예술이구나. 텅 빈 공연장은 중앙의 무대를 둘러싸며 관객들로 메워진다. 그 후 악기와 연주자들로 중간이 메워진다. 그리고 정중앙의 지휘자는 이를 하나로 묶어 다시 음악의 선율과 행복을 널리 퍼트린다. 어수선했던 관객들이 마지막엔 음악과 오케스트라 악단에 융화된 듯 다 같이 하나의 연주자가 된 것처럼. 이 모든 것의 요소는 사람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악기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만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그렇게 여러 악기들은 지휘자의 지휘봉을 따라 하나로 흡착되어 연주가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지켜보고 반응하는 관객까지 있어야 비로소 예술은 완성이 되니까. 마지막에 다시 텅 비어버린 공연장은 다시 음악과 사람을 그립게 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김새도 다루는 법도 소리도 모든 것이 다른 악기들은 사람을 닮아 있는 것 같다. 혼자 소리를 낼 때도 아름답지만 서로가 더불어 융화되면 더욱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소리들이 난다. 오늘 이 공연장에서 우린 모두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하나였다. 음악을 향한 마음과 감동, 사람들과 주고받은 에너지 덕분에 나의 마음의 온도는 따스함으로 가득 찬 37.5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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