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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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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뮤지컬 <렘피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월 20일 코엑스아티움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연된 뮤지컬 <렘피카>가 막을 내린다.이 작품은 한국에 내로라하는 뮤지컬 디바들이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여성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그리는 뮤지컬 <렘피카>가 6월 20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상연된다.

 

주인공 렘피카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파란만장이다. 그녀는 폴란드 귀족 출신이다. 귀족 집안 아가씨로 태어나, 비슷한 신분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고, 렘피카는 갖은 고생 끝에 파리로 망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화가로 다시 시작한다. 그림을 팔며 화가로 점점 성장하던 중, 그녀는 ‘라파엘라’라는 여성을 만나고, 그녀에게 강력히 끌린다. 렘피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양차 대전 사이의 파리, 신여성 렘피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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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


 

‘여기, 파리는 살 만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시가는 벨 에포크 시기의 파리이다. 이때는 그 무엇이 어떻게 변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다. 사람들은 세계가 반으로 쪼개지는 전쟁을 경험했고, 그동안 믿어 왔던 모든 것, 인간의 찬란한 이성이 산산이 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전쟁이 또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도사리던 시대였다. 온갖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본인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해 갔다. 평화는 영원할 것처럼 찬란했지만, 그 찬란함은 거품처럼 순식간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것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른 채, 그저 빠르게 치닫기만 하던 시대였다.

 

그토록 빠르게 뒤집히는 세상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은, 그 빠른 속도에 적응하며 생존하면서도 속에서 안정을 찾고,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어떠한 것을 찾아 헤맨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정, 사랑, 가정, 돈, 명예, 예술,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을 주는 어떠한 것에 사람들은 끌리게 마련이다.

 

타마라 역시 그렇게 살았다. 뒤집힌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바꾸었다. 마음을 더 단단히 먹고,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그림을 팔아 돈을 번다. 시대와 같은 속도로 질주할 수 있는 강인함은 곧 타마라의 생존력이다.

 

동시에 그녀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라파엘라에게 끌린다. 라파엘라를 그릴 때면, 타마라는 정지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영원할 것 같은 찰나, 방향 없이 치닫던 시간은 멈춘다. 타마라는 그 찰나를 그림에 담아낸다. 꺼지지 않을 듯한 라파엘라의 현재적 육신, 그 짜릿하도록 관능적인 순간이 캔버스에 담기고, 라파엘라는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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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라 드 렘피카의 생존 본능


 

뮤지컬 <렘피카>는 렘피카의 생존기이다. 그녀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그 과정에 두 사랑을 만난다. 남편 타데우스와 애인 라파엘라. 렘피카는 둘 중 누구 하나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 사실만 놓고 보았을 때, 렘피카는 욕심쟁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극은 그녀가 자신의 남편과 애인, 둘 모두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뮤지컬의 도입부에서, 타마라 드 렘피카는 자신에게는 목숨보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있었으며,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했다고 말한다. 이 말인 곧 타마라는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죽는 것과 다름없어진다는 뜻이다. 타마라는 타데우스와 라파엘라 둘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그녀의 생존 본능처럼 읽힌다.

 

라파엘라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타마라에게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주는 존재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신여성 화가’라는 타마라 정체성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관능적인 아름다움, 동시에 기계와 같은 강인함. 라파엘라는 타마라가 ‘살아 있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 있다는 ‘느낌’만으로는 실제로 생존할 수 없다. 실제적 안정이 필요하고, 영원히 정지할 수 없는 시간을 함께 질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타데우스가 그런 존재이다. 그는 렘피카의 과거를 알고, 과거를 함께 했고, 그녀가 돌아갈 곳이 되어 주는 존재이다. 사회적인 안정을 제공하며, 그녀가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대상이다. 타데우스는 렘피카가 실제적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렘피카가 살기 위해서는 둘 모두가 필요하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녀는 죽는다. 이름과 성을 둘 다 가지고 있을 때야 온전히 한 사람으로서 명명되는 것처럼, 육신과 영혼이 둘 다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한 개인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는 불가분의 영역이며,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렘피카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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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성, 그리고 역사성


 

렘피카가 둘의 관계 중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둘이 그녀를 떠난 것 역시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들이 모두 떠났을 때 렘피카는 무너진다. 삶이 사실상 한 번 꺼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거품 같던 시대의 평화도 함께 깨진다.

 

그러나, 거대한 전쟁을 겪었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회복하듯, 렘피카의 생명 역시 회복한다. 그녀가 한 번 죽었을지 몰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렘피카는 다시 붓을 쥔다.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캔버스 한 폭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을 그려 넣을지는 오롯이 그녀의 선택이다. 렘피카는 진실했던 어떠한 것들을 그려 넣으며, 시대를 흘려보낸다.

 

그는 결국 다시 붓을 들고, 시간이 오래 지나 세상이 한번 더 뒤집힌다. 자신의 시대에 허락되지 않던 어떠한 것을 그린 타마라의 그림은, 이제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그 시절에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진실했던 것, 그 시대에 새로웠던 어떠한 것들은 역사의 일부이자 기록으로서 세상에 공개된다. 타마라 드 렘피카의 인생은 그렇게 관객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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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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