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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7데이즈 7피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봄, 친구와 한강을 걷다가 강가 계단에 걸터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낸 세 시간동안 강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에 닿은 한 사람이 있었다. 긴 머리, 연갈색 기타를 품에 안은 그 남자는 우리가 자리에 앉기 전부터 강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과 기타를 떠올려봤을 때, 보통의 연주자는 강을 등지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음악을 들려줬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듯, 자신과 음악 사이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강쪽을 바라보며 기타를 튕기고 있었다. 무려 세시간동안.
그때는 의문이었다. 누구에게 들려줄 목적이 없다면, 그냥 집이나 작업실에서 연주하는 것이 편할텐데 왜 쌀쌀한 저녁에 꼼짝않고 저렇게 바깥에서 연주를 할까? 덕분에 친구와 이야기하는 세시간동안 한강의 저녁이 더 낭만적었지만 말이다. 영화 <7데이즈 7피플> 속의 진화를 바라보며, 나는 그를 생각했다. 힘 없는 어깨, 지쳐보이는 목소리, 하지만 저녁의 물결처럼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던 기타를 둘러멘 그 남자의 뒷모습을.

소리 낼 곳을 찾아서
영화 <7데이즈 7피플>의 주인공 진화는 인디뮤지션이다. 진화를 연기한 임진화는 실제로 인디밴드 HOA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 기타를 치며 곡을 만든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층간 소음 항의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기타를 메고 집 밖으로 나선다. 집도 작업실도 아닌 거리가 그의 연습실이 된다.
그 장면에서 지난봄 강가의 그 사람이 겹쳐 보였다. 그 남자 역시 집에서는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없어서 강가로 나왔던 건 아니라까.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소리를 낼 곳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진화는 더 이상 스크린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느 봄날 저녁,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그의 얼굴이었다.

이별 D-7
진화에게는 7년을 함께한 연인 미래(서은수)가 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미래가 진화에게 이별을 꺼내는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통보 앞에서 괴로워하던 진화는 미래에게 문자한다.
"일주일만 시간을 줄래? 헤어지더라도 일주일 후에 헤어지자."
그렇게 이별을 일주일 미뤄둔 진화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음악과 사랑, 그중 무엇을 놓아야 할까. 공교롭게도 연인의 이름이 하필 '미래'다. 사랑을 놓는다는 게 진화에게는 곧 미래를 놓는 일과 같지 않았을까.
진화가 만나는 사람들은 꿈과 현실 사이 갈림길에 한번씩 섰고, 그 길 위에서 나름-의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함께 인디음악을 하던 선배 상훈(정일우)은 음악을 접고 이자카야를 열었고 같이 음악을 하던 친구 철순(전석호)은 수입차 정비소를 운영한다. 그림을 파는 선배 수창(최병윤)은 돈과 현실을 이야기하고, JH뮤직의 장대표(유재명)는 아티스트 출신이지만 현재는 음악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한 아들을 묵묵히 응원하는 진화의 엄마(양말복)도 있다.
음악을 그만둔 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음악에 대한 그리움은 가지고 있지만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름의 하루를 꾸려가고 있었고 진화에게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심 어린 이야기를 건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 선택은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는 식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 위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놓아줄 용기
일주일 동안 들은 수많은 말 중 가장 오래 남은 건 동욱(양동욱)의 한마디였다. 동욱은 진화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도 음악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진화에게 말한다. 놓아주는 것도 대단한 용기라고. 누구보다 오래 음악을 붙들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동욱을 연기한 양동욱 역시 실제 뮤지션이자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기도 하다.
그 말이 장면이 되는 순간이 있다. 오디션을 마치고 나온 진화가 길거리에서 절규하듯 'D-DAY'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노래를 계기로 진화는 음악을 하고 싶지만 현실 앞에서 망설이던 한 여학생(김푸름)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기타를 건넨다.
기타 한 대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 진화가 그동안 품고 있던 시간까지 함께 건너가는 것만 같았다. 동욱이 말한 용기란 어쩌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

강가에 남은 기타 소리
영화 <7데이즈 7피플>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먼저 관객을 만나며 '한국판 <원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음악이 이야기의 큰 몫을 차지하는 영화다. 개봉 2주 전 먼저 공개된 OST는 음악감독 양동욱과 임진화가 대부분의 곡을 함께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My Daisy'라는 노래를 가장 추천한다.
영화관을 나서며 그 봄날 강가의 남자를 다시 떠올렸다. 그가 그날 무엇을 고민하며 세 시간 동안 기타를 튕겼는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진화의 일주일을 따라가고 나니, 강을 향해 앉아 있던 그 뒷모습이 더는 의문으로만 남지 않는다. 소리 낼 곳을 찾아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 무엇을 쥐고 무엇을 놓을지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쌀쌀한 저녁 강가의 기타 소리처럼 작은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