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동경하며 살아간다. 필자는 언제나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창작자, 또 그들이 펼쳐낸 문화예술을 각자의 방법으로 향유하는 모든 이들을 예술가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어떤 예술가에 속할까.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던 시절부터 이런 시답잖은 고민을 달고 살아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수많은 롤 모델들 중에는,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라는 밴드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매시브 어택을 떠올릴 때면 이상하게도 한 사람의 이름이 함께 따라왔다. 뱅크시(Banksy). 내가 처음 뱅크시라는 이름을 접했던 것은 그의 작품 앞에서가 아니라, 그의 정체를 둘러싼 추측성 기사들을 통해서였다. 당시 인터넷에는 뱅크시가 누구인지에 대한 온갖 추측이 떠돌고 있었고, 그중에는 매시브 어택의 멤버 가운데 한 명, 특히 3D(Robert Del Naja)가 뱅크시가 아니냐는 설*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2026년 3월 로이터는 장기간의 탐사보도를 통해 뱅크시를 로빈 거닝햄(이후 데이비드 존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됨)으로 특정했다. 다만 뱅크시 본인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매시브 어택과 뱅크시는 서로 다른 장르에 속해 있지만,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매시브 어택이 음악을 통해 불안과 폭력, 전쟁과 사회적 불평등을 이야기해왔다면 뱅크시는 거리의 벽을 통해 권력과 자본, 전쟁과 난민 문제를 끊임없이 비틀어왔다. 둘 모두 예술을 현실과 분리된 장식물로 두기보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문제를 눈앞에 들이밀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왔으며, 공개적인 인터뷰에서 서로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꽤나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3D는 매시브 어택을 결성하기 전부터 브리스틀의 그래피티 신에서 활동한 인물이었고, 뱅크시 역시 브리스틀의 거리예술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는 접점 역시 존재한다.
지금에 와서는 뱅크시가 누군인가를 따져 묻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체감했지만, 당시엔 그저 ‘정체를 숨긴 그래피티 아티스트’라는 설명과 함께 매시브 어택이라는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뱅크시의 설계에 말려든 셈일까. 필자의 호기심은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면서도 세계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예술에서 창작자의 이름과 얼굴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며 자연히 그 '문제적 인물'의 작품세계를 주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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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price가 집계한 2024~2025년 동시대 미술 경매 거래액 순위에서 뱅크시는 8위에 올랐다. 뱅크시가 우리 시대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하나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처럼 보인다. 지난 7월 22일 개막해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 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BANKSY: Still Here》 역시 예매 오픈 보름 만에 3만 장 이상의 티켓이 판매됐다. 국내 관객들이 뱅크시라는 이름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다. 어딜 가나 논란을 몰고 다니는 문제적 인물이지만, 적어도 뱅크시가 없었다면 거리예술이 지금과 같은 지위를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체 우리는 왜 뱅크시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걸까.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104만 파운드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에 내장된 파쇄기가 작동해 작품 일부가 잘려 내려가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이후 작품은 〈Love Is in the Bi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뱅크시의 작품은 벽에 그려진 순간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된다. 누군가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언론이 보도하고, 사람들이 작품의 의미를 두고 논쟁한다. 작품이 훼손되기도 하고 보존되기도 하며, 때로는 경매장으로 이동해 거대한 금액에 거래된다. 뱅크시의 작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움직이는 사건에 가깝다. 그리고 이 지점을 이해하려면 그의 익명성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뱅크시의 익명성은 단순히 신분을 숨기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래피티가 불법 행위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경찰과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 역시 있었겠지만, 그 배경에는 훨씬 영리한 전략이 숨어 있다. 2007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공개될 당시 뱅크시는 익명 콘셉트에 대해 말하며 찰리 채플린을 언급했다.
“만약 내가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많고 많은 배우 중 한 사람일 뿐이에요. 나도 채플린과 같은 처지입니다”
뱅크시는 사람들의 환상이 현실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브랜딩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한때 경찰이 쫓아야 할 불법 그래피티 작가였던 뱅크시는 이제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이름 중 하나가 됐다. 그의 흔적이 남은 도시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행정기관이 움직이는 일도 생겼다. 한때 지워져야 했던 벽이 이제는 보호해야 할 문화자산이 된 것이다.
그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뱅크시가 미술관과 도시를 다루는 방식이다. 2009년 영국 브리스틀의 Bristol Museums & Art Gallery에서 열린 《Banksy versus Bristol Museum》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뱅크시는 고향 브리스틀의 공공미술관을 사실상 자신의 놀이터로 바꿔놓았다. 기존 소장품 사이에 자신의 작품을 끼워 넣고, 전통적인 미술관의 전시 문법을 비틀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시는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들였고, 브리스틀 미술관은 당시 이 전시가 지역 경제에 약 1500만 파운드의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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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장에 걸어놓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전시장 자체를 바꾸고, 도시를 바꾸고, 관광객의 동선을 바꾸고, 때로는 하나의 지역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바꾼다. 2015년 영국 웨스턴슈퍼메어에서 열린 디즈멀랜드(Dismaland) 는 그 정점에 가까웠다. ‘행복한 테마파크’의 전형을 뒤집은 이 프로젝트에서 뱅크시는 놀이공원의 형식을 빌려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정치적 무관심을 비틀었다. 입구부터 디즈니랜드를 연상시키면서도 모든 것이 망가져 있고 불편하다. 즐거움을 약속하는 놀이공원이 오히려 현대사회의 불안과 냉소를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디즈멀랜드가 열린 웨스턴슈퍼메어에는 약 5주 동안 1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고, 지역 당국은 약 2000만 파운드가 지역 경제에 추가로 유입된 것으로 평가했다. 반소비주의적 테마파크가 엄청난 소비를 만들어냈다. 그는 소비를 비판하면서도 대중을 소비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관심과 영향력을 다시 자신이 말하고 싶은 곳으로 돌려보낸다. 이것은 위선일까. 아니면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역으로 이용하는 전략일까. 뱅크시는 후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상업적 활동을 둘러싼 비판에 답하며 남긴 말은 꽤 직접적이다.
“상업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쓰레기로 변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면 자본주의를 아예 거부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하니까요.”
이 문장은 뱅크시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하다. 그는 돈을 거부하지 않는 대신, 돈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을 이용한다. 그래서 그의 예술적 실천은 작품의 가격과 사회적 메시지가 충돌하는 곳에서 가장 흥미로워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공개된〈Game Changer〉가 있다. 2020년 5월,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병원에 뱅크시의 작품 한 점이 나타났다. 그림 속 어린아이는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인형을 쓰레기통에 버려두고, 간호사 인형을 새로운 슈퍼히어로처럼 들어 올리고 있다.
뱅크시는 이 작품을 병원에 기증했고, 이후 원작은 경매에 부쳐졌다. 2021년 경매에서 작품은 £16,758,000(약 2,320만 달러)에 낙찰됐으며, 판매 수익은 NHS(국민보건서비스)와 의료·복지 관련 기관 및 자선사업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도 작품이 단순히 ‘기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이 돈으로 변하고, 돈이 다시 사회적 자원으로 변하는 순환. 이것이야말로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뱅크시의 작업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꽃을 던지는 남자>는 2003년 뱅크시가 처음 베들레헴을 방문했을 당시 서안지구 장벽 인근에 스텐실로 등장했다. 이후에도 뱅크시는 팔레스타인 장벽을 일종의 거대한 캔버스 삼아, 여러 작품을 남겼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몸을 뒤로 젖힌 채 무언가를 힘껏 던지려는 순간을 포착했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돌이나 화염병이 아니라 꽃다발이다. 폭력적인 시위의 자세와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꽃을 한 화면 안에 겹쳐놓음으로써, 뱅크시는 저항과 평화가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뱅크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상징적 공간인 장벽 바로 앞에 ‘The Walled Off Hotel’을 직접 세운다. 호텔 공식 사이트는 이 시설이 뱅크시가 독립적으로 설립하고 자금을 조달한 곳이라고 설명하며, 객실 대부분에서 그래피티가 그려진 분리장벽을 바라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본래 여행객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장소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객실 창밖으로 분리와 점령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뱅크시는 여행과 관광의 언어를 빌려 정치적 현실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곳이 단순한 뱅크시 전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호텔에는 뱅크시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꽃을 던지는 남자>(Flower Thrower)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뱅크시의 작품인가, 아니면 뱅크시라는 현상인가. 나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뱅크시의 작품은 벽에 그려진 스텐실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멈춰 서 사진을 찍는 것, 그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는 것, 작품이 사라지지 않도록 누군가 벽을 지키는 것, 경매장에서 작품의 가격이 치솟는 것, 도시가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람들이 ‘이게 예술인가’라고 묻는 것까지.
그래서 나는 뱅크시를 보며 ‘예술가’라는 말보다 ‘예술 운동가’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그림이 세상에 나간 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용하는 작가다. 앞서 말했듯, 사람들의 반응이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만큼 그에게는 무거운 책임도 따를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 없는 거리의 작가였지만, 지금의 뱅크시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그의 작품 하나가 도시를 움직이고, 미술시장을 흔들고, 때로는 사회적 자원까지 움직인다. 뱅크시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내 작품이 가져다주는 돈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죠. 징징댈 것 없이 그냥 모두 나눠주면 돼요. 내가 세상의 빈곤에 대한 예술을 만들면서 그 돈을 혼자 다 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내게도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죠.”
뱅크시의 언급처럼,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이다. 뱅크시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이미지가 자본주의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는 것. 뱅크시의 작품은 너무 유명하고, 너무 비싸며, 너무 쉽게 소비된다. 그의 반체제적 이미지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상품이 됐다. 그럼에도 뱅크시는 계속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때때로 그 작품으로 얻은 돈과 영향력을 다시 사회적 현장으로 돌려보낸다.
올해 로이터통신은 뱅크시의 지난 25년간 자선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린피스와의 협업, 베들레헴 프로젝트, 디즈멀랜드 이후 칼레 난민 캠프 지원, NHS를 위한, 우크라이나 관련 기부 등 여러 사례를 확인했다. 다만 뱅크시는 공개적인 재단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기부 규모를 정확히 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지적한다. 필자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뱅크시를 성인군자로 만들 필요도 없고, 반대로 위선적인 쇼맨으로 단정할 필요도 없다. 그의 작업에는 분명한 모순이 있다. 그런데 그 모순 자체가 뱅크시의 작품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뱅크시가 떠오르게 된 활동 초기의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끝마치면 좋을 것 같다. 2009년 말부터, 뱅크시는 브리스틀 그래피티 신의 터줏대감 로보(Robo)의 작품을 공격했다. 뱅크시가 로보의 작품 일부를 지우고, 그 위에 자신의 작품을 덧칠한 것이다. 다른 작가의 작업을 훼손하거나 덮어쓰는 행위는 그래피티 신에서 민감한 문제였고, 이 사건은 이후 양측의 작업을 서로 덮어쓰는 이른바 ‘그래피티 전쟁’으로 번졌다. 뱅크시가 이 규칙을 파괴한 사건은 작가들 간 전쟁으로 번져 뱅크시가 독특한 입지를 가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뱅크시가 문제적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 그래피티는 대중을 향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피티, 혹은 스텐실 작업이 대중예술로서 알려진 데엔 뱅크시의 공이 혁혁하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뱅크시는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들이 공격당하고 있다. 하지만 뱅크시의 작품이 원래의 장소에서 벗어난 것 뿐, 맥락에서 벗어난 건 아니다. 공은 이미 굴려졌다. 공은 앞으로도 계속 구르며, 더 큰 무언가가 될 것이다.
필자는 뱅크시를 묘하게 응원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대부분의 일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몹시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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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Still Here》
《BANKSY: Still Here》는 뱅크시의 모든 면을 낱낱이 해부하는 전시는 아니다. 그보단 우리가 사랑해온 뱅크시의 이미지를 한자리에서 다시 확인하는 전시에 가깝다. 유머가 있고, 유명한 작품이 있고, 극적인 사건들이 있다. 무엇보다 뱅크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하다. 특히 도시의 거친 벽면을 전시장 내부에 구현한 공간은 뱅크시가 작품을 만들어온 장소의 질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전시는 ‘Intro: Mask’를 시작으로 ‘Wall’, ‘Laugh Now’, ‘Icon’, ‘Peace’, ‘Outro: After the Mask’로 이어진다. 익명이라는 가면에서 출발해 벽과 저항, 유머와 풍자, 미술시장의 아이콘이 된 뱅크시의 역설, 그리고 평화와 인류애라는 주제를 차례로 보여준다. 뱅크시의 공식 인증 기관인 Pest Control Office의 인증 작품과 초기 판화·에디션, 사진작가 김우일이 기록한 벽화 사진, 공식 프로젝트의 오리지널 오브제와 인쇄물, 초기 실크스크린 제작 방식을 보여주는 아카이브가 더해진 것도 특징이다.
《BANKSY: Still Here》 는 오는 11월 3일까지, 더현대 서울 6층 ALT.1 에서 만나볼 수 있다.
참고문헌
윌 멜즈위스 존스, 『뱅크시: 벽 뒤의 남자』, 미술문화,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