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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할 말 있으면 랩으로 해 -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공연]

소크라테스와 멜레토스가 펼치는 랩 배틀

by 김승주 에디터
2026.09.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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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가 지난 10일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개막했다. HJ컬쳐의 극작품인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2022년 초연 당시 '랩 뮤지컬'이라는 형식, 그리고 래퍼들의 주연 캐스팅이라는 것을 한 차례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2026년 재연으로 돌아온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대체 어떤 작품일까? 한마디로 랩으로 하는 재판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기 전 벌어졌던 재판,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뮤지컬이 되어 21세기의 관객들을 찾아온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다.'라는 신탁을 전해 듣게 되어,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여러 현자들을 찾아다녔지만, 지혜로운 자들을 결국 찾지 못하고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 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를 나누며, 오류와 모순을 지적하며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해주고, 또한 신의 소명에 따라 사람들의 잘못된 가치관과 욕망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인간 양심의 등에'가 되어 아테네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청년 시인 멜레토스를 전면에 내세워서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하게 된다. 아테네 법정에서 나온 소크라테스는 전부터 자신을 고발했던 사람들과 현재 고발한 멜레토스를 향해서 스스로 변론을 하게 된다. 그는 500명의 배심원들 앞에서 고발내용의 진위를 가리며, 멜레토스와 열띤 심리를 벌이면서 유리한 변론을 하지만, 결국 유죄판결을 받게 되고, 더구나 사형당할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살려달라 애원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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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과거의 이야기나 담론을 21세기라는 현대의 무대로 가져올 때, 우리는 언제나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수천 년 전 아테네의 광장을 거닐던 소크라테스의 음성에 우리가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질문 안에 존재한다.


      신전의 신탁과 작중의 평가, 그리고 역사적 평가에 이르기까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칭송받은 이유는 그가 남들보다 뛰어난 지식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지혜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안다’는 깨달음, 즉 ‘무지의 지(知)’에서 출발한다. 그는 어설픈 지식과 통념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상대방 스스로가 자신의 무지를 직면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자신과 타인의 무지를 파헤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방법론을 모두가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아테네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 당대의 지식인, 저명한 가르침을 주며 명성을 누리던 이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가진 통념의 허구성을 밝혀냈다. 본래 자신의 무지를 마주하는 과정은 심리적 저항과 수치심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사회의 기득권과 대중은 그를 향해 깊은 분노를 태웠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적 방식의 위협을 누구보다 잘 간파했던 인물이 바로 고발자 멜레토스다. 작중 청년 시인이자 매우 보수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이 청년들을 자극하여 기존의 질서와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타락시킨다고 비판한다. 기존의 체제와 안락함에 안주하려는 사회적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사유를 촉구하는 질문이야말로 공동체의 안정성을 흔드는 가장 위험한 요소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아테네라는 거대한 말에 붙어 있는 등에’로 비유한다. 둔해진 말을 계속해서 찌르고 자극하여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존재,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정체성이었다. 그의 질문은 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귀찮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잠’에 빠져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에 빠져 있다’는 것은 사유하기를 멈춘 채 사회가 주입한 관습과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하며, 이는 역설적으로 진정한 삶과 대척점에 서 있는 상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완성된 지식이나 정답을 교조적으로 주입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의문점(질문)을 품고, 거듭 생각하며, 마침내 무지의 깨달음을 통해 지혜로워지는 그 ‘과정’ 자체를 이끌어냈다. 그에게 있어 인간다움과 철학의 본질은 완성된 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척하지 마, 다 뽀록날 거야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아는 척’하기 쉬운 시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스스로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가장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매일같이 거대한 정보의 폭포수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 무수한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진정 유용한지 가려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대상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내면화하는 ‘공부’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정보 중 ‘무엇을 안다고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곤 한다. 여기에 AI라는 첨단 도구가 등장하여 우리를 대신해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정제해 준다. 우리는 그것을 몇 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마치 해당 지식을 완벽히 습득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AI라는 도구가 어떤 매커니즘과 편향을 거쳐 그 정보를 선별했는지 알지 못한다. 거대 언어 모델과 알고리즘이 가진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베일에 싸여 있다. 내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체 불명의 시스템이 골라준 파편을 눈으로 훑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정말 이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겨를도 없을뿐더러, 솔직히 말해 지금 사회에서 그런 물음은 돈도 되지 않고 당장의 효율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내가 이렇게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사방에 널리 퍼뜨리는 행위다. 안다고 주장하는 겉치레와 스펙터클은 곧 자본이 되고 명예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2000년의 시공간을 넘어 날아온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구석을 찌르는 서늘하고 확실한 경종이 된다. 신나게 랩을 주고받으며 무대의 열기를 즐기던 관객들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크라테스의 라임과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된다. 그리고 그 힙합의 비트 끝에서 뜻밖의 묵직한 물음표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무언가를 제대로 알고 있나?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은 아닌가? 안다는 건 뭐지? 또 착각한다는 건 뭐지?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1세기라는 이 화려하고 스피디한 시대에 우리가 굳이 수천 년 전 소크라테스의 음성을 무대 위로 불러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고리즘과 포장된 지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무지(無知)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임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척하고 포장해 봐야 언젠가는 다 드러나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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