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년의 여성 킬러, 무대로 향하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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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5일 8시, 뮤지컬 <파과>의 첫 시작을 보기 위해서 공연장에 방문했다. 이번에 초연되는 PAGE1의 창작 뮤지컬 <파과>는 2024년 3월 15일부터 시작되어, 같은 해 5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뮤지컬 <파과>는 ‘방역업’이라고 불리는 킬러 일에 종사하는 노년의 여성 ‘조각’의 이야기를 다룬 구병모의 장편소설 『파과』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과 극의 제목인 ‘파과’는 (부서지거나 떨어져) 흠이 있는 과일, 여자의 나이로 이팔청춘이라고 불리는 16세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파과의 뜻에 담긴 결함과 생기라는 이중적인 의미처럼, 작품은 65세 여성 킬러라는 낯선 소재와 독특한 캐릭터를 다루고 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노년 여성의 이미지는 탈성애화 되며, ‘가족’이 없는 여성은 빈곤하고 약하다는 통념이 지배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주인공 조각은 이러한 이미지를 비튼 킬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노년됨을 감각하지만 그것이 삶의 파괴와 단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파과』가 그간 ‘여성서사’의 흐름 속에서 신선함을 유지한 이유이다.
원작과의 차이점
원작소설인 『파과』는 조각의 이야기를 서술하며 구병모 작가 특유의 ‘따뜻한 것을 묘사해도 여전히 차가운’ 문체와 서술과 묘사에 있어서 냉소적인 면이 돋보인다. 책 속 조각의 말에서는 스산한 건조함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뮤지컬 <파과>의 가장 큰 특징은 그러한 스산하고 건조한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의 문법과 뮤지컬의 문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텍스트의 서술은 무대 위에서는 연출의 것으로 암시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누군가(배우)의 입이나 몸에서 나와야 하는 대사나 가사, 행동으로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해 알쏭달쏭하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문학과 달리 뮤지컬은 직설적인 방식으로 각색해 생각의 여지를 희석시키는 전형적인 대극장 뮤지컬의 문법을 보여준다. 갑자기 나타나서 조각에게 시비를 거는 투우가 조각이 죽인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의 아들이라는 것은 원작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고 서서히 독자들이 알도록 하는 구조를 취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상상하기 모호하고 성별에 대해 독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해우의 모습은 원작 속 단서로 인해 여성으로 추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작품 속에서는 남성 캐릭터가 되었으며, 전형적인 ‘내부의 악역’의 모습에 가깝게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캐릭터로 각색되었다. 원작의 건조함 대신 에이전시 제로 넘버나 투우의 방역 장면에서 흥겨운 왈츠 같은 멜로디가 나온다. 삭막한 흑백의 추상적인 이미지는 연출을 통해 색이 ‘입혀진’ 상태의 스펙타클로 변화되었다.
현재 노년의 조각이 만나는 강박사와 어린 조각을 방역업으로 인도했던 류는 같은 배우가 맡아 ‘1인 2역’에 가깝게 변했지만 원작 속 강박사의 비중보다 줄어들었다. 원작 속 진지했던 류의 모습은 더 날 서있고 더 험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 외에, 구체적인 것들이 어느 정도 변화되기도 했다. 류가 죽게 된 구체적인 방식이 달라졌거나, 투우와의 마지막 결투 이후 원작에서는 조각이 손을 잃었지만 극에서는 그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 조각이 단순히 손을 주머니에 넣고 등장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텍스트에서 단순한 이미지의 스펙타클spectacle로 각색한 것은 문학 텍스트를 공연으로 ‘압축’하는 과정 속에서 요구되는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의미보다 이미지만 남은 스펙타클은 공허를 수반한다. 각색의 과정 속에서 부각해야 할 뼈대를 남기고 필요 없는 과정을 쳐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뮤지컬 <파과>에서 논쟁적인 지점은 작품이 기반으로 하는 원작의 매력은 바로 그 모호함이 뼈대였다는 점이다.
조각과 투우
원작소설인 『파과』에 비해, 뮤지컬 <파과>에서는 투우라는 캐릭터를 더 부각시켜서 조각과 비슷하다 싶은 비중이 되었다. 이 극에서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은 조각과 투우 둘이 교차되면서 진행되고, 조각의 류에 관계된 과거 회상과 킬러 이야기도 나온다. 투우와 달리 조각의 인생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류와 강박사는 서술의 주체가 아니라 조각의 기억에서 기반한 존재로 재현된다. 뮤지컬의 첫 시작은 투우가 자신의 어린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떠난 한 여성 킬러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조각’이 이야기의 중심인지 투우의 시선에서 본 조각이 이야기의 중심인지 애매하게 보인다.
문제는 그렇다고 뮤지컬 <파과>가 (투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투우와 조각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투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파과>는 후반부에 투우가 조각에 의해 죽으면서 수미상관도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투우의 과거 회상이 첫 시작이 되고 투우가 조각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서술자가 되면서 조각을 중심으로 다른 가지들이 뻗어가던 이야기의 구조가 조각과 투우라는 두 기둥의 이야기가 되었다. 문제는 투우가 조각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서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작과 달리 조각과 투우의 관계성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가공되었다. 조각과 투우의 결투 이후 투우는 조각을 죽이지 않고 반대로 조각은 투우를 칼로 찌른다. 게다가 원작의 서술 속 투우는 조각이 자신을 스쳐갔던 수많은 아이들 중 하나라고 인식했다고 짐작하며 죽어가지만 작품 속에서는 마치 조각이 그때 그 어린 투우를 지금의 이 투우로 인식한 것처럼 묘사되게 된다. 그 영향인지 조각은 죽어가는 투우를 안고 오열하는데, 다소 건조했던 원작과는 차이가 있음은 물론, 투우가 조각을 신경 쓴 것에 비해서 그동안 조각은 투우를 그토록 크게 생각하지 않아서 의외라는 감정도 느껴졌다. 조각과 투우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각색의 큰 방향을 정했다면, 조각의 시선에서 보는 투우에 관한 서사를 더 쌓아야 했다. 물론 그게 조각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던 사람들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원작 속) 두 캐릭터의 관계성이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있었던 이유는 성애적인 코드를 사용하지만 명시하지는 않았기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조각은 자신을 툭툭 건드리는 투우를 깊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투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킬러인 조각을 회상하고 죽이고 싶어 하며 사실상 삶의 목표로 삼으며 집착했다. 이 과정 속에서 조각을 대하는 투우를 서술함에 있어서 섹슈얼한 로맨스의 문법을 분명히 차용했다. (다만 인물들의 나이차이 때문에 명시적인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투우가 과일을 보면서 조각을 떠올리고 이를 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여성에 대한 성애를 표현하는 관습적인 코드 아닌가? 사랑과 증오가 타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측면에서 맞닿아 있는 만큼,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이성애 로맨스와 폭력은 항상 공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각은 투우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끝내 투우와의 몸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런 관습적인 코드를 비틀어버리고, 바로 그 이중적이고 모순적으로 경합하는 지점을 통해 캐릭터 간의 관계가 더욱 매력적으로 조형되었다.
이러한 코드들은 원작과 뮤지컬 모두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유지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투우가 조각을 대하는 오묘한 태도와 긴장이 각색된 연출을 통해서 노골화되고 색을 얻으면서 오히려 그 함축적이고 암시되는 ‘시’ 같았던 관계가 직접적인 행동이 되면서 그 매력이 반감된다고 느낄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관계의 골격은 변하지 않았지만 미묘한 긴장과 분위기의 차이는 작품 전체의 느낌을 좌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들이 대극장 뮤지컬로의 변화에서 필수적인 것인지 아니면 창작진이 가지고 있는 역량의 영향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볍게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기에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대단원의 첫 시작을 연 개막날의 배우들은 다음과 같다. 조각 역할을 맡았던 차지연은 이 작품의 창작진인 이지나 연출가를 포함하여 여러 연출가의 뮤즈인 이유가 있을 만큼 훌륭하다. 킬러의 액션과 65세의 여성 연기 모두를 한 캐릭터 안에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투우 역할의 신성록은 그동안 <드라큘라>, <벤허>, <몬테크리스토> 같은 뮤지컬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매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리턴>에서 보여주었던 대놓고 비도덕적이고 광기어린 살인자의 외양에 더 가까운 연기를 한다. (살인에 복수의 이유가 있는 <스위니 토드> 속 모습과는 또 다르다.) 어린 조각 (‘손톱’) 역할의 유주혜와 류 역할과 강박사를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최재웅은 2020년 아쉽게 조기 폐막된 뮤지컬 <펀 홈(fun home)>에 이어 다시 만나는데, 그 당시의 게이 아빠와 레즈비언 딸의 역할에서 ‘유사’ 부녀의 역할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이라는 공연예술에서 ‘각 잡고’ 하는 액션은 항상 순간적인 극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짧게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파과>에서는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움직임들을 실제 뮤지컬 무대 위에 길게 구현해 놓았는데, 특히 류에게 어린 조각이 액션을 배우는 장면과 조각과 투우의 마지막 액션은 한 호흡으로 길게 가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복잡한 합의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극적 상황과 잘 조화되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모든 배우들이 마치 연출된 상황을 연출로 보이지 않게 느껴지게 할 정도로 완성형으로 잘 해냈다. 뮤지컬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던 슬로우 모션이라는 영상매체의 효과와 나레이션을 공연예술에 구현하려고 한 것도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뮤지컬 <파과>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시도되었던 공연예술의 형식적 문법을 확장해가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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