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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텅 빈 노트에 첫 줄을 적어 내려가는 마음으로 - 패터슨 [영화]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평범한 하루, 영화 <패터슨>

by 채수영 에디터
2026.11.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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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낄 때 습관처럼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다.

       


      봄과 모든 것 (Springs and all)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전염병동으로 가는 길가

      북동쪽에서 밀려온 파랗고 얼룩덜룩한 구름의 일렁임

      아래 — 차가운 바람. 그 너머

      서 있거나 쓰러진 마른 잡초로 누르스름한

      넓고 황량한 진흙투성이 들판


      군데군데 물웅덩이

      드문드문 키 큰 나무


      길을 따라 쭈욱 불그스름한

      자줏빛, 갈라지고, 꼿꼿한,

      잔가지 뒤엉킨 덤불과 조막만 한 나무들

      그 밑에 시든 갈색 이파리들

      잎이 다 떨어진 덩굴들—


      생기 없어 보이지만, 느릿느릿

      멍한 봄 다가온다—
       

       

      위의 시는 영화의 주인공 패터슨이 동경하는 20세기 미국 대표 시인이자 의사였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 「봄과 모든 것」의 일부분이다. 위대한 시인의 시구는 어떻게 탄생할까? 평범한 일상에서 번뜩이는 영감의 순간은, 경탄할만한 문장은 어떤 경로를 통해 오게 되는 걸까? 영화 <패터슨>은 이러한 질문에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할 때 삶은 비로소 시가 된다’고 답한다.

       

      <패터슨>은 삶에서 시가 존재하는 방식을 다루는 영화다.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하루는 매일 똑같이 굴러간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아침으로는 도넛 모양의 시리얼을 먹고, 버스를 몰기 전 운전석에 앉아 작은 수첩에 시를 쓴다. 퇴근 후에는 반려견 마빈을 산책시키고, 동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는 그 똑같은 나날들 속에서 자기만의 운율을 찾아낸다.

       

       

       

      마침표가 물음표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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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터슨의 수첩을 채우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아침을 먹다 바라본 성냥갑에 확성기 모양으로 적힌 글씨. 곁에 잠든 아내를 바라볼 때 밀려오는 벅찬 사랑과 두려운 마음. 할아버지가 부르던 옛 노래 속에서 비롯되는 질문 하나. 이 모든 것은 시의 재료가 된다. 누군가는 지나쳐버릴 사소한 순간들을 그는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는다. 늘 쓰던 성냥도, 매일보는 아내도, 오래전에 배웠던 가사도 문득 멈추어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작은 수첩을 늘 곁에 두는 패터슨을 보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떠올랐다. 영화 속 김용택 시인은 ‘사과를 본다’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 보았나요? 천 번? 만 번? 백만 번? 아니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를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 사과를 보는 것입니다. 사과의 그늘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입 베어 물어보기도 하고, 사과에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무엇이든 진짜로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있어요. 삶에 물이 고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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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사과를 진짜로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진짜로 보려면 그저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만져 보고 뒤집어 보고 베어 물어 보며 대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관찰’이란 그렇게 익숙한 표면에서 낯선 속내를 발견하는 일이다. 일상적인 사물에 나만의 색을 입혀보는 일이며, 오랜 마침표를 새로운 물음표로 바꾸는 일이다.

       

       

       

      목적 아닌 과정으로서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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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패터슨의 하루는 늘 같은 모양으로 굴러간다. 그러던 어느 주말 저녁, 평온하게 이어지던 그의 일상에 뜻밖의 균열이 생긴다. 아내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바닥에 갈가리 찢긴 채 흩어져 있는 수첩을 발견한다. 집에 남아 있던 반려견 마빈이 수첩을 물어뜯은 것이다. 차곡차곡 쌓아 온 시들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다. 다음 날, 패터슨은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점심마다 찾던 폭포 앞 벤치로 향한다. 그곳에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좇아 이 도시를 찾아왔다는 일본인 시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짧지만 어딘가 묘한 대화 후에, 시인은 그에게 빈 노트 한 권을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패터슨은 쏟아지는 물줄기를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건네받은 노트를 펼쳐 다시 시를 적기 시작한다. 매일 그랬듯. 담담하게. 절망 속에서 그는 어떻게 그토록 빨리 다시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아마 패터슨에게 시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이냐는 일본인 시인의 물음에 버스 운전사일 뿐이라고 답하던 그는, 누구의 평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대로 쓴다. 시를 쓰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 어느새 시가 된다는 듯이.

       

       

       

      텅 빈 노트에 첫 줄을 적어 내려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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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극적이고 다채로운 경험들로 가득 찬 삶만이 의미 있는 삶일까? 삶의 작은 조각들마저 일일이 전시하는 세상에서, 나는 자주 위축되곤 한다.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와 경험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빛나는 인사이트를 지닌 사람들을 보면 동경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선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한다. 동경은 비교와 자책으로 변질된다. <패터슨>은 그렇게 한껏 위축된 나를 위로해주는 영화다. 이런 삶도 있다고. 알록달록하고 빛나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 저편에, 꺼지지 않는 은은한 불빛으로 오래, 따듯하게 타고 있는 삶이 있다고 말하며.


      영화가 끝나고 노트북을 덮으면, 성냥갑의 글씨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패터슨처럼, 사과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미자처럼 지금 내 눈앞의 것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시선이 멈춘 지점,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진다.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 첫 반짝임으로부터.


      텅 빈 노트에 첫 줄을 적어 내려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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