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집에 돌아오면 일단 눕는다. 퇴근해서 씻고 옷까지 갈아입었으면 오늘 할 일을 꽤 많이 해낸 셈 아닌가? 침대가 눈앞에 있는데 굳이 앉아 있을 이유도 없고.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해 놓고는 별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진다. 예전에는 이 정도로 눕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주 자연스럽다.
누워서 뭘 대단히 하는 것도 아니다.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가끔 음악도 틀어놓는다. 분명 뭔가를 하려고 누운 건 아니었는데 그러다 보면 시간이 꽤 지나 있다. 뭐, 하루를 다 보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날도 그렇게 누워 있다가 10월 23일과 24일에 있을 서울시향 공연의 프로그램을 미리 들어봤다. 앞에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있었고, 뒤에는 레퀴엠이 있었다. 아, 이번에도 모차르트구나.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노래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그동안 내가 찾아 들었던 모차르트는 대부분 기악곡이었으니 성악과 합창이 함께하는 레퀴엠은 조금 낯설었다.
일단 앞에 있는 피아노 협주곡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공연 프로그램도 읽어봤다. 무슨 곡인지 어느 정도 알아두면 공연장에서 듣다가 반가운 부분도 하나쯤 발견할 수 있지 않겠나.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I. Allegro — 빠르게
순전히 귀로만 따라가자면, 공연장에서 들을 때도 기분 좋겠구나 싶은 음악이다. 두 대의 피아노 앞에 두 명의 연주자가 나란히 앉아 모차르트를 연주한다. 눈앞에 놓일 장면만 생각하면 요 근래 본 공연들에 비해 꽤 색다르겠다. 두 사람이 어떻게 주고받을지도 궁금하고.
프로그램 노트를 읽어보니 이 곡에서는 두 대의 피아노가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연주한다고 한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음악을 시작하면 두 피아노가 그 뒤를 이어받고, 서로 시작과 끝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단다.
모차르트가 누나 난네를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곡이라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형제인 루카스 유센과 아르투르 유센이 두 대의 피아노 앞에 앉는다. 아, 이번에는 형제가 연주하는구나.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을 모습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다만 나는 모차르트의 밝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조금 낯을 가린다. 분명 기분 좋은 음악이고, 듣기에도 편안한데 나까지 그렇게 밝아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악을 듣는 데 굳이 그런 마음까지 먹을 필요는 없겠지만, 왠지 그렇다.
회사 정문을 나와 지하철 게이트를 지나 집 앞에 거의 다다르고,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내 방 한구석에 툭- 집어던진 뒤의 나를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누구한테 말도 걸고 싶지 않은 날에는 이런 밝은 음악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딱히 막 ‘기분 좋다!’ 이렇다 할 일이 없는데도 모차르트를 들으려면 어깨와 눈높이를 조금 들어 올려야 할 것 같다. 물론 모차르트가 나더러 그러라고 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다. 저쪽은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데 나는 오늘 별로 그렇지 않으니, 서로 조금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듣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또 사실이다.
II. Andante — 걷는 빠르기로
그러니까 2악장에 들어와서는 그가 조금 힘을 풀어놓은 것 같아 안심하게 된다. 우리가 어디에서나 ‘발랄’한 채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선 악장보다 차분해진 음악을 듣고 있으니 나도 조금 편해진다. 굳이 기분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괜찮겠다. 여유롭다. 참 나지막하게 여유롭다.
프로그램 노트에서는 이 악장의 시작에 오보에가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현악기가 배경을 만들어주고, 오보에가 선율을 들려준 뒤 두 대의 피아노가 그 뒤를 이어간단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라고 해서 줄곧 피아노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보에가 들려주는 선율도 한번 귀 기울여봐야겠다.
후반부로 갈수록 피아노의 대화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는 설명도 있었다. 공연장에서는 두 사람이 어떤 속도로 소리를 주고받는지, 그 사이에 오케스트라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III. Rondeau. Allegro — 론도. 빠르게
진짜 3악장은 이래서 맑고 깨끗하고, 그야말로 만나서 반갑고, 보면 볼수록 즐겁고, 애간장 태우는 것 하나 없이, 눈치 볼 것 없이 오순도순 길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다.
울적해할 필요 없다는 듯이 밝게 이어지는 음악이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더 극적이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뭐 그런다. 내가 모차르트에게 바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가 보다.
이번 악장은 론도라고 한다. 처음 등장한 주제가 중간중간 다시 돌아오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노트에서는 밝고 힘찬 론도 주제와 마지막 피아노 카덴차를 눈여겨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내가 한 번 들었던 선율을 다시 알아볼 수 있는지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겠다. 아, 이거 아까 들었는데? 하고 혼자 반가워할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공연장에서는 두 피아니스트가 이 음악을 어떻게 연주할지 궁금하다. 뒤로 갔다 앞으로 왔다, 뭐 이런 건 연주자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기다리자!
그리고 다음은 레퀴엠이다. 앞의 음악을 듣다가 넘어오니 분위기가 꽤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끝을 보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부터 찾아보게 됐다.
모차르트, ‘레퀴엠’
모차르트가 겨우 35년밖에 살다 가지 못했구나. 그걸 몰랐다. 나도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인지, 그 숫자가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레퀴엠이 무슨 뜻인지 다시 찾아봤다. 죽은 이를 위해 평안과 구원을 기원하는 미사곡이란다. 의뢰를 받아 쓰던 곡이라는데, 정작 모차르트는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남은 부분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일찍 떠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또 어떤 곡을 썼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런데 자기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곡이 이렇게 오래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도 참 신기하다.
일단 레퀴엠을 듣다 보면,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음악이라기보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 치르는 의식을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물론 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이 맞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엄숙했다. 슬프다기보다는 비장하게 들리는 부분이 더 많았다.
프로그램 노트를 읽어보니 레퀴엠에는 ‘진노의 날’, ‘지엄한 왕’, ‘기억하소서’, ‘눈물의 날’ 같은 부분들이 있었다. 죽은 사람을 슬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구원을 청하는 내용도 함께 들어 있단다. 아,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장하게 들렸던 걸까? 가사의 내용을 알고 나니 음악을 듣는 기분도 조금 달라졌다.
이렇게까지 엄숙하게 떠나는 길을 배웅받으면,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눈치가 보여 못 돌아오겠다! 뭐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화음이 워낙 크고 진지해서 그런가.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이라고 하면 조금 더 슬프고 애틋한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디 있다 이제 가나, 벌써 가서 어떡하나.’ 누군가가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그 사람이 왜 떠났는지, 얼마나 아쉬운지보다도 이미 떠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죽은 사람을 위한 음악을 이렇게 길게 들어본 적이 얼마나 있었나 싶었다. 이런 노래를 오래전부터 만들어 부르고, 지금도 계속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미리 들어보는 와중이니 마음에 드는 부분도 하나 골라봤다. 일단 나는 Recordare가 꽤 괜찮은 것 같다.
Recordare, 그 많은 목소리와 커다란 화음 사이에서 Recordare는 조금 가까이 들렸다. 다른 부분보다 귀가 오래 머물렀고,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었다.
앞에서는 음악이 워낙 크고 엄숙하게 들려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사람 목소리를 하나씩 따라 듣게 됐다. 한 목소리를 듣다가 다른 목소리로 귀를 옮겨가고, 그러다 다시 함께 부르는 부분을 듣는다. 꼭 내가 집중해서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Recordare는 ‘기억하소서’라는 뜻이란다. 가사를 읽어보니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하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하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네 명의 독창자가 함께 노래한다. 앞에서 들었던 커다란 합창과 달리 각자의 목소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공연장에서는 네 사람이 어떻게 서로의 소리를 받아 이어가는지 들어봐야겠다. 목소리가 하나씩 등장하다가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은 또 어떤 느낌일까?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 하나쯤 생기고 나니 실제 공연이 조금 더 기다려졌다.
Lacrimosa, 듣다 보면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봤던 Lacrimosa가 나타난다. 아, 이게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있는 곡이었구나.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멜로디가 낯설지 않았다.
프로그램 노트를 읽다가 조금 놀란 부분도 있었다. 모차르트가 ‘눈물의 날’에 남긴 것은 처음 여덟 마디였고, 그 뒤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익숙하게 들어온 이 음악도 모차르트가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작품 안에 있는 셈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공연장에서 이 곡을 들을 때는 조금 다른 생각도 들겠다. 익숙한 선율을 반가워하다가도 모차르트가 어디까지 작곡했는지 한 번쯤 떠올리게 될 테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그리 많이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익숙한 멜로디가 하나씩 나타나는 게 신기했다. 서울시향의 공연 프로그램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몰랐던 곡도 듣고, 이미 들어봤지만 제목은 몰랐던 음악도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게 은근히 재미있다.
그리고 나는 공연 날 이 레퀴엠을 약간 오페라처럼 들어보고 싶어졌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무대 위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지, 여기에 무슨 대사를 붙이면 좋을지. 실제로 인물들이 나와서 연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대로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가사를 읽어보니 이 음악은 떠난 사람에게 직접 인사를 건네는 노래가 아니었다. 떠난 이의 안식을 기원하고, 하느님께 자비와 구원을 청하는 기도였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고, 그 기도를 하게 만든 사람은 이미 세상에 없지 않은가.
노래를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모두 살아 있는데 정작 이 모든 노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사람이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은 사람들은 계속 그를 생각하며 노래한다.
사람들은 떠난 사람에게도 말을 붙인다. 레퀴엠은 그사이 끝나 있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레퀴엠’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0월 23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과 2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26년 시즌 정기공연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레퀴엠’을 선보인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지휘하고, 네덜란드 출신의 피아노 듀오 루카스 유센과 아르투르 유센이 협연한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두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후반부에는 소프라노 홍주영,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손지훈, 바리톤 이동환과 국립합창단이 함께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려준다.
Program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Mozart, Piano Concerto No. 10 for Two Pianos in E-flat major, K. 365
모차르트, 레퀴엠
Mozart, Requiem in D minor, K. 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