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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찬란한 탐험가의 초록색 뜨거움 [음악]

G=ONE, 솔직하고 서투른 소년의 음악

by 유예현 에디터
2026.10.2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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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올여름, 친구의 소개로 가사 번역 작업을 맡게 되었다. 의뢰인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실감이 나지 않는 직업이라 작업으로 만나는 것이 꽤나 낯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음악을 한다”고 하면, 그 말은 “하이닉스에 다닌다”는 말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가. 나는 그가 음악을 한다는 말을 어쩐지 한때의 철없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몇 년 후 소식을 물으면 “아, 걔 이제 정신 차렸어. 취업 준비하고 있대.”라는 말을 듣게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정규 앨범 가사의 번역을 의뢰했을 때도, 내게는 여전히 약간의 의심이 남아 있었다.


      “음악을 한다는 말이 진짜였다고?”


      우리는 혜화의 한 카페에서 만나 계약서를 쓰고, 앨범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약에 대해 설명하는 진지한 태도에 처음 놀랐고, 가져온 도장으로 능숙하게 날인하는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건들거리는 동생이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이 일을 건성으로 대했던 쪽은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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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NE, 두 번째 정규 앨범

       

       

       

      소년의 목소리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그가 하는 장르의 음악, 그러니까 ‘힙합’을 전혀 듣지 않고 잘 모른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나는 〈쇼미더머니〉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랩이라고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에 잠깐씩 나오는 ‘랩 파트’ 정도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앨범에 대한 음악적 통찰이나 진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가사를 번역하며 이 곡들이 전하는 말을 한 번 더 곱씹어 본 사람의 감상 정도로 생각해 주기를.


      내게 ‘가사가 좋은 음악’을 묻는다면, 오아시스(Oasis)의 〈Let There Be Love〉를 한 가지 예로 들 것이다.



      Who kicked a hole in the sky so the heavens would cry over me?
      누가 하늘에 구멍을 내어, 나를 위해 울게 했나
      Who stole the soul from the sun in a world come undone at the seams?
      온통 무너져 내리는 세상에서, 누가 태양의 영혼을 훔쳤나
      Let there be love
      사랑이 있기를
      Let there be love
      사랑이 있기를
       


      오아시스의 명성을 떠나서, 단지 이 노래의 이 가사만 두고 보았을 때, 나는 여기에 어떤 우아함(grace)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없이 가사만 읽어도 감동이 있지 않은가. 하늘에 구멍을 낸다는 표현이라든지, 하늘이 나를 위해 운다는 말이 그려 내는 풍경. ‘stole, soul, sun’으로 이어지는 짧은 ‘ㅅ’ 소리의 반복에서 느껴지는 만족감. ‘a world come undone at the seams’라는 말이 그려 내는 서서히,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세계 같은 것들. 이 짧은 몇 줄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처음 가사를 들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그에 비해 G=ONE의 가사는 투박하기 그지없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은유가 넘쳐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거창한 비유가 언제 있었냐는 듯 아무런 여과도 거치지 않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끝없는 ‘자기 이야기’의 연속이다. 이 아티스트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연민과 분노가 그대로 느껴지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과 위안 또한 투명하다. 이 사람의 음악은 안에서 터져나오는 것이구나, 자신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구나, 알 수 있다. 

       

      언젠가 블로그에 ‘소년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노래 몇 곡을 소개하는 글을 쓰려 한 적이 있다. 소개하려던 곡은 Royel Otis가 커버한 The Cranberries의 〈Linger〉와 Cavetown의 〈Boys Will Be Bugs〉였다. 나는 그 곡들의 가사나 목소리에 초록색 뜨거움이 서려 있다고 느꼈다. 파릇파릇한 반항심이라 해야 할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며 품는 불만조차 젊음의 징표로 느껴지게 하는 뜨거움 말이다. G=ONE 또한 그러한 '초록색 뜨거움'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래서 대부분 서툴고 가끔씩 낯간지럽더라도 밉지가 않다.

       

       

       

      습관성 우울


       

      〈습관성 우울2〉와 〈습관성 우울3〉은 각각 2022년과 2025년에 발매된 G=ONE의 정규 앨범이다. 〈습관성 우울2〉의 표지는 한겨울을 테마로 한다. 온통 흰색으로 채워진 표지의 상단에 살짝 드리워진 앙상한 나뭇가지 몇 개가 디자인의 전부다. 반면 〈습관성 우울3〉의 표지는 여름의 짙은 녹음을 연상케 하는 초록색 바탕에, 더 밝은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표지 가운데 위치한다.

       

      두 앨범의 가사를 모두 번역해야 했기에, 먼저 각 앨범을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들었다. 이후 번역 작업을 하면서는 앨범 구분 없이 작업 순서에 따라 곡들을 들었다. 그럼에도 첫 번째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의 곡들이 명확히 구분이 갔는데, 상반되는 분위기의 두 앨범의 표지처럼 곡들의 계절감이 달랐기 때문이다. 왠지 차갑고 건조한 겨울의 공기가, 그리고 축축하고 눅진한 여름의 공기가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같이 녹음된 것만 같았다.

       


      네게 낯선 이 서울 이 땅은 

      내 전용 리무진이 다녀 음음음 

      Tv속 예쁜 연예인들과 

      또 곧 그리 될 사람들이 모여 음음

      /

      땅끝 촌놈이 드디어 서울 왔네 

      방금 지난 곳 예능 프로 어디서 봤네 

      그래 이제는 매일 봐야해 빌딩 

      해남과 다른 도시의 매캐한 매연 내음

       

      04 땅, 서울, 낯선 - 〈습관성 우울2〉

       

       

      '땅끝마을 해남' 출신인 G=ONE의 음악에는 고향, 상경, 부모님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태어나서부터 쭉 경기도민으로 살아왔던 나는 '뿌리'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 '상경'이란 말을 성공하겠다는 다짐, 홀로서기, 오랜 꿈 등과 동일시 하는 어떤 꼬깃꼬깃한 마음 말이다. G=ONE의 안에는 그러한 뿌리가 아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당차게 쿵쿵대는 비트 속에서는 촌스러운 해남 소년의 호기로움, 가사 속에서는 그와 비교되는 춥고 외로운 첫 상경의 추억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G=ONE은 말한다. "여전히 낯선 이 서울 땅 / 내겐 창경궁과 이화동의 야경들이 날 위로해줘 / 꿈을 응원해줘 / 그래서 난 이 도시를 사랑해."

       


      사는게 두렵기만해 / 열심히 살았는데 다 소용없기만해

      이제 내 나이 스물이니 부모님 품을 / 떠나 내가 내 행동에 책임을

      어른이 된다는건 / 고개 숙인다는것과

      어린 내 마음 들켜서는 안 된다는거

      지레 겁먹더라도 / 눈 감고 부딪히는거야

      그래 동건아 맞아 / 나 강한척하는거야


      나도 기대고 싶은건 아는데 / 혼자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네게 진심을 다 주진 못해도 / 아자아자 화이팅

       

      네게 거는 마법이야

       

      08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 〈습관성 우울2〉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읊조리듯 쏟아내는 진심. 개인적으로는 〈습관성 우울2〉의 정서와 당시의 G=ONE을 가장 잘 포착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기보다는 자신과 친구들에게 바치는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별다른 장식이 없다. 목소리에도 꾸밈이 없다. 일부러 강하게 뱉지도, 멋을 부리지도 않는, 조금은 쭈뼛거리는 소년의 목소리다. 중간중간 실제 친구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비트를 타기를 멈춘 채 소심하게 “아자아자 파이팅”이라든지 “세웅아 군대 잘 갔다 와, 내가 네 앨범 준비해 놓을게”라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곡의 마지막에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녹음한 듯한 대목이 이어진다. “하나, 둘, 셋, 아자아자 파이팅!”이라고 함께 외치기로 한 것 같은데, 정작 친구들은 말이 없고 이내 모두의 웃음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니 확신이 선다. 습관성 우울 속에서도, 낯선 땅 서울에서도 소년은 아마 잘 지낼 것이다.

       


      어느새 잔뜩 쌓여버린 초록병만큼

      밖에 다 새버린 밤의 별

      일어나 눈 비비는 거리

      내 텅 빈 잔에 담겨진 나의 젊음이 느껴져


      어디든지 술잔에 쏟아지는 정

      난 그걸 바래 

      낭만이 가득했음 좋겠어

      숙취에 죽겠어

      날 좋은 날에 어때? 

      간만에 같이 한잔해 

      /

      안다 이거 딱 막잔

      달과 술잔이 저 산을 넘어간다

      X대로 된다 파도가 찰랑

      내 앞에 거대한 태산이 굽이친다


      나도 안다 인생은 막장

      연속극 드라마 아니겠냐고 또 한잔

      될 놈은 된다 바람이 살랑

      인생이 빛날 줄만 알았던 내 삶이 속아 넘어간다


      08 녹음중독 (綠飮中毒) - 〈습관성 우울3〉

       

       

      〈습관성 우울3〉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녹음중독〉이다. 이 노래만큼은 꼭 직접 들어 봤으면 좋겠다. 기타마저 얼큰하게 한잔한 듯한 소리로 시작되는 이 곡은, G=ONE이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초록색 병 속 찰랑이는 액체에 몸을 맡긴 듯, 온 세상이 느릿하게 흔들리는 기분에 아무 생각없이 리듬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사 곳곳의 재치 있는 라임은 그 속임수를 더 강력하게 한다. 특히 “안다 이거 딱 막잔”으로 시작하는 프리코러스에서는 말의 흐름과 음악의 리듬이 절묘하게 맞물려, 곡 전체가 “딱 한 잔만 더”라고 간청하는 듯하다.

       

       

       

      찬란한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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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관성 우울3 실물 앨범 수록 사진

       

       

      G=ONE은 스스로를 ‘찬란한 탐험가’라 칭한다. 그 이름을 보니 전에 읽었던 단편소설 〈자네 이름은 산초가 좋겠다〉가 떠오른다.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에서는 사람마다 모호한 이름의 ‘스킬’이 주어지는데, 돈키호테가 가진 것은 ‘별을 쫓는 광인’이다. 스킬 때문에 미친 것인지, 원래 미쳤는데 스킬 때문에 더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우리가 아는 돈키호테처럼 그 이름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다만 남들의 눈에 ‘광인’이 먼저 들어온다면, 정작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별을 쫓는’ 일이다. 비록 미쳐야만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G=ONE이 스스로에게 붙인 ‘찬란한 탐험가’라는 이름도 그와 비슷한 약속이자 능력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면서, 그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그 이름 속에서,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을 찬란하게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래도 그 삶을 응원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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