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미술 강의'로 보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글 입력 2024.04.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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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소재하는 마이아트뮤지엄의 주최로 전시 중인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을 관람했다. 평시에 단순한 관람자 및 수용자의 입장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화풍의 그림들로 가득한 전시회였기에 너무나 만족스러웠는데, 이는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순수미술(모더니즘 이후)보다 세계와 가까이 위치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과 세계의 공명을 인지하게끔 만드는 재현의 미술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에 기인한다.

 

나는 스스로를 미술 및 미술사에 관해서 문외한과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에 대한 저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감상의 범주가 대단히 한정적이라는 한계를 자각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내밀한 취향에 더욱 집중하게끔 만드는 여러 그림들의 효과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들을 때때로 얻기도 한다.

 

이번 전시회 역시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형식 상의 혹은 도상학적 난해함으로부터 유발되는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고도 다양한 작가들의 그림들이 주는 인상과 아름다움 자체에 두 눈을 의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기에 이에 대한 감상을 보다 더 자세하게 술회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조주연 교수의 <현대미술 강의>라는 저서에 나타난 몇 가지 흥미로운 관점들을 차용하여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에 깊이를 더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의 전시 보도 자료 및 소개 글에 따르면 이번 전시회는 당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이 직면한 현실을 드러내며 프랑스 파리에서의 유학 이후 기존의 표현법을 모국의 정체성과 조화시킴으로써 북유럽 특유의 예술을 확립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유럽풍 인상주의' 내지 '민족 낭만주의'라는 명칭을 통해 세부적 사항들을 후술하고 있는데, 과연 민족 낭만주의가 무엇일까? 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Axel Jungstedt_In the Quarry. Motif from Switzerland_low.jpg

 

 

"과거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근대 미술을 지배해온 고전주의의 거부를 의미했기에, 낭만주의는 고전주의 미학의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영원한 미 개념과 이성을 중심에 두는 미술 개념을 반대하고 그 대신, 상대적이고 지역적이며 역사적인 미와 감정 및 상상력을 강조했다." - <현대미술 강의>, p 21.

 

당대 스웨덴의 예술가들이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보수적인 예술계(미술 아카데미)와 대립하고 새로운 화풍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영원성의 미 개념과 이성으로 대변되는 역사화와 풍속화를 거부하고 그들의 고향, 특히 다양한 지역 모티프로부터 얻게 된 영감에 집중하며 상대적이고 지역적이며 역사적인 북유럽 특유의 미를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시회 속 상당수의 그림들에 관류하는 '민족 낭만주의'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액자를 활용하여 눈길을 끄는 그림들이 서너 개 있었는데 그중 닐스 크뤼게르의 <할란드의 봄. 화가가 제작한 액자에 회화 세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Nils Kreuger_Spring in Halland. Three Paintings in a Frame Sculpted by the Artist-A_low.jpg

 

Nils Kreuger_Spring in Halland. Three Paintings in a Frame Sculpted by the Artist-B_low.jpg

 

Nils Kreuger_Spring in Halland. Three Paintings in a Frame Sculpted by the Artist-C_low.jpg

 

 

위 세 그림들은 하나의 액자 속에서 분할된 채 관람자에게 보여지는데 과연 이때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액자의 기능은 그림을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액자에 의해 그림과 세계는 단절된다는 말이고, 액자 안의 세계는 상상의 세계라는 뜻이다." - <현대미술 강의>, p 70.

 

물론 이는 말라르메가 회화의 물리적 경계를 확정하고 액자로 구획되는 물리적 경계 내부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위해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액자를 사용한 모든 그림에 해당되는 말인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연작과도 같이 한 액자 속에서 세 개의 그림을 분할하여 전시하는 것은 물리적 경계로부터의 단절감뿐만 아니라 각각의 그림들 사이의 관계성에서도 일종의 단절감을 발견하게끔 만든다.

 

과연 세 그림들은 화가가 동시에 관찰한 순간의 풍경들일까? 처음 그림을 본 순간에는 이것이 할란드라는 지역 내에서 매우 인접해 있는 장소들의 풍경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비가시적인 장소의 거리감과 같은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 물체들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기 위해 뚜렷한 윤곽선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거리감과 입체감으로부터 관람자는 확실하게 포착하기 힘든 하나의 단절감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세 그림은 모두 같은 지역의 봄날을 보여주고 있지만, 관람자로 하여금 그 안에서도 각기 다른 봄의 풍경과 그림 속 다양한 대상들이 자아내는 계절에 대한 유의미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의 연장선에서 전시회 내내 강조되는 '외광 회화' 역시 언급하고 싶다. 외광 회화는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며 풍경을 담아낸 그림을 말한다. 이를 통해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은 더욱 가볍고 밝은 색감을 사용하여 분위기와 빛의 효과를 묘사하였다.

 

"주어진 고정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 특정한 빛의 순간에 본 바로 그 대상의 형태와 색채를 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중략) 대상으로부터, 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지는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 <현대미술 강의>, p 69.

 

 

Anna Boberg_Mountains. Study from North Norway_low.jpg

 

 

안나 보베르크의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은 과연 세계로부터 얼마나 가까이에 놓인 그림일까? 노르웨이에서 그녀가 바라보았던 산악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재현에 충실했을까?

 

북유럽풍 인상주의 역시 인상주의의 하위 개념이므로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그림들은 그 자체로 세계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림들이다.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역시 다르지 않은데, 비록 여전히 재현 단계의 화풍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단순히 산악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기 위한 그림이 아닌 어느 특정 시점에 관찰한 산악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에 더욱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그림 하단의 어두운 색과 대비되는 산악의 묘사는 빛을 받고 있는 전면뿐 아니라 후면의 풍경,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이면에서 발생하는 빛의 반사를 상상하게 만든다.

 

미술사의 계보 및 그와 관련된 여러 이론들을 차치하더라도 이번 전시회의 그림들이 주는 이국적인 정취와 세밀한 묘사의 감동은 분명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사유하고 충분한 여유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들을 탐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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