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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 장의 스티커가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다이어리를 쓰고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손바닥만한 종이에 일상을 전부 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렇기에 한 조각의 스티커는 큰 역할을 한다. 그때 그때 먹었던 음식, 약속으로 방문한 장소, 그때의 기분이나 해야 하는 일까지 스티커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테마의 팬시를 요즘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꾸를 하는 '다꾸러'에게 이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독특한 컨셉의 팬시를 탐색하는 일은 다꾸 철학과 맞닿아 있다. 다이어리 꾸미기에 공을 들이는 이들은 약간의 차이만 있는 일상을 보내더라도, 그 약간의 차이가 일상을 다채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다꾸러들을 타깃으로 한 팬시는 그렇기에 이들의 일상에 대한 상상이나 일상을 기분 좋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갱갱 8 (수작업).jpg

 

 

꾸준히 다꾸를 해 온 다꾸러 중 한 명으로서, 좋아하는 팬시 작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했다. 작가의 세계와 다꾸러의 세계가 스티커 한 장을 통해 비슷한 관심사로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창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자연히 자라났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갱갱 작가의 이야기를 지난 8월12일, 직접 들어보고 왔다.

 

 


다양함이 곧 정체성으로, 팬시로 만나보는 갱갱 작가의 세계


 

안녕하세요, 갱갱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문구 작가이자 일러스트 작가인 갱갱입니다. 다채롭고 다양한 세계관을 그리고, 선보이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전공이 시각디자인과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디자이너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선택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엔 막연히 제가 화가가 될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순수 미술로 생계를 유지하기 굉장히 힘들 거라는 걸 일찌감치 느끼고, 취업길을 고려해서 고등학생 때 디자인과로의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진학한 후에 저의 생각보다 디자인과 잘 맞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그림 기본기를 배우다가, 동기들의 디자인 작업을 보고 다시 디자인에 욕심이 생겨서 전공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다잡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주제를 디자인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때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는 다소 딱딱하고, 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디자인이 새삼 저에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무렵, SNS에 올린 저의 그림이 조금씩 관심을 받았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처음 판매했던 스티커.png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기승이던 2021년에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세계를 접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이어리 꾸미기에 빠지면서, 제 그림으로 만든 스티커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스티커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스티커는 한 장만 발주를 넣을 수 없다 보니, 마치 제 스티커를 공동구매하는 것처럼 판매하는 폼을 열었는데 팔로워 분들이 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저의 그림을 이런 팬시의 형태로 나누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는 걸 알게 해준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팬시 작가로서의 활동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하셨던 경험이 상품을 구상하거나 제작할 때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을까요?

 

팬시를 제작할 때 2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경험 덕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어 작업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예를 들어 스티커를 그릴 때는 필수적으로 최소 2개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요. 클립스튜디오, 프로크리에이트로 그림을 그리고 보정과 칼선 작업을 하는 건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을 활용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뒷대지가 마음에드는 스티커.png 

 

디자인이 순수 미술보다도 좀 더 실무적인 감각과 실용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상품을 만들어낼 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어요. 저는 스티커를 제작할 때 많은 공을 들이는데요. 상업적인 상품이다 보니 스티커 뒤의 배경으로 들어가는 뒷대지 드로잉에 특히 신경을 씁니다. 쉽게 떼서 붙일 수 있는 스티커만 사용하고 뒷대지 종이는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종이까지도 사용되었으면 했거든요. 실제로 제 스티커로 한 다꾸 결과물을 공유해주시는 분들 중에서 뒷대지까지 알차게 사용해주시는 분들이 종종 보여서 뿌듯합니다. 저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 없는 디자인을 하지 않는 디자이너의 마인드와 비슷한 마인드로 드로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뒷대지까지 신경 써서 제작하시는데도,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테마의 일러스트를 그려내시는 작업 속도가 경이로워요. 이런 작업을 가능케 하는 영감의 원천이나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는 일러스트를 그릴 때 스토리를 담아서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이런 빠른 작업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주로 다이어리 꾸미기를 염두에 둔 팬시 상품을 제작하다 보니, 팬시적으로 보기에 좋은 것 뿐만 아니라 저의 상품을 구매하시는 각자의 스토리와 맞닿는 상품을 제작하고 싶어요. 다이어리에 보통 일상 속의 에피소드를 기록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스티커를 골라서 쓸 수 있도록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그리는 것 같아요. 상상한 것을 바로 그림으로 옮기다 보면 그림이 어느새 완성되어 있기도 해요. 꾸준히 팬시 상품을 제작하다 보니, 요즘엔 그림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양한 세계관을 그려내는 작가님의 작업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나 예술가가 있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이케가미 요리유키 작가님의 독특한 드로잉 스타일과 세계관을 정말 좋아해요. 작가님 한 분을 레퍼런스 삼아 드로잉을 해 나가지는 않지만, 요리유키 작가님의 다채로우면서도 색감들이 한 데 어우러지는 느낌은 종종 참고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림마다 한 프레임 안에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가, 호랑이가 등에 친구들을 업고 들판을 달리는 그림인데요. 호랑이가 왜 이렇게 곡선형의 모양을 띠고 있을까, 이 친구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그림을 보는 내내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림마다 다양한 스토리를 상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일러스트마다 새로운 세계관을 부여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페르소나가 들어간 ‘곰 갱갱’ 캐릭터를 저는 정말 좋아해요. 창작하신 캐릭터 중에서 좀 더 서사를 부여하거나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으실까요?

 

제 캐릭터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말씀하신 작가 캐릭터인 곰 갱갱에게 좀 더 스토리를 주고 싶어요. 제 어머니 고향이 남원이라, 단순하지만 지리산을 출신지로 설정하고 싶었고요. 이 캐릭터를 디벨롭해보고 싶었던 계기는 사실 그리 대단치는 않아요. 그냥 어느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큰 흑곰의 생일파티를 해주는 사진을 보고 재밌게 느껴져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곰 캐릭터를 소소하게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거든요.

 

돌곰이와 곰갱갱 2.png

 

세계관이 조금 더 확장된다면…….이건 다른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했던 스토리인데요. 마을 어르신들의 밭일도 거들고 도와주기도 하는 정감 가는 캐릭터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곰 갱갱 뿐만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곰인 ‘돌곰’ 캐릭터도 함께 등장시킬 예정이고요.

 

 

저는 작가님을 생각하면 소녀 캐릭터가 가장 먼저 떠올라서, 이런 소녀 캐릭터 중에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추측했었거든요. 소녀 캐릭터로 세계관을 구체적인 세계관을 구상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소녀 캐릭터를 축으로 한 세계관을 구상하지 않는 이유는 고정된 외형을 지닌 몇몇의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여성을 그리고 싶은 제 욕구에 있어요. 저는 소녀 캐릭터에 제가 입어보고 싶은 옷을 종종 입히는데요. 제가 만약 잡지를 만드는 에디터라고 한다면 카탈로그를 만든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소녀를 그려보고 있어요. 다양한 패션을 보여주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요즘엔 여러 체형의 여성을 그리면서 다양한 여성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새로운 시도가 정말 기대되네요! 저는 사실 작가님이 이미 다양한 여성을 그리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안경 쓴 소녀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안경을 쓴 저의 모습을 저는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정말 안경 쓴 소녀가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고 처음 느꼈어요.

 

말씀해주신 대로인 것 같아요. 저는 소녀 캐릭터를 그릴 때 일부러 데포르메를 다양하게 해서 그리거든요. 발을 굉장히 크게 그린다던지, 손이나 팔다리 굵기도 다양하게 설정한다던지, 비율도 자유자재로, 안경을 씌운다던지……..

 

 

갱갱 3.png

 

 

안경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모두가 눈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많은 그림에서 안경 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안경 쓴 사람에게 저의 그림이 스타일링 가이드를 제시한다는 느낌으로 안경 소녀 캐릭터를 그리고 있어요. 일전에 저의 일러스트를 보고, 안경을 쓰고 꾸밀 용기가 났다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저의 의도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정말 기뻤습니다. 더불어 제가 작가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림에 저를 녹여내야 진정한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안경을 쓰는 사람이고, 시력 교정 수술을 할 생각도 없으니 더더욱 안경을 쓴 캐릭터를 그리는 데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작가주의를 언급하셨는데, 여태까지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작가주의 성향이 드러난 작품이 뭐가 있을까요?

 

새와 소녀, 수채화 소녀들, 오렌지 먼지 소녀에서 작가 성향이 많이 드러난 것 같아요. 오렌지 먼지 소녀들은 특히 그렇고요. 다른 그림들과는 특히 다른 방식으로 그렸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이건 볼펜으로 낙서를 했던 그림에서 탄생한 그림이예요. 저는 스토리적으로, 그림으로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계관 뿐만 아니라 매번 다른 드로잉 기법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락 위드 레드애플.png

 

 

좀 더 저의 작가주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드로잉에 도형 요소를 집어넣는 성향인 것 같아요. 이런 특징은 레드 락 소녀 스티커에 들어간 오브제에서 쉽게 발견하실 수 있어요. 전공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이런 도형을 활용해서 조화로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걸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고요.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에 관한 염원을 그림으로 공유하다


 

앞으로의 작가로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실까요? 목표하시는 바가 있으실까요?

 

좀 더 바쁘게 움직이고, 저의 스타일이 갱갱 작가의 스타일로, 저의 시그니쳐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디지털 작업 뿐만 아니라 수작업도 좋아하다 보니 인형 만들기나 패브릭, 도자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전시도 흥미가 있어서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작가의 세계가 엿보이는, 저만의 세계와 경험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을 소개하고 싶기도 해요.

 

저는 이야기가 정말 재밌는 작가로 기억이 되고, 저의 그림이 그 자체로 상상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예요.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제 그림만으로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스토리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좀 더 구체적으로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는 작품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동화책과 그림으로 전하는 에세이집도 출간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동화책은 위로와 모험을 담은 스토리를 담고 싶은데요. 사실 제 그림으로 더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그림이 주가 되고 제 그림을 다른 책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라고 느껴져서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에세이집은 저의 일상을 엮어낸 내용으로 내고 싶어요. 제가 일상을 잘 살아가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일상을 잘 꾸려 나가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작가님의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확실히 작가님의 작품에는 하루 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 나가는 의미 있는 일상에 대한 관심이 엿보여요. 그런 가치를 그림에 녹여 내시는 것도 작가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연관이 있나요?

 

저는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가지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저의 그림은 저에게도 위로거든요. 일로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도 저에게 쉬는 게 그림을 그리는 일일 정도로 그림을 좋아해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그러하듯 저의 그림이 그림을 보는 분들께도 힐링이었으면 좋겠어요.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이 스며든 그림을 그리면서 일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응원하고 애정하는 많은 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제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제 그림이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가 되었으면 좋겠고 제가 지향하는 것처럼,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도 잘 영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이미지.png

 

 

그리고 제가 그리는 그림은 여성 작가로서 여성을 위해 그리는 그림이기도 해요. 그러니 제 그림이 저의 그림을 좋아하시는 여성 분들께서 힘드실 때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제공: 갱갱(인스타그램 @gaengxg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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