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잠깐 돌본 적이 있다. 그녀는 거동조차 하지 못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쳐다보기만 하시고, 대답을 하지는 않으셔서 할머니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서 아는 사실이라고는 뇌에 문제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네킹 같았다. 표정도, 말도, 움직임도 없이 앉아 계셨다. 그러나 엄마와 함께 희미하게 기억나는 주기도문을 읊을 때만은, 확실히 ‘사람’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노화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다. 육체가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생각과 말이 끊겨진 문장처럼 잔해로 남아버리는 가능성은 더욱 두려웠다. 할머니의 주기도문은 가슴을 찢는 광경이었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마지막까지 붙든 것은 기도였지만, 이제 그녀의 기도는 끊겨져 발음되는 단어 몇 개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단어들이, 그녀가 여전히 상상하고 느끼며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은 늙는다. 쇠락하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다. 지금의 감각, 생각, 감정은 불현듯 단절될 수 있다. 그것이 삶이라면 무엇을 의미할까. 더 나아가, 그 단절이 나 자신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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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이 나를 책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로 이끌었다. 치매는 여전히 불치병으로 여겨지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를 외면하지만, 나는 내부자의 증언을 원했다.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값싼 낙관이나, 단순히 절망만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절 속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증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 기대에 부응한다. 저자 대니얼 깁스는 신경학자로서 치매를 이른 시기에 진단받았고, 이후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병과 함께 살아왔다. 그는 지식과 경험을 갖춘 동시에 그것을 언어로 남길 힘을 지녔다. 내가 바랐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재앙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생한 증언이었고, 그는 이에 정직하게 응답한다.
책의 서술 방식은 독특하다. 비유와 방향은 문학적이지만, 병의 원인과 예후를 설명하는 대목은 학문적이다. 이 이중적 문체는 저자가 불가피한 쇠락에 저항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책의 상당 부분은 조기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실용적 지식을 전하는 듯 보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가족 이야기와 일상의 단편들이 에세이처럼 배치된다.
파편적인 구조는 저자의 현실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에도 단기 기억 상실과 인지 문제에 맞서야 했고, 책은 카테고리를 통해서만 겨우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책은 한결같은 태도로 삶을 기록한다. 신경과 의사로서의 윤리의식이나 지적 역량보다 더 돋보이는 것은, 점차 사라지는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쾌활함이다.
그는 영원히 잃어버린 후각, 읽은 글을 따라가지 못하는 뇌, 메모 없이는 이어갈 수 없는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비컨 록을 오른다. 가족의 추억이 서린 그 산은, 치매로 쓸려버리지 않은 기억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는 푸르스트의 마들렌처럼 과거를 환기할 수 없지만, 대신 예민해진 청각으로 현재를 붙든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인지 능력을 체감하면서도 바닥을 응시하지 않는다. 슬픔 속에서도 남아 있는 감각을 되새기고, 여전히 읽고 쓰며, 그 결과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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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뇌과학자』는 치매에 대한 의학적 해설서도, 단순한 투병 에세이도 아니다. 그것은 점차 침식되는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는 증언이다. 내가 할머니의 주기도문에서 보았던 단어 몇 개의 힘처럼, 저자는 흩어진 기억과 깨어진 문장들로도 삶을 이어간다. 이 책은 치매라는 어둠을 응시하면서도, 그 속에 남아 있는 빛을 포착하려는 시도의 기록이다.
그 빛은 거창하지 않다. 병을 극복하겠다는 승리의 기세도, 끝없는 절망의 울부짖음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일상에 깃든 작은 습관, 익숙한 장소, 다시 읽고 또 쓰려는 고집 속에서 발견된다. 저자가 ‘비컨 록’을 오르며 다잡은 마음은, 우리 각자가 언젠가 맞닥뜨릴 쇠락 앞에서도 지켜야 할 태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삶을 붙드는 방식이 있음을 배운다. 그것은 남아 있는 감각과 기억을 소중히 붙드는 일, 사라져가는 것들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함께 기억해주고 증언해줄 누군가의 존재다. 이 책도 저자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도왔을 것이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이름 옆에 쓰인 지은이 ‘터리사 H.바커’처럼 책은 혼자가 아니라 타인의 기억과 기록이 함께 지탱해준 산물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이 책은 치매라는 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어떻게 끝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할머니의 주기도문이 그랬던 것처럼, 단절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의 호흡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호흡은 우리에게도 오래 남아, 언젠가 각자의 쇠락을 맞이할 때 작은 등불처럼 빛을 비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