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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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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클래식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은 누굴까. 가장 ‘뛰어난’이라고 하면 갑론을박이 오고 갈 테지만, 가장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에 관해서는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바로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다. 콩쿠르 이후 임윤찬의 인기는 말 그대로 신드롬 같아서 그를 통해 클래식에 입문했다는 팬들도 많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스타성도 겸비한 그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러 마땅할 정도이다.


밴 클라이번에서 그의 연주 영상은 당연히 나의 마음도 끌어당겼기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얼마 전 다녀온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의 새로운 시작: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였다. 공연은 임윤찬과의 협연하는 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그리고 2부에는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이 시작하고 임윤찬이 등장하자 마치 연예인을 본 것처럼 신기한 기분이 들었고, 그의 연주가 너무나 기대되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강약 조절과 섬세한 트릴 등은 너무나 좋았지만, 기대처럼 큰 감동을 받지 않은 나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음원에서도 임윤찬의 베토벤보다 라흐마니노프를 더 좋아했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은 사그라든 기대와 함께 시작된 2부의 말러. 모든 공연이 끝난 후 생각했다.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말러리안(말러의 열혈 애호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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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말러는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당신이었다. 말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고, 오히려 말러를 즐기고 싶었다. 그럼에도 말러의 음악은 쉽게 잡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어둡다가도 갑자기 밝아지며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 서정적이다가도 엄청난 음량으로 몰아치며 놀라게 만드는 음악, 그리고 아주 긴 연주 길이 등이 말러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그럼에도 말러에게는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 목록에서 말러를 보았을 때 내심 반가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말러의 ‘거인’은 오디오 속에서 내 귀를 사로잡진 못한 음악이었다. 계속 말러에 도전하면서도 교향곡 1번은 그다지 찾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의 기대감도 말러의 곡을 처음 실황으로 접하는 정도에 있었다. 그러나 막상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연주가 시작되자, 말러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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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은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자연의 소리처럼, 매우 여유롭게(Wie ein Naturlaut-Im Anfang sehr gemächlich) 연주하라고 쓰여있는 이 악장은 이른 새벽의 미처 걷히지 못한 희부연 안개가 깔린 듯한 기운이 맴돈다. 이 음악이 영화였다면 1악장은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이제 막 잠에서 깨기 시작한 들판의 풍경을 비추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들리는 클라리넷의 소리는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닮아 있었다. 듣자마자 선명한 풍경이 그려지는 클래식 음악은 역시나 매력적이었다.


2악장은 민속 춤곡과 왈츠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1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신나는 리듬감으로 소박한 축제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개인적으로는 1~4악장 중 가장 임팩트가 적었지만, 축제에서 춤을 추며 흥겨움에 젖은 사람들이 눈앞에 그려지듯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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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은 갑자기 2악장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느리고 엄숙한 느낌을 주며 시작한다. 프랑스의 판화가 자크 칼로의 그림 ‘사냥꾼의 장례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3악장은 유명한 민요를 장송곡의 느낌이 나는 단조로 편곡하여 진행된다. 우울한 장송곡처럼 진행되던 음악은 진행될수록 2악장의 느낌과 겹치며 마치 죽음의 무도회 같은 멜랑콜리한 박자감을 보여준다.


4악장은 초기에 말러가 ‘지옥에서 천국으로’라는 표제를 붙였다고 한다. 지옥과 천국을 연상시킬 만큼 웅장하고 강렬한 심벌즈와 트럼펫이 눈에 띄는 악장이었다. 쉬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지옥의 악마와 불꽃이 떠오르는 연주가 지나가면 1악장의 메인 선율이 다시 한번 반복되고, 그 이후 마치 천국에서의 승리를 표현한 듯한 성스럽고 웅장한 연주로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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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말러의 거인은 젊은이의 한바탕 꿈처럼 느껴졌다. 1악장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청춘의 젊은이는 자욱이 깔린 아침 안개 속에서 까무룩 잠에 든다. 2악장~4악장 중반부까지는 꿈의 영역이다. 꿈속의 젊은이는 2악장의 축제에서 왈츠를 추며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 3악장에서는 동화 속에 들어온 듯 동물들이 이끄는 장례식을 마주한다. 멀리서 볼 때는 엄숙하지만 행렬에 가까워질수록 슬픔과 비애 속의 리듬을 마주한다. 다시 행렬에서 멀어져 숲으로 사라지는 장례를 바라보다 4악장으로 넘어간다. 지옥으로 떨어진 젊은이는 압도적인 지옥의 공포를 경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4악장의 중반쯤, 다시 1악장의 선율이 들려온다. 기나긴 꿈에서 갖가지 경험을 한 청년이 깨어나는 것이다. 이후 엔딩까지의 웅대한 선율은 꿈에서 깬 청년이 현실에서도 성공적인 영웅의 길을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위의 해석은 음악을 듣고 느껴진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듯 자신만의 상상을 하는 것이 클래식을 즐기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구체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말러 교향곡 1번의 매력일 것이다. 특히 말러는 지루하다고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런 특징은 말러 입문에 제격인 포인트다.


비단 말러 입문 뿐만 아니라 클래식 입문에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은 지루하다고 생각해 꺼린다. 이런 경우 (특히 실황에서)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은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현장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웅장하고 압도적인 음악이다. 강하고 멋있게 울려 퍼지는 금관악기와 타악기들, 열을 맞춰 힘차게 연주되는 현악기들, 음악에 심취해 팔을 흔드는 지휘자까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아진다. ‘거인’의 4악장은 이 모든 것에 부합된다. 클래식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준다.


특정 방법으로 연주하라는 지시를 정말 세세히 남기는 말러의 특성 때문인지 교향곡 1번에도 재미있는 퍼포먼스 요소들이 곳곳에 있었다. 1악장 초반에는 분명 트럼본 소리가 들리는데 오케스트라 안이 아닌 멀리서 들려온다. 두리번거리다 보면 무대 밖에 있던 트럼본이 오케스트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4악장에서는 호른 주자들이 웅장한 분위기에 걸맞게 기립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음악을 듣는 것 외에 시각적인 재미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공연을 본 후 집에 들어와 말러의 음악을 더 찾아보았다. 이미 나부터 이번 공연을 통해 ‘예비 말러리안’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수준의 공연을 유튜브에서 손쉽게 볼 수 있지만, 스스로조차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장에 직접 가는 행위는 여전히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의 서울시향이 더욱 기대되는 공연이었다. 말러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해준 서울시향의 연주와 열정적인 지휘를 보여준 얍 판 츠베덴에게 소소한 감사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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