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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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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텀의 10주년 시즌이 한창인 요즘 주인공 에릭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배우 카이를 만났다. 사실 오랜 시간 한 작품을 반복해 연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카이는 “처음 무대에 섰던 감정이 여전히 생생하다”라고 말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꺼내 놓았다. 연출가의 디렉션에 맞춰 더욱 따뜻한 팬텀으로 돌아온 이번 시즌 변화한 연기 철학과 배우로서의 고민, 그리고 관객에 대한 진심까지 지금의 카이를 만든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단연 최고의 마스터피스 '팬텀'

10년 역사의 마침표, 기념비적인 그랜드 피날레

 

 

 

팬텀, 그리고 무대를 채우는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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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이 10주년 공연인 만큼 함께 해오신 시간도 꽤 길어졌는데요, 이번 시즌을 맞이한 소감이 어떠신가요?


한 작품이 10년 동안 다섯 번 무대에 오른다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그건 오직 관객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총 5번의 공연 중 4번을 함께했는데 이처럼 다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굉장히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그래서 이번 10주년 시즌에는 더욱 깊은 애정을 갖고 참여하고 있어요. 특히 <팬텀>은 저에게 있어 뮤지컬 배우로서 첫 타이틀롤을 맡은 의미 있는 작품이라 감회가 더욱 남다릅니다.


 

- 무대나 연출, 구성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점이 있었나요?


큰 틀에서는 변함없이 작품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러닝타임이 평균 15분 정도 단축됐고 일부 넘버는 편집되거나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장면 구성 역시 좀 더 유기적이고 간결하게 다듬어졌는데 이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이 많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 물리적으로도 공연장이 계속 바뀌었어요. 특히 이번 세종문화회관 무대는 이전보다 훨씬 넓고 깊은 구조라 관객의 시야 각도에 따라 무대가 일부 가려질 수 있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관객이 무대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도록 아주 섬세한 동선 조정도 있었고요. 이런 점들이 작지만 큰 변화라고 느낍니다.

 

 

- 무대나 연출의 변화뿐 아니라, 배우로서 직접 공연을 해오시며 느끼신 변화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물리적인 환경 외에 연기적으로 달라진 점이나 새롭게 고민하게 된 지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배우로서 무대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따릅니다. 가장 크게 고민하는 지점 중 하나는 무대의 크기에 맞는 에너지와 표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입니다. 특히 대극장에서는 연기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거든요. 조금만 넘치면 과해 보일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절제하면 감정 전달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저에게는 끊임없는 과제이자 연구입니다.

 

이번 세종문화회관 무대는 특히 양옆으로도 길고 깊이가 있는,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공간이었어요. 이처럼 넓은 무대에서는 시각적인 크기와 감정의 크기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아직 ‘완벽하게 해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오늘은 조금 더 나았는지 차분히 점검하고 있으며 매회 조금씩 더 나은 연기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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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시즌에서 캐릭터 해석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이번 시즌에는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 선생님께서 공연 시작 전에 조용히 저를 불러 한 마디를 건네셨어요. “너의 테크닉도 좋고, 색채도 강렬한데, 이번에는 따뜻한 에릭이었으면 좋겠다”라고요. 그 말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았고 연기에 큰 영향을 줬어요. 이전에는 크리스틴을 이끄는 지도자적 입장이라면 지금은 더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어떤 그런 따스한 모습들이 주축을 이루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워졌기 때문일 수 있겠죠. 배우라는 직업은 특정 캐릭터에 다가가는 일이지만, 결국 그 인물을 제 쪽으로 끌어들이게 되더라고요. 요즘의 제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같은 것들이 그 캐릭터에 스며들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이번 시즌을 통해 실감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삶을 좀 더 유연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태도,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사람으로서의 변화된 자세로 무대 위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이번 시즌 함께한 신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는 시즌이었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오면서도 어느새 익숙한 틀에 갇혀 있었던 저 자신을 신인 배우들의 신선한 접근을 통해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두 배우 모두 성악을 전공했지만 뮤지컬 무대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만큼, 제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노래하고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방식과 감각을 존중하며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참 즐거웠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자극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무대에 서온 시간이 쌓이면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예전과 달리 요즘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지향점이나 가치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시각적 연출의 강조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구조나 연출 방식도 성인 동화에 가깝다고 느껴지는데 저는 그 점이 뮤지컬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봐요. 하지만 동시에 제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만약 이 장르에서 ‘음악’이라는 도구가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혹은 무엇을 비워야 할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아마 그런 궁금증이 있었기에 연극 무대에도 자연스럽게 발을 들였던 것 같고 연극을 해보았기 때문에 오히려 뮤지컬 속 ‘음악과 연기’의 관계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집중하고 있는 지점은 음악과 대사, 연기가 가장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흐르되 필요하다면 서로 독립되어도 어색하지 않은 상태를 구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런 균형을 찾는 것이 뮤지컬 배우로서의 저의 테크닉적인 지향점이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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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밖에서의 자기 관리 철학도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제가 시간 관리에 철저한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사실 그건 방송용 연출만은 아닙니다. 저는 공연이라는 것이 하루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약속을 잡거나, 가족을 만나거나,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결국 공연 시간에 맞춰 하루 일정을 설계합니다. 특히 세종문화회관처럼 큰 무대에서는 그 3시간을 위해 공연 외의 시간 동안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야 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체력 관리, 목 관리, 정신적인 안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대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펼쳐내고 싶은 게 저의 가장 큰 열망이기 때문입니다.



- 이번이 정말 마지막 시즌이라면 팬텀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그런 생각을 하기가 정말 싫습니다. “아니야, 끝이 아닐 거야. 또 한 번 올지도 몰라. 나는 60세, 70세까지도 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저는 진심으로 간절히 소망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또 많이 노력을 합니다. 팬텀은 저에게 있어 아직 보내고 싶지 않은 너무나도 소중한 역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약 떠나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자.


 

- 마지막으로 팬들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관객이 없으면 무대도 존재할 수 없고 아무리 많은 관객이 있어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노래하게 하는 존재,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바로 관객입니다. 관객들의 존재가 제가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고 또 당신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더 나은 노래를 더 나은 무대에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입니다. You are my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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