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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첫 비트, 간주만 들어도 심장이 뛰는 밴드를 만났다. 그것도 잘 모르는 일본어로 노래를 불러서 듣는다기보다는 느낄 수밖에 없게 하는 일본 밴드다. 킹누(King Gnu)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작년에 한창 빠져 있던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1기 감상을 막 마친 후였다. <주술회전> 플레이리스트를 음악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듣던 중 서글픈 멜로디를 부르는 놀랄 정도의 미성을 듣고 손이 멈췄다. 극장판 <주술회전 0>의 엔딩, 킹누가 부른 '역몽(逆夢)'이었다. 그 길로 킹누를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등록해 모든 앨범을 들었다.

 

'역몽'의 사운드가 여태까지 생각하던 일본 밴드의 스타일을 따라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킹누의 음악도 전형적인 일본 밴드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트랙이 바뀔 때마다 들리는 음악은 모든 예상을 깨는 것이었다. 사실 케이팝 덕후의 삶이 2년 전 막을 내리고 새로운 음악을 듣는 설렘을 완전히 잊은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킹누의 음악을 전부 듣고 난 후, 가벼운 충격과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는 것처럼 맥동하는 심장에 정신이 붕 떴다. 킹누의 신곡 발표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제이팝 덕후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기대를 꿈으로, 꿈의 그 이상으로 이뤄내는 밴드, 킹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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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누(King Gnu)라는 팀명은 수많은 무리가 떼를 지어 생활하는 누처럼 많은 사람들을 모아 큰 무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팀명이다. 이런 팀명은 곧 킹누의 음악 스타일을 함축하고 있기도 한데, 킹누가 추구하는 다양성은 곧 이들의 정체성으로 이들에게 '다양한 스타일을 도전'한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킹누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그룹 밀레니엄 퍼레이드(MILLENIUM PARADE)와 크리에이티브 회사 페리메트론(PERIMETRON)을 이끄는 츠네타 다이키는 킹누의 중추로서, 해외 음악 매체 밴드웨건(BandWagon)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킹누는 일반적인 제이팝(J-POP)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공식에서 벗어나 멜로디, 가사, 보컬 등 특정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제이팝의 지평을 연다.

 

킹누는 이러한 뚜렷한 소신의 의미를 뛰어난 라이브 실력과 다양한 음악, 압도적인 스트리밍 횟수로 증명하는 기염을 토한다. '도쿄 뉴 믹스쳐 스타일'이라는, 얼터너티브 록에 킹누 멤버 개개인의 특색을 녹여낸 이들만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허세처럼 보이지 않는다. 킹누는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제이팝의 인기가 작년 많은 일본 인기 가수들의 내한으로 입증되었을 때 이틀간의 내한 콘서트를 전석 매진시키는 등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담하지만, 그만큼의 준비와 신념으로 발표하는 곡들은 다양한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하며 점점 많은 사람을 킹누라는 밴드 앞에 집결하도록 하는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결정적인 한 수 한 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츠네타가 킹누라는 현 시점 일본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밴드를 실현할 수 있었던 데는 뚜렷한 철학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 실력파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도 있다. 뛰어난 밴드 세션 멤버인 드럼의 아라이 카즈키와 뉴진스(현 NJZ)의 무대에도 함께 선 베이시스트 세키 유우, 그리고 성악을 전공해 힘 있는 보컬로 높은 음역대를 소화하며 츠네타의 낮은 음역대의 보컬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보컬 이구치 사토루까지, 킹누는 얼핏 보면 츠네타의 왕국으로 보이기 쉽지만 이 넷이 만들어내는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다. 즉흥 연주를 즐길 정도의 여유를 보여주는 팀이면서도 반성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킹누는 팬의 기대를 꿈처럼 높은 이상으로, 그 이상을 현실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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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준의 음악을 추구하는 밴드답게 킹누의 음악 속 스토리텔링 또한 흥미롭고 아름답다. 킹누는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청춘의 슬픔과 고뇌에 공감하고 위로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덧없는 청춘을 엉망으로 즐기는 것 같은 쾌활함을 보여준다. '비가 찬란히'는 청춘을 위한 찬가 그 자체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후렴구가 주는 아련함과 흥분을 안기며 화려하게 시작된다. 소나기는 이미 한바탕 우리 위로 내리고 있는 것처럼. 갑작스러운 비에 당황할 틈도 없이 이구치의 보컬은 "선택해봐"라며 대뜸 말을 건다. 갑자기 들이치는 시련과도 같은 소나기를, 킹누는 고통을 씻어내려줄 치유의 매체로 본다. 어쨌든 지나갈 테니, 차라리 이 비를 맞으며 후련해지라고, 비가 그치고 달라질 세계를 어떻게 맞이할 거냐고 묻는 것이다.

 

이어 "찬란한 비가 고통스럽게 방황하는 우리들의 슬픔마저도 비에 흘려보내"줄 것이고 "비에 젖은 채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뮤직비디오 속 학생을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는 비를 맞고 수영장에 뛰어드는데, 이런 가사와 교차되는 이들의 모습은 무척 후련해보인다. 차라리 시련 속에 뛰어들어 그 순간마저도 즐기는 모습은 우리가 바라고 그리는 청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음악을 듣기만 할 때는 서글펐던 감상에 개인적인 추억이 섞이며 음악이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 든다.

 

'비가 찬란히' 뮤직비디오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제 촬영 영상이 교차하는 편집이 돋보이는데, 킹누의 뮤직비디오는 가사라는 뼈대에 살을 붙여 음악이 숨쉬게 하는, 음악을 완성하는 한 피스다. 이런 뮤직비디오 중에서도 이구치의 음색과 보컬에 잘 어울리는 그루비하고 감성적인 곡의 뮤직비디오는 꿈 같은 이미지의 콜라쥬를 통해 음악이라는 책을 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년 12월에 발표한 '뿌리'의 뮤직비디오가 이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자그마한 꽃으로 족해", "그저 당신에게 있어 가치가 있으면 돼", "당신이 고개를 떨군 그 앞에 뿌리를 내릴게"라 고백하는 따뜻한 가사에 오일파스텔로 그린 듯한 이미지들이 덧입혀진다. 아내의 죽음 후 괴로워하는 남자는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눈치 채지 못했던, 아내의 옷과 같은 색인 붉은색의 꽃을 딸을 통해 발견한다. 뮤직비디오는 꽃이 홀씨처럼 사방을 떠다니는 이미지로, 행복했던 추억들로 슬픔을 덮어가며 상실에서 회복하는 상징을 활용해 소박하고 솔직한 가사를 곱씹을수록 깊은 감동을 끌어올리고 있다.

 

'뿌리'는 킹누의 음악성의 정점을 찍는 곡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잔잔하게, 그리고 천천히 스미는, 보컬 이구치의 뛰어난 보컬 테크닉으로 떠먹여주는 아는 맛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킹누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부드러운 전채 요리부터 맛보고 그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이면들을, 킹누라는 장르의 전체도 시도해보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킹누 이구치 사토루, 아라이 카즈키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 @191satoru, @kazukiara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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