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처음 만나 오랜 인연을 이어온 남궁호과 이미도. 스물여섯 살에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어느덧 10년 차 커플이 된다. 한때는 서로에게 가장 특별하고 설레는 존재였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사랑은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어 간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까운 사이이기에 상처를 주고받고 각자의 현실적인 문제까지 마주하게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는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 앞에서 흔들리고,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어온 사랑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서로의 삶에서 물러나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이야기는 오랜 연애가 마주하는 현실적인 갈등과 새로운 감정, 그리고 익숙한 사랑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그리는 것처럼 홍보했다. 만약 현실적인 갈등, 그리고 익숙한 사랑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정을 깨닫고 나아가는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의 평가가 이리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미 자자한 악명을 듣고, 어떤 부분이 그렇게 관객들에게 불쾌함을 주었는지가 궁금해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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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궁호와 이미도는 이미 서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10년 차 커플이다. 영화감독을 준비하는 미도는 법적인 문제와 여러 힘든 일이 겹치면서 한태승이라는 변호사를 알게 된다. 술에 취한 어느 날 미도는 녹음기를 켜둔 채, 한태승과 키스를 나누게 된다. 본인이 남궁을 두고 다른 사람과 키스했다는 사실에 미도는 죄책감을 느끼며 그 일을 없었던 일로 생각하기로 한다.
남궁호는 회사에서 박수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함께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자며 다가온다. 나중에 밝혀지기를 박수아의 고등학생 시절에 남궁호와 만난 인연이 있었고, 박수아는 남궁호를 좋아하고 있었다.
남궁호가 어머니와의 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미도는 녹음기를 빌려주게 되고 남궁호는 미도와 태승의 키스 사실을 알게 된다. 남궁호는 이에 충격받으며 미도에게 결혼을 미루자고 이야기한다. 힘들어하는 미도를 보며 미도를 상처 주기 위해 그 남자를 만나고 오라는 말을 맨정신으로 하게 되고, 미도는 나만 만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너도 다른 사람과 한 달간 연애를 하면 본인도 그러겠다고 이야기한다.

한 달간의 연애 내용은 남궁호와 수아의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다. 미도와 태승의 이야기는 분량도 적고, 이 한달 간의 연애 장면조차 남궁호와 미도가 처음 만난 그 순간을 남궁호의 이야기를 위해 허비된다. 한 달간의 연애 후 남궁호와 미도는 결국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이별 여행을 다녀온 뒤 완전히 헤어진다.
미도와 남궁호가 헤어지기로 결정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미도는 영화를 포기하고 대학 강사가 되어 있고, 남궁호는 해외를 갔다 온다.
2년 만에 남궁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미도의 가족들에게 남궁호는 손절을 선언한다.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에 설렘이 없어도 사랑이다'라거나 '사랑이 끝났어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는 메지를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남궁호

남궁호와 이미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10년 차 커플이 아니다. 남궁호의 가정사를 논외로 하더라도 남궁호를 구하기 위해 미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미도의 가족들은 마음 한으로 남궁호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도는 남궁호가 아닌 본인의 '남궁호를 구해달라'는 부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며 남궁호에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멜로를 볼 때 이들의 감정을 따라간다. 성장드라마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이 사랑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이 바뀌거나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남궁호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미도와의 사랑이나 그 둘의 캐미를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은 점점 이해할 수 없어지는 남궁호만을 마주하게 된다.
본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나중에 가서는 본인을 불쌍하게 바라보지 말라고 하는 등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발언만을 한다.

이별 여행조차도 남궁호가 여행에서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출하며 미도가 '너의 존재가 저주처럼 느껴질 때는 오늘을 기억해라. 넌 기적이다.'와 같은 말을 하며 마지막까지 남궁호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데 쓰인다. 2년이나 지나서야 남궁호는 '한 달' 사귄 박수아를 찾아가 너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다시 사귀자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 또한 관객이 느끼기에 10년 차 커플이라고 홍보하며 장기 연애를 강조하던 것과 드라마가 하는 이야기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쯤 되자 남궁호에게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정작 그는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본인밖에 모른다. 심지어 가식적이라고까지 느껴진다. 미도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합리화한다.
멜로에서 호러물로

처음에는 바람피 미도에게 공감해 주기 힘들었다. 아무리 지쳤더라도 자신이 다른 남자와 키스해 놓고 힘들어하면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화에 다다를수록 이제껏 본인이 느꼈던 죄책감, 부채감 그리고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미도에게서 받았던 상처를 모두 미도에게 떠넘기고 탈출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11화를 기점으로 멜로물에서 복수극 혹은 호러물로 변한다. 이 시점부터는 미도의 상처는 중요하지 않아진다. 미도가 먼저 다른 남자와 키스했으니 무적이라는 마인드를 장착한다.
사기 치고 다니는 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자신보다 20살 넘게 차이나는 동생 때문에 갈등할 때도, 항상 옆에 있었던 미도와의 기억은 잊어버린 듯이 자신은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마치 이제껏 미도 옆에 있었던 이유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 때문 듯한 태도를 보이며 지난 10년 간의 사랑을 매도해 버린다. 보는 동안 뒤로 갈수록 미도에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기에 서강준의 모든 대사와 행동은 하나하나가 호러가 아닐 수 없었다.
태승과 미도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태승과 미도를 응원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태승과 미도의 관계도 썩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람으로 시작된 관계인 데다, 미도는 불안정하고 태승은 서툴다. 하지만 남궁호가 미도를 그저 나를 위한 히어로 정도로 생각하는 반면에 태승은 미도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함께 있어 준다. 미도가 남궁호와 있을 때는 둘 다 부채감과 죄책감과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도와 태승을 보고 있자면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10년이나 된 남궁호보다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는 태승의 '어떻게 해줄까요?'라는 대사가 좋다.
태승이 무언가를 해주기를 미도가 원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태승의 말이 미도에게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태승과 함께 있으면 미도는 본인을 숨길 필요가 없다.
만약 미도와 태승의 분량이 남궁호의 분량과 비슷했거나,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많았다면 '남궁호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라 '새로운 사랑'에 대한 드라마라는 타이틀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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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대에게 90%의 지분을 주고, 남은 10%로 스스로를 지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남궁, 이제 10%가 아니라 100%로 줘."
"눈치랑 배려는 참 비슷한 거 같잖아, 근데 배려는 하면 할수록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거 같거든?
근데 눈치는 보면 볼수록 내가 초라해져
근데 나 여기서 더 초라해지면 진짜 끝이야."
"내가 전에 너한테 그런 말 한 적 있었잖아. 쪽팔리면 그 힘으로 일어나라고.
근데 사실 나 일어나기만 했지, 아직 한 걸음도 못 뗐다."
"혼자 보긴 무서울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같이 봐준다고. 중간에 보기 싫으면 나와도 돼. 5분만 보고 가도 돼.
어차피 한 달 지나면 나 버릴 거잖아. 그런 놈 앞에서 좀 쪽팔리면 어때? 체면 좀 구기면 어때? 곧 다신 안 볼 사이인데, 안 그래?"
<너 말고 다른 연애> 유수지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