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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약 1년 전, 잘 쓰던 미러리스 카메라 셔터 고장을 이유로 무턱대고 필름 카메라에 도전했다. 필름 한 롤이 대부분 36장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특히 인물 사진을 찍는 내게 36장 안에 A컷을 건져야 하는 필름카메라의 현실이 터무니 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찌하랴, 한번 도전하기로 한 걸 무르고 싶진 않았다. 우선 약 2년 전 동네 중고거래로 구입한 필름카메라를 먼지 쌓인 카메라 가방 안에서 꺼내 살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오래 방치한 탓인지 카메라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수동 필름 카메라이기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찍기 위해 잘 작동해야 할 노출계가 고장나 있었고, '이럴 바에는 그냥 미러리스 카메라 AS를 맡길까' 하는 마음은 간신히 저 멀리로 치워버렸다. 그렇게 수리점에 청소와 함께 수리를 맡겼고, 제대로 작동하게 된 펜탁스 미슈퍼를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연습 촬영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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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때 촬영한 필름 스캔본 중 반은 실패한 사진이었다. 수동으로 초점링을 돌려서 초점이 맞는 부분을 뷰파인더로 유심히 살펴야 하는 일과 노출계를 수시로 확인하는 일에 익숙치 않은 탓이었다. 피사체였던 인물에 초점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감과 요령이 필요한 역광 사진에서 인물은 너무 어둡게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이상의 실패에 좌절할 새도 없이 나머지 사진들의 색과 빛 표현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약간 낮은 채도, 그런데도 여전히 선명한 색채, 종이를 깔아놓은 것처럼 표현된 질감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이후 다양한 필름을 직접 사용해보면서 수동 필름 카메라, 그리고 필름과 친해지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사실 지금도 필름은 여전히 어렵고 만질 때마다 긴장이 된다. 그래도 이제는 사진을 찍을 때 디지털 카메라보다 필름 카메라에 먼저 손이 간다. 그럴 수 있게 되었다는 데 감사하면서도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홀로 필름 카메라를 배우며 치열히 고민했던 시간이 값지다고 하더라도 필름에 관한 정보를 편하게 얻을 수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용 후기지만, 필름과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필름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필름을 애정하는 마음을 사람과 사람에게로 이어가고 싶다.

 

 

 

같은 빛, 같은 색도 다른 매력으로 전하는 필름


 

필름의 가장 어려운 점은 결과물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날씨와 빛, 그리고 필름마다 특히 잘 재현하는 색이 있어서 항상 이상적인 결과가 나오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필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촬영하고자 하는 사진의 지향점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적절한 필름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아래는 실제로 사용해봤던 필름 중 인상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었던 필름 세 개를 소개하려 한다.

 

코닥 울트라맥스 400 필름은 흔히 생각하는 '필름 감성'을 가장 훌륭히 재현하는 필름이라고 생각한다. 맑거나 약간 구름이 낀 날, 빛이 강하게 드는 환경에서 색채가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초록색과 붉은색, 푸른색, 갈색, 노란색을 선명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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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잘 드는 실내의 창문 근처나 야외에서는 피부에 따뜻한 빛이 감돌아 이른바 '빈티지 감성'의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자연광 아래, 인물과 풍경의 색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인물만이 주인공이 되는 사진이 아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울트라맥스 400은 항상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장하는 필름은 아니다. 흐린 날이나 자연광이 잘 닿지 않는 실내에서는 지나치게 흐리게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실내에서 사용한다면 가급적 채광이 드는 곳에 피사체를 배치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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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사진은 캔디도800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이 필름은 초록색을 청량한 색으로 담아내는 점이 특징이며, 선명한 그레인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채광이 좋은 야외에서도 색이 창백하게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초록색을 깊고 진하게 표현하는 울트라맥스와는 달리 짙은 초록색이 청록색과 연두색에 가깝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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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해질 무렵 그늘이 많이 진 환경에서 캔디도800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초록색이 역시 연하게 표현되었고, 어두운 환경에서도 색채가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비슷하게 색온도가 낮은 필름인 씨네스틸 800T은 캔디도800과 달리 채도가 더 높고 진하게 표현되는 특징이 있는데, 만일 캔디도800 특유의 채도 낮은 표현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면 씨네스틸 800T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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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카 클래식 400 필름은 딱 한 번, 작년 겨울 홋카이도에 갔을 때 사용해본 필름이다. 단 한 번 사용해봤을 뿐이지만, 눈이 흩날려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도 풍경의 색채를 선명하게 담아준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 붉은색, 푸른색이 특히 선명하게 표현되고, 시야가 흐린 환경에서 셔터스피드가 충분히 빠르지 않았는데도 색이 선명하게 표현되었다는 데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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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환경에서 촬영해본 필름은 아니지만, 빛이 충분치 않은 환경에서도 충분히 선명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도 실제로는 해가 이미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졌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는 잿빛에 가까웠던 풍경이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는 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래의 사진은 위 사진보다 더 늦게 촬영한 사진이었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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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의 또 다른 매력은 좋든 나쁘든 기대치에서 벗어나는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야시카 400을 사용할 때는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사진을 받아볼 수 있어서 기뻤다. 물론 야시카 400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이 모두 아름답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결과물도 있었기 때문에 필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더욱 잘 알게 되고, 멋지게 나온 결과물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싶다.

 

필름 결과물은 날씨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어서 사실 단기간 안에 필름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위의 사진들도 실제로 촬영한 사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몇 컷을 가져왔을 뿐이다. 날씨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36장 중 36장 모두를 A컷으로 촬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같은 필름을 다양한 환경에서 써봐도 항상 결과물의 퀄리티가 일정하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순간의 찬란한 빛을, 잠시 스쳐지나갔던 눈앞의 풍경을 필름 한 컷으로 잘라냈을 때 그 순간에 느끼는 경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니 필름을 사용하는 모든 이여,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를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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