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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빨간 수화기 너머로 [사람]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한 숏폼 고백

by 유예현 에디터
2026.07.13 20:58

 

 

서울과 고양의 경계에서


 

지하철 3호선에는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는 구간이 있다. 서울시와 고양시의 경계에 놓인 7개의 역을 거치는 동안, 열차는 바다 깊은 곳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고래처럼 암흑에서 벗어난다. 특히 맑은 날이면, 고개를 들라 재촉하듯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릴스의 세계에서도 잠시 해방될 수 있다. 평일 오후 2시에서 3시쯤 이 구간을 지나게 되면 자연광을 직방으로 맞을 수 있는데, 열차 안에 듬성듬성 앉아계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햇빛을 맞고 있노라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원래의 삶에서 벗어난 타임라인으로 갈아탄 기분이랄까.


나는 이 구간에서 하늘을 보기도, 논밭을 멍하니 보기도 하고, 가끔은 명암이 짙어져 복잡해진 사람들의 얼굴을 훔쳐보기도 한다. 어느 때엔 누군가의 표정에 머무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그리곤 일종의 느슨한 연결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전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같은 열차 칸 안의 사람들이 아주 잠깐 내 안에 들어오기 때문인 것 같다. 햇빛을 같이 맞고 있는 우리가 서로를 평생 모를 것이란 사실이, 그리고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살아볼 수 없는 삶들이 나에게 밀려온다.


일상에서 이렇게 묘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문득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우리가 마치 아주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서슴없이 그의 아주 깊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고 싶어진다. 결국 이야기는 나눠지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던가. 어쩌면 이야기가 기다리는 것은 가장 가까운 이가 아닌, 가장 낯선 이 일지도 모른다.


뒤에 소개할 프로젝트는 낯선 당신의 귓가에 수많은 이야기를 배달한다. 궁금하다면 그 이야기들을 기꺼이 맞아주기를.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aview.fromabridge)


 


 

 

‘aview.fromabridge’는 3호선 지하철이 지상 구간으로 진입하기 직전, 우연히 마주한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라는 이름처럼, 계정에는 다리 위에 서서 빨간 유선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올라온다. 영국의 시각 예술가 조 블룸(Joe Bloom)은 런던의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여러 다리로 이어갔다. 전화를 설치한 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보겠느냐고 말을 건네고, 낯선 사람과 약 15~45분간 나눈 대화를 3분 남짓의 영상으로 기록한다. 묻고 답하는 형식의 영상을 취하는 대신, 그는 오직 인터뷰이의 말만으로 영상을 채운다. 하나의 통화가 독백으로, 고백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내가 처음 본 영상의 주인공은 젊은 사서였다.


“저는 5년 전부터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는 도서관이라는 곳, 그리고 도서관에 간다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보면 되게 급진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는 늘 돈을 쓰면서 살아가라는 말을 듣잖아요. 살아남으려면 노동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또 뭔가를 사야 하고요. 그런데 도서관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예외 같은 공간이에요. 사람들이 세금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그 돈이 다시 공동체를 위해 쓰이잖아요. 그 선순환이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한 곳이죠. 이제는 돈을 쓰지 않고도 편하게 갈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거의 없는데, 도서관은 그런 몇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풍경, 다른 다리 위에서 다른 사람이 똑같은 빨간색 수화기를 집어 든다.


“작년 엄마 생일 소원은 죽는 거였어요.”


“엄마는 2022년에, 쉰다섯 살의 나이에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의사는 운이 좋으면 1년 정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죠. 그런데 엄마는 무려 3년을 더 사셨어요. 엄마는 간호사이기도, 싱글맘이기도 한 동시에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집이 센 사람이었거든요.”


목소리는 단단하다.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이 뭉쳐져서 만들어낸 단단함 같다.


영상에는 화려한 컷과 편집, 다양한 각도의 촬영이 부재한다. 요즘의 숏폼으로 친다면 턱없이 긴 3분이라는 시간 동안 통화하는 사람의 상반신을 비추던 카메라는 천천히 멀어지고, 마지막에는 화자가 다리 위의 작은 실루엣으로 남는다. 우리의 시야 속에는 점차 더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다리 위의 하늘, 그 아래의 강, 도심 또는 자연의 풍경. 그러나 초점은 변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명확한 한 폭의 그림처럼, 시야에서 멀어지는 화자는 오히려 화면을 장악하는 듯하다. 화자가 풍경과 완전히 하나가 될 때쯤, 우리는 그를 떠나보내게 된다. 다시 일상의 리듬 속으로, 지하철 3호선이 7개의 역을 지나 어둠으로 복귀하는 것처럼.


 


빨간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상상해 보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음성, 당신에게는 낯선 언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은 이어진다. 때로는 목소리가 먹먹해지기도 하고, 말끝은 자주 흐려진다. 자세히 들어보면 웃음기가 느껴질 때도 있고, 대놓고 터진 웃음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루만져 본다. 가만한 숨소리와 정적마저도.


자, 풍경을 더해보자. 당신 앞에는 다리가 하나 있다. 다리 위에는 빨간 유선전화의 수화기를 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당신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당신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 사람은 엄마의 죽음과 번아웃, 가출 경험, 오랫동안 품어온 트라우마와 찬란했던 어린 시절, 겪어낸 전쟁, 그리고 아직도 미지수인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다시, 그 사람을 어루만져 본다.


영상을 끄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지하철을 타고, 길을 걷고, 이름 모를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방금 지나간 저 사람의 손에 소화기가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또 잠시 생각해 본다. 빨간 수화기 너머로, 당신은 무슨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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