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오랫동안 웰메이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박해영 작가 특유의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을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거창하지 않은 계기를 통해 서로 위로받고, 서로의 삶에 건넨 작은 빛을 통해 성장하는 스토리를 통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이처럼 각자의 상처와 결함에 대한 캐릭터성이 뚜렷한 ‘나의 아저씨’ 등장인물 중 필자의 최애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정정희’ 여사였다. 정정희 여사는 오나라 배우가 연기했으며, 주인공 동훈과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동네 친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절에 들어간 후 평생 그 사랑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픔이 있으며, 작중 배경인 후계동 사람들이 언제나 편하게 모여 마실 수 있는 술집 ‘정희네’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런 정정희 여사를 메인으로 주목하여 만든 연극 <정희>가 나왔다는데, 어찌 안 볼 수 있으랴. 드라마가 종영된 지 6년 만에 ‘나의 아저씨’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작에 충실한 캐릭터 접근법
연극을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정정희 여사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없는 극이라는 것이었다. 연극 <정희>의 첫 장면은 정정희 여사가 술에 취하고, 잠깐 부딪혀 코피가 나는 와중에도, 자신의 하루치 쓸모를 다 해내기 위해 제 몫의 손빨래를 다 해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혼잣말은 덤이다.
나는 오늘 일과를 다 했습니다.
나는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몰랐는데, 문득 자신에게 암시라도 하듯 ‘망가지지 않았다’라며 혼잣말을 되뇌는 정정희 여사의 캐릭터가 굉장히 연극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집을 향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소리 내 말하는 캐릭터. 첫 대사가 드라마의 대사, 장면과 완전히 일치했기에 원작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극에도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정희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인 평생의 단 한 사랑, 상원 캐릭터와의 이야기도 드라마의 대사와 상황과 똑같은 부분이 많았다. 같은 장면을 다른 대사나 다른 시점으로 재구성하기보다는, 드라마에서 방영되었던 장면을 연극에서 보여줄 때는 최대한 보존을 위해 노력하여 가져오고, 다만 드라마에서 방영되지 않았던 빈 부분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드라마 원작과 그 원작 팬들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을 드러내면서도, 2차 창작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차별성을 가져갈 수 있는, 철저히 분리된 투 트랙의 전략으로 느껴졌다. 원작 팬은 좋아했던 원작의 장면을 연극이라는 다른 매체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어 좋았고,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은 이 캐릭터를 일관되고 단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부수고 다시 지으면 된다’로 한 걸음 더
연극에서는 정정희 여사의 가게이자 집인 ‘정희네’의 배수 문제가 생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게에 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건설 업체에서 일하는 캐릭터인 동훈의 소개로 가람이라는 새로운 청년이 나타난다. 원작에는 없었던 인물이다. 가람은 가게 내부를 살펴보더니 배관이 터지거나 이음새가 녹슬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잦은 누수로 인해 벽이 약해져 있어서 배관 공사를 해야 한다고. 이에 정정희 여사는 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냐 물어본다.
“무너지고 있다는 거에요?”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벽이 약해져 왔으며, 더 약해질 것이라고. 그래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벽 안에는 곰팡이가 슬었을 수도 있고, 빠른 시일 내에 벽 전체를 봐야 한다는 것. 정정희 여사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고,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사실 지속적으로 곪고 있었으며, 이를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
망가지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용히 오래오래 망가져 간다
다 망가지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는 것이다
- 김소연, 손아귀
망가져 가는 것들에 대한 대변. 무너지는 것들에 대한 고찰. 작은 균열로 인해 인지하게 되는 거대한 상처. 갑작스럽게 보이지 않던 균열을 마주하면 당황스럽고 두렵게 느껴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람은 이에 대해 심플하게 대답한다. ‘고치면 된다’라고. 맞는 말이다. 어찌 보면 고장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그러니 고칠 때 되어 고치는 것도 당연한 일. 이에 정정희 여사는, 새롭게 다짐한다.
“나 이 벽 부수고 새로 올릴래. <정희네> 개편 시작할래. 아직 안 무너졌으니까. 고치면 되는 거니까.”
일부 고치는 게 아니라, 부수고 새로 짓겠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여자라는 이유로 완장을 못 차는 게 분하고 억울해, 장례식장 데스크에서 완장 배지를 훔쳤던 과거 정희의 모습과 강단이 겹쳐 보였다. 물론 이 전체가 원작에는 없었으나 연극에서 추가된 설정인데, 퍽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망가지지 않으면 된다’라는 원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수고 새로 짓겠다’라는 것이 연극의 핵심이다.
평화로울 정靜, 기쁠 희喜
원작 ‘나의 아저씨’에서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주인공 지안의 이름 뜻, 이를 지至에 편안할 안妟을 이야기하며,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말하는 대사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인지 연극에서 정정희 여사의 이름에도 뜻을 붙여줬다. 평화로울 정靜, 기쁠 희喜. 연극을 다 보고 나면 정정희 여사가 늘 똑같았던 일상을 평화롭고 기쁘게 살아내길 바라게 된다.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개편된 ‘정희네’를 관객에게도 보여주는데, 자신의 이름을 손수 다시 내걸며, 새로운 삶을 가꾸어갈 정정희 여사의 평화와 기쁨을 응원하게 된다.
<정희>는 현재의 인물과 어린 시절의 인물이 교차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원작에서는 보지 못했던 동훈과 정희, 상원의 어린 시절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원작의 정희보다 조금 더 쓸쓸하고, 원작의 지안보다 조금 더 귀엽고, 원작의 상원보다 조금 더 감정적인 캐릭터들을 볼 수 있었던 극. <정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