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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열두 밤의 미술관

by 박형주 에디터
2026.10.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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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밤의미술관_표1.jpg

       

       

      이지안 도슨트와 함께하는

      벨 에포크 명화 산책


      19세기 말 유럽의 '벨 에포크',

      그 아름다운 시절.

      숨은 욕망과 결핍을 그려낸 열두 화가를 읽다.

       

       

      낮의 미술관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대표작을 확인하고 서둘러 다음 전시실로 향하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관람객이 모두 떠나고 조명이 낮아진 밤의 미술관에서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진다. "빛이 사라지고 소리가 잦아든 전시장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그림이 가까워"지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화가의 삶이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그림을 바라보던 사람은 문득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50만 관객을 모은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展)'를 비롯해 굵직한 전시의 해설을 맡아 온 미술치료사 이지안 도슨트는 이 은밀한 시간을 소수의 관람객과 나누어왔다. 교보문고 컬처라운지와 함께해온 강연 '미드나잇 살롱'은 관람객이 떠난 미술관에서 한 화가의 생을 따라가는 프라이빗 전시 해설로, 매회 매진과 앙코르 요청이 이어지며 화제를 모았다. [열두 밤의 미술관]은 그 밤의 미술관을 한 권에 옮긴 책이다. 모두가 잠든 밤 열두 시, 문 닫힌 미술관에 불이 켜지면 '가장 아름다운 시대'라 불린 벨 에포크에 살았던 열두 화가의 삶을 하룻밤에 하나씩 들여다본다. 그렇게 이어지는 열두 번의 밤 동안, 저자는 그들이 화려한 캔버스 뒤에 감춰 둔 불안과 결핍, 끝까지 놓지 않은 사랑을 들려준다. 그리고 강연을 마칠 때마다 그랬듯, 매 밤의 끝에서 독자에게 질문 하나를 건넨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눈부신 불빛 아래, 감춰진 얼굴을 그리다]에서는 볼디니와 클림트, 모딜리아니를, 2장 [불안한 새벽, 결핍을 건너는 화가의 고백]에서는 마리 로랑생과 고흐, 파울라 모더존-베커를 만난다. 3장 [연대의 예술, 파리의 밤을 밝힌 사람들]은 툴루즈-로트레크와 쉬잔 발라동, 알폰스 무하를, 4장 [마침내 사랑이 어둠을 껴안는 순간]은 모네와 함메르쇠이, 샤갈을 다룬다. 미술 사조나 기법을 몰라도 괜찮다. 한 사람의 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은 저절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미술치료사의 시선으로 읽는 벨 에포크, 화려한 빛 뒤에 숨은 화가들의 맨얼굴


       

      에펠탑이 파리의 하늘로 솟아오르고 증기기관차가 도시와 도시를 잇던 시절.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풍요로움이 휘감은 도시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지만 그만큼 내밀한 마음은 소란 속에 묻히기 쉬웠던 19세기 말 유럽의 '벨 에포크'는, 지금 이 시대의 모습을 꼭 닮았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릴 만큼 화려했던 벨 에포크 이면에는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상실에 절망하며 기나긴 밤을 외롭게 건너던 화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열두 밤의 미술관]에서 이지안 도슨트는 화가들의 삶을 따라가며 한 점의 그림이 어떤 마음에서 태어났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냈다. 미술치료사로서 병원에서 환자들과 그림을 나눠 온 경험을 바탕으로 화가의 기질과 상처를 살피는가 하면, 베테랑 도슨트로서 화가의 내면이 붓질의 형태와 색의 온도, 구도와 여백에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차분히 살펴본다. 화가가 어떤 상처를 안고 자랐는지, 누구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미워했고 또 누구의 곁에서 비로소 숨을 쉬었는지를 비롯해 사랑하는 이에게 받은 냉대와 이름의 무게, 사랑을 잃은 뒤의 긴 침묵에 귀를 기울이며 이 모든 순간이 어떻게 걸작으로 이어졌는지를 읽는다. 한 사람의 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이해하고 나면 같은 그림도 전혀 다른 감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화가의 생을 이해하는 눈은 어느새 나의 삶을 향한다. 그들의 상처를 너그럽게 바라보던 시선으로, 독자는 오래 외면해 온 자신의 상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다섯 명의 고흐, 모딜리아니의 눈동자, 클림트의 청회색… 걸작을 낳은 결핍과 사랑


       

      반 고흐가 태어나기 정확히 1년 전, 또 한 명의 빈센트가 세상을 떠났다. 사산된 형이었다.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는 생일마다 자신과 같은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바라보며 자랐다. 목회자였던 할아버지와 첫 일자리를 마련해 준 '구필 화랑'의 동업자 큰아버지도 빈센트였다. 평생 그 이름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의 무게와 빈자리를 안고 살았던 고흐는 생의 마지막 해,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은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그렸다. 다섯 번째 빈센트에게 건넨 그 꽃은, 상실로 시작된 이름이 마침내 피워 낸 사랑이었다.

       

      결핍이 사랑으로 피어난 순간은 다른 화가들의 캔버스에도 남아 있다. 가난과 폐결핵, 이방인의 고독 속에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오랫동안 초상화 속 인물의 눈동자를 비워 두었다. 그 텅 빈 눈에 처음 눈동자가 담긴 것은 잔 에뷔테른을 만난 뒤였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눈동자를 그리겠다"던 그의 말처럼, 비로소 채워진 눈동자에는 오랜 방랑 끝에 찾은 신뢰와 평온이 깃들어 있다.

       

      한 해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구스타프 클림트는 평생 죽음이라는 질문을 품고 살았다. 그는 1911년 로마 국제미술전에서 금메달을 받은 [죽음과 삶]의 찬란한 금빛 배경을 스스로 어두운 청회색으로 덮었다. 황금의 화가가 금빛을 지운 자리에는, 죽음이 지켜보는 곁에서도 서로를 단단히 끌어안은 사람들의 온기가 더 또렷하게 남았다.

       

      이 책은 우리가 걸작이라 부르는 그림이 실은 결핍과 상처를 끌어안은 손끝에서 피어났음을 보여준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아름다운 그들의 삶과 그림이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마음에 닿는다.




      150여 점의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나를 향한 열두 개의 질문


       

      열심히 달려왔는데 문득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때,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잊었을 때, 아무 일 없는 하루가 이상하게 공허할 때.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나를 멈춰 세우는 좋은 질문 하나다. [열두 밤의 미술관]의 모든 장은 각각 한 화가의 생에서 길어 올린 질문으로 끝난다. 나다움에 대해, 물려받은 상처에 대해, 끝내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누군가의 기대 속에서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여성이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이뿐'이라던 시대에 자기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파울라 모더존-베커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나요?" 지나온 날의 상처가 여전히 나를 붙잡을 때, 사산된 형의 이름을 물려받아 찬란한 아몬드 꽃으로 피워낸 고흐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품고 여기까지 왔나요? 기나긴 겨울을 지나 마주한 당신의 계절에는 어떤 꽃이 피어나고 있나요?" 더 높이 오르는 일에 지쳐 갈 때, 파리의 찬사를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무하는 묻는다. "모든 찬사가 사라진 뒤에도 당신 곁에 남아 있을 것은 무엇인가요?"

       

      그림은 답을 대신 내려 주지 않는다. 다만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니 삶이 막막한 밤, 이 미술관의 문을 열어보자. 열두 번째 밤이 지날 즈음, 막막하던 물음들 끝에 작지만 분명한 나만의 답 하나가 움트고 있을 것이다.

       

       

       

      이지안


       

      명화 속 심리를 읽는 미술심리해설가이자 관람객의 표정을 읽는 도슨트. 대학에서의 학문 연구와 강의, 병원에서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화가의 기질과 상처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현장에서는 관람객의 눈빛에 맞춰 이야기의 호흡을 고르는 '라이브 도슨트'로 알려져 있다. 50만 관객을 모은 예술의전당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展'을 비롯해, 마이아트뮤지엄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등 화제의 전시에서 해설을 맡았다. 그림 앞에 선 사람까지 헤아리는 그의 해설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었고, 교보문고 컬처라운지의 '미드나잇 살롱', '마음으로 가는 미술관' 강연은 매회 매진과 앙코르를 거듭하며 1위 강의에 올랐다.

       

      KBS1 라디오 [라디오 매거진 위크앤드]에서 '요즘 전시' 코너를 진행, SBS [세 개의 시선]에 출연하고 있으며 세종문화회관 '마티네 콘서트' 진행과 '치유의 미술관' 강연, 하나투어 '해외 미술관 아트 투어' 등을 통해 미술관 밖에서도 화가와 명화에 얽힌 숨은 이야기를 활발히 전하고 있다. 이밖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미술심리치료 도슨트로 활동하며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한양대학교와 CHA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겸임교수로 의류학과에서 문화심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공저), [교사긍정일력](큐레이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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