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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연극화 한다는 것 - 연극 '운베난트'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로, 이해되지 않은 채로, 하지만 존재했던 것

by 이승주 에디터
2026.05.03 14:30

 

 

공연사진_홍우진,김바다(1).jpg

 

 

 

1. 언어에서 신체로 건너가는 작품


 

슈테판 츠바이크는 인간 내면의 균열과 억압된 욕망을 집요하게 탐구한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1927년 중편소설 감정의 혼란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지적 유대와 그 이면에 잠복한 감정의 긴장을 정교하게 포착하며, 말해질 수 없는 욕망이 어떻게 관계를 왜곡하고 파열시키는지를 서사적으로 축적해 나간다. 이러한 텍스트를 무대 위로 옮긴 <운베난트—Y를 향한 마지막 수기>는 단순한 각색의 차원을 넘어, 서사의 매체 자체를 변환하는 선택을 취한다. 이 연극은 원작이 언어를 통해 구축해온 심리의 밀도를, 신체와 침묵이라는 다른 차원의 표현으로 번역한다.

 

원작은 노년의 롤란트가 과거를 회고하는 액자 구조 속에서 전개된다. 방탕한 청년이었던 그는 한 교수의 강의에 매혹되며 학문적 열정을 회복하고, 이 지적인 열광은 곧 인물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이행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단순한 사제 관계로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식의 전이는 감정의 전이를 수반하며, 그 과정에서 에로틱한 긴장이 발생한다. 그러나 교수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다정함과 냉담함을 반복하는 그의 모순적 태도는 롤란트를 해석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고, 결국 롤란트는 교수의 아내와의 관계라는 파국적 선택에 이른다. 이후 드러나는 교수의 고백—자신의 욕망이 남성을 향해 있었다는 사실—은 이 모든 혼란을 뒤늦게 설명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되돌리지 못한다.

 

<운베난트>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건들의 인과적 연결이 아니라, 그 인과를 구성하는 감정의 층위다. 연극은 대사를 절제하고, 감정의 표출을 최소화하며, 대신 시선과 호흡, 미세한 신체의 떨림을 통해 관계의 긴장을 구축한다. 언어가 설명을 포기한 자리에서 신체는 감각의 매개로 기능한다. 이때 무대 위의 감정은 더 이상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감지되는 것'으로 전환된다. 말해질 수 없었던 욕망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드러난다.

 

 

 

2. '이름 없음'


 

연극 제목인 '운베난트'(Unbenannt)는 독일어로 '무명의', '이름 없는'을 뜻한다. 연극의 제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형식적 원리다. 연극에서 롤란트를 사로잡았던 인물은 '교수' 혹은 마지막에서야 'Y'라는 기호로만 남는다. 이는 사회적 금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었던 개인의 비극을 지시하는 동시에, 더 근본적으로는 욕망 자체의 명명 불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연극은 그 명명 불가능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지속시키는 방향으로 연출을 조직한다. 무대는 교수 사무실을 연상시키는 질서 정연한 공간으로 설정되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이 감시와 긴장이 흐른다. 바닥의 삐걱거림,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는 미세한 음향은 인물들 사이에 공유된 불안을 가시화한다. 지식의 공간은 곧 억압의 공간으로 변형되며, 이해와 소통의 장소는 오히려 감정의 은폐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된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서로를 감지한다. 감정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로 떠돌고, 관계는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된다. 이때 '이름 없음'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명명되는 순간 파괴될 수밖에 없는 감정이, 이름 붙여지지 않음으로써 유지되는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다.

 

 

 

3. 젠더의 삭제와 욕망의 불확정성


 

작품의 젠더프리 캐스팅은 표면적으로는 해석의 보편화를 지향한다. 남-남, 여-여의 조합을 병치함으로써 특정 성적 지향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 일반의 감정 구조를 드러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 선택이 실제로 수행하는 기능은 단순한 보편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젠더의 삭제는 욕망의 방향성을 더욱 불확정한 상태로 밀어 넣는다. 롤란트가 교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지적 동경과 인간적 애착, 육체적 욕망 사이를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이 왜 끝내 규정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지점에서 <운베난트>는 원작의 해석을 확장하는 동시에 변형한다. 원작이 억압된 욕망의 비극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연극은 욕망 자체가 애초에 명확히 정의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전면화한다. 젠더의 제거는 욕망을 더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비가시성을 강화한다.

 

 

 

4. 과잉의 제거와 감정의 잔존


 

슈테판 츠바이크의 문체는 종종 과열된 감정의 서술로 특징지어진다. 그의 문장은 인물의 심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감정의 과잉을 통해 독자를 몰입시킨다. 그러나 <운베난트>는 이 과잉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9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연극은 서사의 압축을 택하는 대신, 감정의 여백을 확장한다.

 

대사는 최소화되고, 침묵과 응시가 서사의 주요한 매개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은 감정의 약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으며, 그 잔여가 관객에게 지속적인 긴장을 유발한다. 특히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구절이 낭독되는 장면은 언어가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지만, 그것은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억압된 감정이 일시적으로 분출되는 통로로 작동한다. 연극에서 배우들은 이 장면에서 건조한 언어를 활용하지만, 책상을 움직이고, 그 위에 서고, 열망에 찬 목소리로 연기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감정적인' 장면으로 연출한다.

 

이때 연극은 하나의 역설을 드러낸다. 언어가 제거될수록 감정은 더 강하게 남는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지속되는 형태로 잔존한다는 사실이, 무대 위에서 감각적으로 구현된다.

 

 

 

5. 고백의 지연과 현대적 고독


 

1920년대의 사회적 금기는 오늘날 상당 부분 완화되었지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자신의 진실을 숨긴 채 살아가는 분열은 여전히 현대적이다. <운베난트>는 이러한 조건을 특정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구조적 조건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에서 결정적인 것은 고백의 내용이 아니라, 그 고백이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가능해지는 고백,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만 허용되는 진실의 발화. 그 말은 진실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지연된 고백은 단순한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맺는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결국 <운베난트>가 남기는 것은 해석 가능한 이야기의 완결이 아니다. 오히려 끝내 해석되지 않는 감정의 잔여, 그리고 그것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살아가며, 그 이름 없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삶의 구조를 형성한다. 이 연극은 바로 그 지점을, 언어가 아닌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운베난트_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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