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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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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 한 문장이, 한 편의 시가, 혹은 오래된 영화 한 장면이 나중의 삶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입시를 준비하는 교실은 흔히 결과를 향해 움직이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그 익숙한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1980년대 영국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명문대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모인 학생들과 교사들을 통해 교육이 단순한 성취의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는 장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말과 인용으로 이루어진 교실


 

극 안에는 문학, 영화, 역사 등 다양한 텍스트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장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은 단순히 헥터식 인문교육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아이러니와 모순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처럼 여러 작품이 겹치며 전개되는 구조는 극을 더 풍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Brief Encounter (밀회)'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등장한다. 학생들이 이 영화를 재연하는 장면은 가볍게 보일 수 있지만 다양한 인용이 극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학생들이 영화를 장난처럼 재연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동시에 작품이 다루고자 하는 감정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으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절제된 태도로 풀어내는 영화처럼 극 중 인물들 또한 자신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농담을 던지거나, 다른 작품을 인용하거나, 상황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감정을 우회한다. 헥터의 금지된 욕망, 포스너의 짝사랑, 어윈과 데이킨 사이의 긴장 역시 모두 정면의 고백이 아니라 농담, 흉내, 인용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교육의 두 얼굴


 

이처럼 다양한 인용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헥터의 교육관이다. 그에게 지식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삶의 어느 순간에서 자신을 붙들어 주는 기억의 저장고에 가깝다.


반면 어윈은 역사와 지식을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그는 진실의 두께보다 해석의 효과를, 이해의 깊이보다 설득의 전략을 강조한다. 이 둘은 선악의 대비라기보다 하나의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현대 교육의 두 방향을 상징한다. 헥터가 삶을 위한 교육을 대표한다면 어윈은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을 체현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어윈의 방식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헥터의 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그가 가르치던 ‘쓸모없어 보이는 지식’이 과연 무엇을 남기는지 이제 다른 기준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은 한 발 더 나아간다. 헥터를 단순히 ‘좋은 교사’로 남겨두지 않고 그의 교육적 영향과 윤리적 결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헥터는 학생들에게 깊은 흔적을 남기지만 동시에 권력을 가진 어른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침범한다. 그의 죽음 역시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화되거나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채 판단이 유보된 상태로 남으며, 의미 있는 교육적 영향과 윤리적 결함이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의 수업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고 그의 윤리적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그가 남긴 교육적 영향까지 지워버리기는 어렵다. 이 불편함은 작품의 결함이 아니라 핵심이다. 베넷은 “훌륭한 교육이 윤리적 결함을 상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그 질문 자체를 관객에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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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킨과 어윈, 관계의 구조


 

데이킨과 어윈의 관계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인물 관계를 넘어 욕망과 정체성의 구조를 드러내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어윈은 데이킨에게 단순히 끌리는 것이 아니라 데이킨이 체현하는 자연스러운 중심성—즉 자신에게는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 매력과 사회적 유연함까지 함께 욕망한다. 데이킨은 어윈에게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일시의 대상이며 그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타자의 형상이다.


따라서 두 인물의 관계를 단순한 연애 감정으로 환원할 경우 그 의미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는 ‘내가 되고 싶은 타인’을 향한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끝내 충족될 수 없다는 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읽힐 때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점에서 1980년대 영국 남학교라는 배경은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욕망은 사라지기보다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은폐된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명확한 언어 대신 암묵적인 코드로 전달되며 유머와 인용, 관계의 미묘한 긴장 속에서 드러난다. 결국 작품에서 감정은 분명하게 규정되기보다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제시되며 끝내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 불확정성이 데이킨과 어윈의 관계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든다.

 

 

 

교육은 무엇을 남기는가


 

작품이 남기는 것은 메시지라기보다 질문에 가깝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그 배움은 이후의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 남는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욕망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를 말할 수 있고, 어디부터를 끝내 말하지 못한 채 남겨두는가. <히스토리 보이즈>는 이러한 질문들을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나타내면서도 그것을 개인의 삶과 기억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인용과 장면들은 결국 하나의 사실을 환기한다. 지식은 시험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떠오르며 삶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작품은 그 지식과 경험이 언제나 긍정적인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함께 드러낸다.

 

따라서 <히스토리 보이즈>를 이해하는 일은 하나의 해석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끝내 정리되지 않는 여러 층위의 의미를 함께 견디는 일에 가깝다. 작품은 교육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나란히 놓고 욕망을 직접 말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그 사이에서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연극은 끝난 이후에도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질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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