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 괴물 [영화]

글 입력 2024.05.0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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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누구게?


늦은 밤, 인적 없는 야산에서 어린아이가 홀로 흥얼거리며 말한다. 무섭고 기괴한 분위기다. 사오리는 며칠 전부터 시작된 아들 미나토의 이상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멀쩡하던 머리카락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학교에 가져간 물통에는 흙이 잔뜩 고여 있다. 어떤 날은 한쪽 귀가 잔뜩 부은 채로, 어떤 날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집에 온다. 야산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고, 갑자기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기괴하고 꺼림칙한 아들의 질문. 미나토는 담임 호리 선생이 알려준 실험이라 얼버무린다. 그녀는 진실을 알기 위해 미나토의 학교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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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물 : 괴물이라고 판단된 이, 혹은 그렇게 판단하는 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은 미나토의 이상 행동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세 가지 시선에서 순차적으로 그려낸다.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미나토의 담임 호리 선생, 그리고 미나토 본인의 시선이다.


동일한 사건에 서로 다른 시선들이 쌓이고, 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이 점차 떠오른다. 퍼즐을 맞춰가듯 사건의 전말을 나름대로 추리해 가며 영화 속 ‘괴물’을 지목해 본다. 그러나 시선이 변하는 순간, 우리가 의심하고 지목하는 괴물은 달라진다. 영화 초반부 미나토가 흥얼거렸던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괴물은 누구게?


영화는 엄마 사오리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녀의 시선에서 괴물은 호리 선생과 그를 두둔하는 다른 선생들이다. 그녀에게 진실은, 호리 선생이 미나토를 학대했으며, 동료 선생들이 그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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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리 선생에게 괴물은 다름 아닌 미나토와 동료 선생들이었다. 그는 미나토를 학대한 사실이 없지만, 학부모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선생들의 부추김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행동을 사과했다. 호리 선생에게 맞았다는 말, 호리 선생이 자신을 ‘돼지 뇌’라고 불렀다는 미나토의 말은, 어이없게도 모두 그의 거짓말이었다.


호리 선생의 시선에서 미나토는 사오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존재한다. 그는 흥분한 채 학급 친구들의 물건을 던졌고, 같은 반 친구 요리를 때렸으며, 화장실에 갇힌 요리의 모습을 오랫동안 응시한 후 그를 외면했다. 어떤 아이는 미나토가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을 봤다고 말한다. 모든 정황 증거들이 ‘사실은 미나토가 괴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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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시선, 미나토 본인의 시선에서 비로소 그 진실이 떠오른다. 영화 초반 기괴하고 두려운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순수하고 따스한 진실은 사오리의 시선이, 호리 선생의 시선이, 그리고 그 둘의 시선에 갇힌 불완전한 사실만으로 괴물을 가려내려 했던 영화 밖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 펼쳐지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영화 내내 어른들이 보여줬던 편협함과 편견, 이기심, 위선, 그리고 오만함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에게 순수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영화는 결코 진실을 볼 수 없는 우리의 무능을 일깨운다. 사오리와 호리 모두 그들이 보고, 들은 사실만을 말했다. 관객 역시 그들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갔기에, 그들이 거짓되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사실들은 거대한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그들의 편협과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인 경우가 많았다.


사오리는 지인으로부터 호리 선생이 걸즈바에 갔다는 이야길 듣는다. 그에게 약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던 차에, 미나토로부터 호리 선생의 학대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그 사실을 아무 의심도 없이 믿어버린다. 호리 선생은 음흉하고 꺼림칙하며, 교사로서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그녀만의 ‘진실’은 그녀가 보고, 들은 모든 ‘사실’들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호리 선생에 대한 소문은, 걸즈바 화재 당시 건물 근처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있었던 호리 선생을 보고 반 아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 문제로 감정이 격해져, 걸즈바 이야기를 들먹이며 호리 선생을 모욕한다.


‘시선의 제한’과 그로 인해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는 무능함을 관객도 체험한다. 관객 역시 그들의 시선에 비친 사실만으로 진실을 파악할 뿐, 그들의 시선 밖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예상치 못한 진실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이유다.


우리는 자신의 좁디좁은 시야에 걸린 몇몇 사실만이 전부라 믿고 살아가지만, 실은 우리의 시야에 걸리지 못한 사실들이 더 많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 만들어낸 불완전한 진실 속에서 살아간다. 그 거짓된 진실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단정 지으며, 결국에는 섣불리 어떤 이를 괴물로 만든다. 우리의 오만한 판단과 폭력적인 시선이 우리 자신을 괴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영화 속 ‘괴물은 누구게’는 사실 요리와 미나토가 야산에 있는,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하는 카드놀이일 뿐이다. 그들은 카드를 집어 이마에 올려놓은 후, ‘괴물은 누구게’라고 물은 뒤 자신의 카드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다. 홀로 야산을 배회하는 미나토가 나지막이 말했던 ‘괴물은 누구게’라는 말, 사오리의 시선에서는 의문스럽고 두려운 말이었지만, 미나토에게는 친구와 함께하는 카드놀이의 시작을 알리는 신나는 문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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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정상성의 궤도에서 쫓겨난 이


 

괴물은 괴상하게 생긴 물체 혹은 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정의돼 있다. 괴상하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 즉 평범하거나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괴물은 정상성 바깥에 놓인 사람들을 규정하고 손가락질하는 언어가 된다.


영화 <괴물>의 배경이 되는 학교는 권력과 위계가 작동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자, ‘모난 돌이 정 맞는’ 보수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 체구가 작고, 소위 여성스러운 면모가 돋보이는 남학생 요리는 완전한 약자다. 학급 남학생들은 그런 요리를 지독하게 괴롭힌다. 요리와 ‘특별한’ 사이인 미나토는 학교에서는 권력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괴롭힘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그를 외면한다.


미나토와 요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세상이 규정한 안온한 정상성에서 벗어나, ‘괴물’이 되는 일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괴물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정상성의 궤도 안에서 그들을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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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특별함’을 알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의 ‘병’을 ‘고치려’ 한다. 그는 요리가 ‘돼지 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요리를 학대해 왔다. 요리는 미나토에게 할머니가 사는 동네의 여자애를 좋아하게 됐다고, 이제 모든 병이 나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요리는 굳게 닫힌 문을 다시 열어 미나토에게 고백한다. “미안, 거짓말이야.” 다시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요리에게 벌을 주겠다고 소리 지르는 요리 아버지의 고함이 들려온다.


남자답게 화해하라는 호리 선생의 말, 미나토가 당연히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것이라 여기는 엄마 사오리. 그들의 악의 없는 말 속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이상하고 괴상한 괴물이 된다. 사오리는 미나토를 옆에 둔 채 나지막이 말한다. 죽은 남편, 미나토의 아버지가 미나토가 결혼해서 소중한 가정을 이루고 살 때까지 아들을 지킬 거라 약속했다고. 그 악의 없고 평범한, 심지어는 따뜻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이 미나토를 할퀸다. 미나토는 생각한다. ‘나는 아빠처럼 될 수 없어.’


강력한 태풍이 지나간 후, 자신들의 아지트를 빠져나온 요리와 미나토는 광활하게 펼쳐진 수풀 사이를 마음껏 뛰어다닌다.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곳은 자신들을 괴물로 규정하는 편견 어린 시선,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괴롭히는 위력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특별한 존재인 미나토와 요리는, 그렇게 오직 둘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젖어 웃는다. 그들의 비밀 아지트처럼, 순수하고 따뜻하며,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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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이들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미나토와 요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영화가 확실한 결말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결국 결말을 결정짓는 건 관객의 몫이 됐다. 나는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말이건 그들이 스스로를, 서로를 괴물로 바라보지 않고, 또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그저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를 향한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을 지닌 채 언제까지나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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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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