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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박경리 '토지' 답사일지 1

하동 악양면 도보 여행기1

by 서상덕 에디터
2026.10.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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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첫 번째 답사 : 260815-17


       

      사람의 면면은 각 다르다지만, 그 낱낱의 다름에도 불구 그를 아우르는 모종 유사성이 있어, 그리하여 한 고장의 사람들과 다른 고장의 사람들이 대동소이하면서도 그 가운데 결코 공유되지 않는 어떤 특유함이 있고, 그것을 뱉어진 언어의 이면으로부터 우리가 곧잘 알아차리게 되는 듯이. 그러나 그 모호한 무언가를 두고 왜 우리는 냄새라고 표현하는가, 한 고장의 인간과 다른 고장의 그것을, 나아가 한 국가와 다른 국가, 인종 간의 차이에다가 마저도 왜 우리는 냄새를 떠올리는 것일지.


      서울 산지가 하마 10년이 더 되었다만, 아직도 여기 온전히 정착했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건 아마, 고향을 지닌 사람의 응당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나고 자란 동네와 마을이 멀리 또 엄연히 존재하고 그게 기억 속에 온전한 이상, 하여 과거의 고향과 현재의 거취를 모두 간직하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곳은 낯선 땅, 그러나 내 20대와 30대의 온상이요 터전이며, 앞으로도 살아갈 나의 새 토지이다.


      영영 이 낯선 토지를 살아가는 것이 나의 당연히 걸어갈 길인 한편으로, 사람이 과거를 추억함이 자연스러우니만큼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란 앞으로도 오래질, 아마 영영 그림자처럼 가슴을 뒤따를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관념 속에 두 가지 대지를 지닌 사람의 마음은 그리움으로, 어느 한편으로부터 다른 한 가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구성지리라 생각한다. 막말로 내가 추억의 맹랑한 손길을 따라 빙충이 낙향해본들, 거기선 이녁을 향한 새 그리움이 일어날 것임을 안다. 그러니 그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온전히 해갈하는 방법일랑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두 가지 대지를 가슴안에 품은 딴에는!


      그러므로 그리움이란 오직 하나의 정서로써, 가슴 한 켠에 매콤한 감상 정도로 달아두는 편이 좋겠고, 마치 청승처럼 이따금 꺼내어 스스로 흠향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임 앞에 태운 향불처럼, 심심한 향 내음을 맡다가 이따금 사무치는 밤이 있을진저, 그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리니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아마 이게 그리움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 정도 되실 것이고, 마침 내 심상한 콧잔등 위로 그리운 내음이 스치운다.


      박경리 씨 '토지'를 읽노라니 그토록 추억하던 사람 내음 물씬 풍기온다. 조금 울컥한다.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정서랄까. 고향이 대구이니 내 찾던 내음도 대구 사람 냄새이려니 하다가, 문득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을 경상도 정서라고 일축할 수만도 없겠는 게, 할아버지 고향은 충남 예산이렷다. 그럼 내 지금 고대함도, 그 시원일 내 정서의 몸체도 말로써 증명하는 일은 요원해지는 일이겠다. 다만 이 순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입의 말, 한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들만의 구어 口語. 내 그리움은 언어이다.


      단어의 풍미와 음성의 운율. 쉬운 비유로는 가사와 멜로디 같은 개개인의, 개개인만의 고유한 구어를 사랑한다. 나의 사랑하는 두 어른은 워낙에 달변가라, 택하는 단어의 면면에는 자반 고등어처럼 살아온 내력이 촘촘히 베여 있었고 그 목소리엔 성조와 운율이 있어, 마치 하나의 노래와 같았다. 오직 그 사람의 입으로서만이 들을 수 있는 가락 같은 것. 그러니 이쯤 내가 그리워하던 것은 비단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의 언어들이요 즉, 사투리이다. 입말을, 그 푸지고 구성진 말맛을 그리워한다. 작금 내가 듣는 것들일랑 너무 납작하고 효율적인, 심심한 말들뿐이라.

       


       

       

      대충 이런 심산을 가슴안에 품고, 약 한 달 반 전에 무작정 하동에 여행 온 일이 있다. '토지'를 읽기 시작한 지 채 한 주가 되지 않은 즈음, 때마침 마련된 연휴에 휴가 하루 붙여서 내려온다. 1부의 무대인 악양 평사리를 눈에 담으려는 심산, 그만큼 토지와 나의 첫 만남, 첫인상은 강렬했겠다. 어쩌면 이 책을 오래 보고 길이 추억하리라는 강렬한 예감에 한편, 겨우 1권도 채 읽지 않고 사랑에 빠질 연유란 또 무어란 말인가, 스스로 의혹처럼 생각해 보자 하니 과연 그 이유는 심상한 것이 아니겠다. 그저 말맛이 좋았다는 것, 그뿐. 같이 읽는 동료들로부터는 사투리가 퍽 난해하다는 난처한 소리가 들려오고, 사투리 화자인 나로서도 두루 옛말에 드문드문 어려운 지경이건마는, 시인성과는 아득히 무관하게도 그 말맛이란 한참을 꼬수웠다. 눈으로 깨를 핥는 듯한, 결단코 구수하다기보다는 혀 위에 까슬히 느껴지는 낱알 하나하나의 감각. 더러 톡 쏘는 듯, 약간의 짜르르한 감각이랄까.


      토지의 대사와 언어는 도저히 발랄하였다, 다른 말로는, 생동감이 흘러 넘치었다. 또 다른 말로는,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저자가 활자에 의지해 창조한 세계란 기실 설계도와 같아, 독자인 내가 그 도면을 따라 스스로 직조한 이미지로서 하나의 세계가 된다라면, 나는 저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니라, 왜냐하면 깊이 이해하는 일은 사랑하는 것으로 바꾸어 쓸 수 있겠으므로, 거꾸로 내 사랑하는 만큼은 그 이해의 깊이를 갈음할 수 있겠으므로. 박경리 씨가 그려낸 인물이 내 안에 배경과 형상을 갖추고, 목소리와 성정, 그 성정을 나이테처럼 그은 하나의 얼굴이 되어 살아날 때, 그 인물들이 뛰노는 터전에 나는 가야겠다. 기름진 악양 평야와 그 양편 병풍을 댄 채 그 안에 비밀과 갈등이 무르익는 산등성이 깊은 숲과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아야 했다. 정녕 내 그 인물을 충분히 이해해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으니.


      토지의 인물들 면면에는 잊고 있던, 종종 그리워하던, 가끔은 사무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냄새, 내 유년 깊이 박인 사람의 어떤 정서가 고스란히 자리해 있었다. 즉 내 기억하나 오래도록 재회치 못한 유형의 인간들과 그 냄새, 내 추억하고, 또 그리워하는 그 냄새란 흙먼지같이 매캐히 거칠고, 탁주의 아래 고인 찌꺼기처럼 시큼 새초롬하며, 두엄 냄새처럼 거름 없이 투박한 한편으로, 피할 길 없이 차라리 구수해지기도 하는 것. 마음에서 마음으로 곧잘, 올곧이 질러 들어오는 거칠고 직선적인 태도와 깊이 숨길지언정 함부로 덜어내지 않는 애호. 그것은 온통 다정코 살가운 것으로 구성된 포시라운 온유함이 아니이라, 오히려는 무정한 진심에 가까운 애정이다. 내가 받아먹고 자란 애정이다, 내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고모들의 애정, 그 표현의 말들.


      내 기억하는 경상도 특유의 애정 방식은, 아닌 척하는 사랑. 그것의 표현은 반어와 골계, 짓궂게 비꼬는 말 뒤에 깊이 감추고 침묵함으로써, 아닌 척하는 사랑. 어떤 위기나 모종 계기를 빌어서 드러나 버리면, 들켜버리면, 우라질 쏟아지는 폭포처럼 자지러질 사랑. 어쩌면 감추고 아낌으로써 가슴안에 담아낸 것은 호수요, 수문이 열리는 모양으로 마침내 쏟아지는 사랑. 부끄럼쟁이들의, 정반대의 사랑. 아닌 척 말을 걸고, 그에 답해 아닌 척 뒤로 손을 뻗는 사랑. 비단 이 사랑뿐 아니라 그 외 모든 관계에서도, 우린 말을 삼킨다. 위무하지 않는다. 받고자 하는 것의 반대로 청하고, 주고픈 것의 반대로 주는, 이상한 사랑, 이상한 관계 방식. 그러나 말하지 않음으로써 전달되는 것이 있고, 주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주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직 내 언변으로는 이를 다 설명해 보이기 어렵다. 그래서 소설이 있는 것이겠거니, 어떤 건 영영 설명될 수 없고 대신 보여질 뿐이라.

       


       

       

      여차여차하여 당시 여행을 결정했고, 8월 한창은 여름이었으며, 걷는 내내 비가 왔다. 하동 초행은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것이었다. 서울발 버스는 전남 구례를 지나,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인 화개와 소설의 무대가 되는 악양마저 지나친 다음 경남 하동 터미널에서 여정을 마친다. 악양 일대에 내리면 좋으련만, 인근에 숙소가 마땅치 않아 화개 터미널에 내렸다. 산간 내륙인지라 거주 인구 및 통행량이 많지 않아, 터미널은 지나치게 소박하다. 상주하는 인물은 없고, 다만 승객 한두 명 정도가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인 간이 터미널이었다. 깊은 산골짜기로는 해가 다문 30분이라도 일찍 지는 법, 화개골엔 이미 해가 지고 없었다. 다리를 건너 화개장터를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이미 파장이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려 했건만, 완전히 비어 있는 장마당은 마음을 싱숭케한다. 한 바퀴를 크게 둘러보아도, 화개면은 둘러볼 것이 마땅치 않았다. 계곡 깊은 곳 안쪽에는 쌍계사가 있겠는데, 이 동네에는 도로변에 인도가 없어 도보로는 무리였다. 조그마한 상가동을 벗어남과 동시에 인도가 끊긴다.


      대충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식사를 청했지만 죄다 장사를 마쳤단다. 5번째 식당에서 겨우 보리 비빔밥이나마 주문했다. 꽁보리밥에 무청과 고추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8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시장을 반찬으로 잘도 먹었다. 게스트하우스까지의 거리는 화개면에서 그리 멀지 않건만, 인도가 없는 주 도로라 위험했다. 사장님께서 픽업을 와주신다. ‘후니 게스트하우스’는 화개에 가깝지만 구례에 속하는, 인근 부대시설이 하나 없는 수상한 위치의, 수상한 외장을 한 수상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뭐랄까, 지방에서 폐업해 버려진 모텔의 외형인데, 그래도 완전히 버려진 것은 아닌지 거미줄도 없고 외벽에는 녹과 이끼 없이 말끔한, 아무튼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있는 듯했다.

       


       

       

      허나 외형에 비해 내부는 깔끔하였고, 무엇보다 로비가 잘 되어 있어 만족했다. 여행마다 기어이 노트북을 꾸역꾸역 챙겨가는 나로서는 그걸 쓸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절실하게 마련인데, 낮에야 한산한 카페에서 글이나 끼적이면 된다지만 저녁에는 수가 없다. 더구나 대중교통이 일찍 끊기고 상점이 일찍 문을 닫는, 적막강산 같은 이런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대치 않은 행운에 기분을 내니라고 버드와이저 세 병을 까 잡수고 첫날은 글이나 열심히 써댄 뒤 잠에 들었다. 첫째 날, 끝.



       

       

      이튿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일찍 나왔다. 사실 담배를 피니라고 일찍 깨는 습관 덕에, 기왕 나오는 것 노트북을 챙기고 아침 작업을 나왔는데, 차창 바깥엔 섬진강이 가차이 있었고, 그 위에 강 안개가 잔뜩 피어 있었다. 온천 증기처럼 강의 수변으로부터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그리고 연기처럼 퍼져 나가는 듯한 풍경이다. 대운이었다. 토스트를 구워서 느긋하게 아침 작업을 했다. 정확히 무엇을 했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무어든 작업하는 순간이다. 일기를 쓰건, 에세이를 쓰건, 책을 읽건 했을 것이다.


      주인 아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화개 터미널에 픽업으로 내렸다. 이 권역엔 카카오맵 길 찾기에도 버스의 실시간 위치 정보는커녕 참고할 만한 도착 예정 시간도 없다. 화개 터미널에 누군가 유성 매직으로 손수 적어둔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악양 가는 버스는 40분 후였다. 4인석 의자 4개나마 있는 자그마한 간이 터미널에서 노트북을 펼치긴 민망스러워, 토지를 읽는다. 인적은 드물었고, 섬진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매직으로 적어둔 버스 시간은 맞지 않게 마련이건만, 막상 제 시간을 넘겨도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조바심을 일게 한다. 수시로 실시간 도착 일정을 확인하던 습관 탓에 핸드폰을 부질없이 꺼내보았다. 버스는 8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승객은 없다. 산업도로를 지나 악양면 초입에서 내렸다. 최참판댁 정류장 한 정거장 앞서 내렸다. 마을 초입인 그곳에는 동정호 너머로 논마지기 한 가운데 부부송이 자리해 있다. 논 마지기는 꽤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악양 평야이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그리 넓은 지대는 아닌 듯싶었다만, 막상 눈앞에 펼쳐진 논은 꽤 탁 트였다. 열 손가락 빙 둘러 펼친 듯, 지리산 골짝이 군데군데 파여 있고 악양면도 그 골짝의 하나였으므로, 넓지도 좁지도 않은 평야의 양편으로는 산이 두르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으므로 골짜기 양 편의 산 허리춤엔 비구름이 낮게 깔렸다. 그 오른편에 섬진강이 흐르고, 산안개가 섬진강을 반쯤 가려두어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정호를 한 바퀴 돌고 최참판댁으로 발길을 옮겼다. 드라마 세트장으로써 만들어진 것을 이제엔 여행지로 활용하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의 초가집을 지나, 참판댁을 한 바퀴 둘렀다. 참판댁 앞에는 커다란 나무 아래 최치수를 본뜬 동상이 책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내가 생각한 최치수보다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내 뇌리 속의 최치수도 이 동상과 같이 키 작고 성마른 사내였으나, 그 눈빛에 회의와 냉랭함과 잔인한 익살이 뒤섞이어 있어 보다 피폐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참판댁은 생각보다 넓진 않았다. 최치수의 사랑에는 풍경이 하나 걸리어 있는데, 사방의 비안개를 배경으로 오뚝하니 걸린 풍경이 아스라한 운치를 품었다. 참판댁 구경까지 끝나곤 바로 옆의 박경리 문학관에 들어섰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생각할 거리가 충분했다. 본의 아니게 책의 결론 부분까지 전부 스포당했지만, 장편소설은 그 내용을 알고 본들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싶다. 서사와 줄거리를 알기 위해 읽는 것도, 그로부터 유의미한 주제 의식을 도출하려는 게 아니라, 그 장대한 서사를 이루는 면면의 인물들과 그들의 생생한 삶을 구경하는 것, 달리 말해 인물과 서사의 세계 자체를 체험하는 것이 주목적인 까닭이다. 한 권 안에 완결되는 책이라면 그 범위 내에서 반드시 유의미한 결론을 제시해야겠으나, 장편소설은 굳이 주제문을 집약하여 제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경리 문학관 마당에는 조형물 옆에 선생의 작가론을 조각조각 배치해 두었다. 생각이 많아지나, 여기 옮기자니 수반될 맥락이 길어 생략한다. 게서 악양 평야를 더 눈에 담아두곤 지도를 켰다. 최참판댁과 악양 평야를 본 것으로 여정의 본 목적은 완수했으므로, 이 이상 딱히 정처가 없었으므로 어디를 가볼거나 하다간 악양면의 더 깊은 곳, 악양면사무소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쪽엔 무엇이 있으려나 하는 심심한 궁금증.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우산을 써본들 바지를 다 가릴 수는 없고, 울러맨 배낭 등으로는 땀이 푹숙 젖었다. 덥고 습했으며, 머리카락이 물 머금은 미역처럼 흘러내렸다. 그렇게 참판댁 세트장을 벗어나려는데, 주막이 잠깐 발길을 잡았다.


      주막은 초가를 빙 두르고 가운데에 지붕 있는 평상을 배치했다. 입구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다. 평야가 바로 보이는 자리엔 삼삼오오 일행들이 자리해 있어서, 혼자 여행하는 처지에 굳이 그 사이를 비집고 싶진 않았다. 비 피하기 적당한 곳에 가방을 벗고, 소고기국밥을 하나 시켰다. 식사를 기다리며 처마를 때리는 빗발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거세지고 있다. 볏짚에 모여 떨어지는 물방울이 굵지다. 비 구경을 하다간, 재채기처럼 느닷없이 막걸리를 시켰다. 꽤 행복해졌다.


      여행과 고생을 유의어 관계로 생각한다. 도보 백패커인 이상, 집을 나서는 순간 고생길이고 그 와중에 노트북까지 챙긴 등짐은 더욱 무겁다. 그럼에도 기어이 집 바깥으로 노트북을 가져오는 마음은 무어랴. 비 같은 땀을 흘리고, 적당한 경치를 앞에 둔 채 다리쉼을 겸하여 작업하는 것이 더없는 행복인 까닭이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집에서 떠오르지 않던 글귀들이, 낯선 공간에 일러 우수수 낙엽처럼 쏟아지는 감각이란 쾌활할뿐더러 도취감마저 느껴진다. 마치 이 글처럼, 딱히 애쓸 필요 없이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이 와락 쏟아지는 것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다리쉼을 마치고, 악양면사무소로 걸었다. 큰길을 이루는 본 도로에는 여전히 인도가 없었으므로, 과수원 길을 따라 걸었다. 면사무소까지는 3km라 그리 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짐을 지고 우산을 쓴 채로 걸으니 걸음이 더뎠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이따금 지나치는 차량뿐이었다. 텅 빈 동네를 거니는 동안 담배를 뻑뻑 태우며 꽤 걸었다. 면사무소 근처, 매암차 박물관에서 갑작스레 발을 멈추었다. 차밭 곁에 한옥을 지어두어 카페 장사를 하는 곳인데 비를 피하고 다리 쉼을 하며, 키 낮은 차밭을 바라보며, 토지를 다시 폈다. 읽고 있는 게 어느 지점이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책의 인물들을 막 눈에 넣은 악양 평야 위에 비치했고, 흰 무명 적삼의 바짓가랑이를 걷은 농부들이 비를 맞으며 논을 매는 상상에 조금 빠져들었다. 그러다간 깜빡 졸았다.


      여행이 좋은 것은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거나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마다,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또 걸어가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야 할 곳이 있을 때, 그 방향을 향해 오래 걸어가는 일은 행복하다. 그러므로 가야 할 곳을 정해두고, 그 중간중간 다리쉼을 하며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싫증이 나면 또 걷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내 여행의 과정인 동시에 그 자체로 목적이다.


      차 박물관에서 한 잔 찻값으로 과분할 정도로 쉬었으나, 비는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졌다. 크레셴도 세기로 조금씩 빗줄기를 더하길래, 읽던 책이 눈 바깥으로 퉁겨 나가자마자 다시 가방을 둘러멨다. 근처에는 화사별서가 있는데, 이곳이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라고 전해진다. 그리로 가는 길에 비는 소나기로 바뀌었다. 소나기도 아니고, 아예 스콜처럼 퍼부였다. 무릎 아래 바지가 폭삭 젖고, 신발에는 아주 물이 찼다. 그러나 화사별서는 공사를 하니라고 문을 굳게 잠가두었다. 허탈함과 오기와 아드레날린이 뒤섞여서, 그 앞에서 크게 웃었다. 내 꼴이 해학적 의미에서 우스워졌다. 여행과 고생이 유의어 관계이므로, 개고생을 겪는 만큼 여행은 좋게 되고 있음을 뜻한다. 돈으로는 차마 못 사겠어서, 굳이 여행길 위에서만 살 수 있는 고생은 어떤 의미에선 분명 희소하다.

       


       

       

      악양면사무소 일대를 다 돌고, 화개로 복귀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40분 후에나 온다길래, 근처 편의점에서 무알콜 맥주를 2캔 사서 편의점 의자에 앉아 홀짝였다. 캔이 다 비어버린 후에도 시원한 편의점에 앉아 있고 싶었지만, 눈 깜빡이는 새 버스를 놓칠까 정류장에서 망보듯 서 있었다. 버스가 언제 올런가, 이미 하체는 비로 상체는 땀으로 죄다 젖었다. 이번엔 도착 예정 시간보다 5분 빨리 버스가 도착했다, 보이지 않는 멀리서부터 버스 엔진 소리가 우렁찬 것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번 기사님은 거친 운전자이려니 했다.


      이튿날 숙소는 구례에 마련해 두었으나, 행정구역상 악양과 화개는 경남 하동으로, 구례는 전남으로 나뉘어 있어 악양에서 구례로 곧 지르는 버스가 없었다. 하여 악양에서 화개로 넘어간 뒤, 접경지인 화개에서 다시 구례로 넘어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배차가 기니 기다리는 시간도 제법 길었다. 터미널 근처에 코인 빨래방이 있어 빨래가 간절했지만, 30분 안에 건조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빨래 기술은 아직 보급되지 않아 아쉬웠다. 그렇다고 빨래를 하니라 버스를 보내자니, 다음 버스는 2시간 뒤에 있었다. 애매하게 뜨는 시간에는 책을 읽었고,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구례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땀에 절은 몸뚱아리 위에 뜨신 물부터 부어주었다. 샤워를 마치곤 침대 위에 짐을 부려보았다. 여행 때 옷을 부족하게 챙겨오는 편은 아니었으나, 여름 여행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티셔츠 한 두 장을 더 챙겨올 걸 아쉬웠다. 한 번 입은 옷은 땀에 절어 나가리요, 하나 남은 옷도 이미 가방 속에서 비에 푹숙 젖었다. 그나마 노트북엔 옷들이 대신 막아주어 비가 스민 흔적은 없었지만, 등에서 솟아나는 땀까지 피할 길은 없었던 것 같다. 노트북을 꺼내어 말리고, 가방을 비운 뒤, 가방엔 옷가지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코인 빨래방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고 시간은 19시 반 쯤, 식당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구보로 코인 빨래방으로 가, 빨래통에 옷가지를, 신발 빨래통에 신발을 넣고, 슬리퍼 채로 식당을 찾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식당이 죄다 빨리 닫아서 저녁 식사가 귀찮았다. 지도 앱의 영업시간은 믿을 게 못되었고,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구례읍내이건만 식당이 많지 않은 탓, 근처 세 군데의 간판이 꺼진 것을 확인하니 조급증이 치밀었다. 식도락에 뜻이 없음에도, 종일 비와 더위에 시달린 그날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떼우고 싶지 않았다. 영혼이 허기졌다. 10분 거리의 국밥집에 전화를 걸어서, 5분 안에 가겠다고 뻥을 쳤다. 막 마감을 하려던 참이었는지 주인장 목소리가 떨떠름하다. 또다시 구보로 식당까지 뛰었고, 그렇게 겨우 국밥이나마 한 그릇 할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는 빨래방에 돌아와 건조기를 돌리며, 또다시 토지를 펼쳤다.


      빨래 건조를 마친 뒤, 아직 뜨거운 빨래 더미에 손을 쑥 디밀어, 잠시 얼굴을 부비었다. 조금 피곤했던가 보다. 건조가 다 된 직후 빨래에서 나는 향기가 달콤하였다. 코인 빨래방은 언제나 동전이 애매하게 남도록 설계된 까닭에, 남는 동전을 전부 바운스에 투자한 나의 빨래 더미에선 달콤함이 세 배였다. 가방에 차곡차곡 개어 넣고 돌아가려던 찰나, 갑자기 팥빙수가 먹고 싶어져 근처 카페에 얼굴을 디밀었다. 1시간 남짓 영업한다길래 노트북을 펼쳤다. 다만, 고대한 빙수는 얼음이 아드득까드득 씹히는 옛날 팥빙수라 내심 아쉬웠다. 눈꽃빙수일 줄 알았지, 당연히.

       


       

       

      숙소에 복귀하니 22시였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싱글 베드가 3개 있었는데, 가편 2개에는 이미 임자가 있었고 내가 중간의 끼인 자리였다. 장비가 많은 것으로 봐선 반드시 아저씨일 줄로 알았는데, 돌아온 숙소에는 예상 그대로 아저씨 둘이 쉬고 있었다. 간단한 잡담을 나누곤 23시에 취침하려 했으나, 아저씨들의 코골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귀마개로는 조금도 막히지 않았다. 이 아저씨들은 트라이애슬론 대회를 위해 내려왔다고 들었는데, 피로가 얼만한지 코골이에 마치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다. 새벽 2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우다간, 화딱지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잠은 아주 달아난지라, 늦은 잠이나마 청하기 위해 1층 편의점에서 야식과 술을 사 왔다.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도시락에 과실주 한 병을 다 비우곤 공용공간 소파에서 잠을 청했고,  이튿날 어느 아저씨의 핀잔으로 잠에서 깼다. 공용공간에서 이렇게 퍼질러 자면 민폐라며 볼이 잔뜩 불거져 있는데, 사정을 말해본들 귀찮은 말추렴이나 될 뿐 하등 의미 없는 짓이다. 둘째 날이 끝났다.


       *


      숙소에 대한 기억은 엉망이었다. 덕분에 짐을 일찍 챙겨서 구례 터미널로 걸어간다. 마지막인 셋째 날은 화엄사를 갔다 오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계획한다. 여행 시작 전에 계획을 짜기보다는, 가급적 여행 중간중간에 계획을 짜는 편이기에 화엄사 일정은 전날 뜬금없이 잡은 동선이었다. 달리 갈 데도 없고, 그 외에는 도보로 가기에 부담스러운 곳뿐이었다. 토지 속 인물인 길상이와 우관선사가 있던 곳인 연곡사에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도상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깔끔하게 단념한다. 골짜기 깊은 곳에 있어서 잘못 들어갔다간 돌아 나올 방도가 마뜩잖아 뵌다. 아마 콜택시를 불러도 아니 오지 싶다.

       


       

       

      비는 그쳤다. 도보 여행을 자주 가면서 느끼는 건데, 아무래도 마가 낀 건지 여행에 7할이 우천을 동반하고, 그보다 어이없는 건 반드시 복귀 날에 갠다는 점이다. 대합실에서 화엄사 행 버스를 기다리며 바깥 구경을 했다. 구름이 아직 서려 있지만, 곧 개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점 출발 버스인지라, 출발 15분 전에 기사님은 문을 열어둔 채 자리를 비웠다. 토지는 이미 읽을 만큼 읽었고, 내내 걸어 다닌 만큼 이쯤 되면 자연스레 멍- 해지곤 한다. 자연스러운 명정 상태랄까. 생각이 잘 비워지지 않는 나로서는, 이 상태가 극히 낯설다마는, 낯설다는 생각조차도 그 순간엔 토씨 하나 들지 않는 것이 신기스럽다. 머리에 가득 차 있던 활자들이 뻥 비어 있고, 인지는 잠에 드니 오직 감각의 문만이 열린 듯한 느낌. 구름이 바로 보이는 쪽 차창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구름만 치어다 봤다.


      눈높이에 걸린 바깥 풍경은 대단할 게 없다지만, 멀리 지리산 자락에 아직도 구름이 낮게 끼어 있다. 대한민국 7할이 산이라던데, 고향집 뒤로도 병풍 같은 팔공산이 친숙하기로서니 산에 대단히 감명 깊게 여길 만한 게 무엇이나마 남았겠느냐만, 지리산에 눈이 탁 걸리었다. 어딘가 모르게 눈길을 끌지만 설명할 방도가 달리 없었다. 버스가 종점인 화엄사 주차장에 멈췄고, 내리자마자, 그리고 애초 버스를 타기 전부터 확인해두는 것은 복귀 버스 시간이다. 이 권역에는 도착 예상 시간이 뜨지 않으니, 자칫 잘못하면 간발의 차이로 1시간 기다리기 일쑤인 까닭에, 어딜 가나 버스 시간표부터 확인하는 불안의 습관이 뒤따르는 것도 당연하겠다. 배낭을 멘 채 화엄사 입구 주차장으로부터 한참을 걸었다.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지만, 언덕배기를 1시간가량 오르니, 또 온몸이 땀에 다 젖어버렸다. 이쯤 되면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는다. 푹 젖은 땀을 핑계로, 화엄사 입구의 한옥 카페 차창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꺼냈다. 빙수를 시키곤 조마조마했는데, 눈꽃빙수라 흡족하였다. 화엄사를 바라보는 방향의 2층 차창 너머로, 긴긴 지리산 자락 한 끄트머리쯤에 자리한 화엄사와, 그 너머 지리산 등성이를 멍하니 치어다 보았다.

       




      화엄사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지 자세히 쓸 게 없다. 귀에 익은 절이니만큼 보기에 웅장하고 과연 와볼 만하였다는 정도의 감상만이 있을 뿐, 1차원적 감각을 제하곤 이야깃거리가 없는 까닭이요, 그런 것까지 세세히 풀기에 일지가 이미 포화 상태인 딴에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한다. 화엄사에서 내려와, 또 30분간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고, 구례읍 내에서 밥을 먹고, 4시간 남은 시간을 무엇 하며 죽일까 잠깐 생각했다. 땀에 전 채 버스 타기가 싫여, 그보다 온몸에 체열이 가득 차오른지라 푹푹 꺼지는 몸뚱어리가 성가셨으므로 사우나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부터 온탕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몸이 가득 익어 있었더마는, 이녁의 냉탕은 5분도 채 못 버틸 정도로 추워서 심히 뜨악했다. 체열이 많아 지금껏 어느 목욕탕엔들 냉탕 안에 거의 살다시피 해왔는데, 작정하면 물 온도를 이 지경으로까지 낮출 수가 있었던 것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놀랐다.


      여행 배낭엔 항상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곤 한다, 깔끔한 옷가지와 빨랫거리를 격리해 주어야 하므로. 화엄사 갈 때 입어 절어버린 옷가지는 비닐에 넣어 꽁꽁 묶었고, 나머지 옷가지에선 전날 바운스 3개로 잡아 돌린 덕에 아직 은은한 향기가 감돌아 푸근했다. 새 옷을 입고 몸가짐이 다시 산뜻해졌다. 남은 두어 시간은 카페에서 죽이기로 한다. 구례 읍내를 가로지르는 백연천에 바로 붙은 카페 ‘구례가’에 자리 잡았다. 구례읍 곁으로는 섬진강 큰 줄기가 크게 휘감아 돌지만, 정작 읍내에도 자그마한 백연천이 있어 수변 경치가 앙증맞다. 카페에도 역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여행은 사람 구경이 참 귀했거나 싶어지다. 마지막 날까지도 사람이 없다니. 덕분에 바깥이 보이는 차창에 바싹 붙어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쯤 해가 완연히 떠올라, 산에 끼인 구름 하며 산안개는 자취도 없이 개이고, 세상이 말짱 환해져 있었다. 아쉬움인지, 분함인지 분간치 못할 애매하고도 짭찌름한 감상이 일었다.


      카페에서 간단하게 사진을 정리하고, 노션으로 여행일지 시각화 작업을 마무리한다. 독서 모임 친구들에게 보내줄 요량이므로 간략하게 작성키로 한다. 이 일지는 누군가 읽기엔 심히 번거로운 것이므로 나중에 해두마- 스스로 다짐해 놓고는 어언 2달이 지나서나 마무리하게 되는구나. 심지어 토지 답사 2회차가 끝나고도 시간이 더 지나 마무리했으니 늦기도 한참 늦었다마는, 그럼에도 기억이 소상한 것이 기이하다면 기이하겠다. 복귀 시간이 다가왔다. 프리미엄 버스의 리클라이너를 뒤로 쭉 늘이고, 차창을 가린 커튼을 치운 뒤 맑게 갠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세상의 색채감과 채도가 유달리 선명해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차창 바깥의 지리산 자락이 훤하여 몹시 아쉬웠다만, 아쉬울 거리를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못내 좋았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찾겠지. 실지로 두 달이 못 되어 다시 찾았다. 이는 일지 2편의 몫으로 넘기자.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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