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나고 하나같이 군기가 빠진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들은 영화를 틀어주곤 하셨다. 공포영화를 제대로 봤던 게 그때가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옆자리 짝꿍과 담요를 나눠 덮고 벌벌 떨면서도 내심 기대를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담요를 치우고 오목이나 두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끔찍한 악령의 저주가... 기이한 초자연적 현상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마도 문화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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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최근에 다시 공포영화를 찾게 됐다. 공교롭게도 재밌다고 입소문을 타는 것들이 전부 호러물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하면서 자신만만했었다. 웬만한 귀신은 나에게 감명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객석으로 들어섰고... 팝콘을 먹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는 공포영화가 주는 자극에 약간 중독된 것 같다. 심지어 자체적으로 십 년의 텀을 두어서 그런가. 요즈음의 공포물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백룸〉, 〈옵세션〉, 〈레위기〉 전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미지'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익숙함'을 비틀어서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물론 이 기법 자체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포영화가 오랫동안 활용해 온 핵심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무려 1980년대에 개봉한 〈샤이닝〉에서는 익숙한 호텔 복도와 객실에서 사람을 전부 치워서 위화감을 만들었다. 2019년에 나온 〈비바리움〉에서는 평범한 주택들이 끝없이 반복되며 안락해야 하는 공간이 감옥이 되었다. 그보다 1년 전에 나온 〈유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 안전한 울타리로 여겨져야 하는 가족이 공포의 근원이 된다. 그러니 최근의 흐름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익숙함의 변주뿐만은 아니다.
이러한 문법을 동시대의 감독들이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조직하는가.
바로 그 지점에 집중하면 흥미로운 요소들이 관찰된다.
백룸, 익숙한 공간의 균열
백룸은 완전히 낯선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비슷한 형광등이 설치된 사무실이나, 학생들이 하교하고 텅 빈 복도, 사람이 빠져나간 쇼핑몰을 이미 경험해 봤다. 하지만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여지없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방
어딘가로 연결된 복도
길을 따라가면 도착하는 출구
그런데 이런 질서들이 백룸에서는 전부 제거된다.
데스크와 의자가 있는데 직장인은 없다. 더러워진 세탁물들과 세탁기는 있는데 정작 그곳을 이용하는 고객은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진 장소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점점 불안함이 올라오며 출구를 찾아보지만 공간이 끝없이 이어진다. '복도'는 분명 다른 방으로의 이동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백룸에서는 복도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동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러한 자극이 없는 상황 자체도 공포다. 무언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감독인 '케인 파슨스'는 2022년부터 이러한 백룸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영상화해 왔다. 당시 고작 16세였던 그는 유튜브에 단편 영상 《The Backooms (Found Footage)》를 공개했다. 대단한 효과나 현란한 연출이 들어간 영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캠코더 특유의 화질과 저예산의 3D 그래픽이 오히려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몰입한 구독자들은 이런저런 설정을 덧붙였다. 그러면 감독이 이를 다시 재현하며 백룸의 세계관이 점점 확장되기도 했다.
2026년에 와서는 배급사 A24의 제안으로 장편영화 〈백룸〉까지 제작되었다. 익숙한 공간과 질서의 부재가 오늘날의 인터넷 문화 속에서 공포의 재료로 쓰였다. 자세히 알아볼수록 소재와 과정이 모두 흥미로웠던 영화다.
옵세션, 친밀함의 공포화
공간을 소재로 하던 〈백룸〉과는 달리 '사람'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 누구보다 사랑스럽던 여자 친구가 점점 악마처럼 변해간다.
연인 사이의 애정 표현과 소유욕, 상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보통 친밀함의 증거로 인식된다. 적당한 질투는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영화에서도 초반의 '니키'는 그저 집착이 조금 있는 여자친구로 보인다. 직장에 가지 말고 자신과 놀자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아무렇지 않게 팝콘을 먹는다. 결국은 붙잡고 있던 '베어'의 팔을 놓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현관문 앞에 멈춰 섰을 때, 관객들도 저작 활동을 멈춘다.
문에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기괴한 광경을 바라보며 통제력을 잃은 사랑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보게 된다. 기존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조건들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사랑하는 이와 가까울 수록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사고방식
강렬한 애정 표현이 진실한 사랑의 증거라는 생각
특별히 유별난 내용들이 아니다. 그런데 〈옵세션〉에서는 바로 그 익숙한 관념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며, 자유의지가 사라진 사랑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를 보여준다.
레위기, 믿음을 부수는 신념 (스포일러 포함)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호주의 외딴 마을, 소년들의 동성애는 죄악이 된다. 비밀스러운 감정을 들킨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 끌려와서 '구원 치유 의식'을 당한다. 이후로 그들이 혼자 있을 때마다 폭력적인 괴물이 나타나게 된다. 심지어 그 괴물은 영악하고 교묘하기까지 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다. 곧장 도망치지도 못하게.
하지만 '나임'과 '라이언'은 억압과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한다. 애정이 더욱 커지며 친밀한 스킨십도 나누게 된다. 손을 맞잡고 입을 맞추거나, 귀를 장난스럽게 깨물기도 한다. 서로가 점점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가까운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괴물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평화로운 쉬는 시간, 라이언이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에서 뛰쳐나온다. 몰려든 학생들 사이에 나임도 있었다. 얼어붙어 있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닫게 된다. 라이언의 뜯어 발겨진 귀와 철철 흐르는 피,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섞인 두려움을 보며, 그가 화장실에서 누구를 마주쳤는지를 눈치챈다.
〈옵세션〉과 마찬가지로 사랑이 공포의 도구로 쓰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작은 반전이 더 소름 끼쳤다. 어른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며, 부모는 자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다뤄야 한다.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이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상식에 '종교'라는 변수가 등장하며 균열이 일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익숙함이 틀어지며 일어나는 근원적 공포이므로, 이 부분을 더욱 집중해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래도 소재 자체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영화였다.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건조하고 서늘한 색감을 사용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폐공장이나 사람이 빠진 수영장, 한적한 아이스링크장에 덩그러니 놓인 포토 부스, 시골 마을의 초원. 그리고 이 장소들을 낡은 자전거 두 대로 가로지르는 소년들의 모습은 시각적으로 인상 깊었다.
익숙함은 곧 공포가 된다
케인 파슨스(Kane Parsons)는 익숙한 공간에 균열을 일으켰고, 커리 바커(Curry Barker)는 연인 간의 친밀함을 무기로 휘둘렀다. 그리고 아드리안 키라렐라(Adrian Chiarella)는 사랑하는 대상 자체를 공포로 규정하며 종교적 소재를 함께 다뤘다. 비슷한 시기에 이들이 모두 '익숙함'을 기반으로 저마다의 공포를 선보였다는 점이 몹시나 흥미롭다.
2026년 10월 기준, 〈백룸〉은 HBO Max나 티빙(TVING)에서 시청할 수 있고, 〈옵세션〉은 Apple TV와 웨이브, 왓챠에서 스트리밍 중이다. 그리고 〈레위기〉는 지난 10월 21일에 개봉하여 한창 상영 중이다. 최근 영화계에서 공포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가한 휴일에 극장가를 찾아가도 좋겠다. 단조로운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