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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그 '괴물'들은 왜 만들어졌는가? [문화 전반]

카프카로 읽고, 보스로 보는 그로테스크 미학

by 문경란 에디터
2026.07.12 14:10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살짝 들자 아치형의 각질로 뒤덮인 둥근 갈색 배가 보였다. 배의 불룩한 곳에 걸쳐 있던 이불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 「Die Verwandlung」, Franz Kafka 중

 

    

어느 누가 하루아침에 거대 바퀴벌레와 같이 변해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온몸이 갈색 각질로 뒤덮인 거대하고 육중한 형상을 내 몸에서 찾아보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기상천외한 몽상은 명작의 첫 문장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세계문화전집을 세다 보면 으레 발견하게 되는 저명한 고전 중 하나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변신」 (Die Verwandlung)의 서막이다.

 

위와 같이 해괴망측한 묘사나 기이한 형상의 괴물이 등장하는 '괴이 작품'은 과거에도 무수히 존재하였다. 미술과 문학을 막론하고 등장한 '괴물'들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는 오래전 그리스로마 신화에 빈번히 얼굴을 비췄던 메두사라던지, 미노타우로스, 켄타우로스 같은 이질적인 반인반수의 신체를 지닌 존재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저 활자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전이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기 이전부터 흥미롭게 접해왔지만, 딱히 어떤 장르와 개념으로, 어떻게 범주화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로 읽어내려왔다.


이러한 '괴이 작품'들의 교차점에서 학자들은 '그로테스크'를 발견하였다. '그로테스크'의 뜻을 단 하나로 명료히 정의하긴 쉽지 않다.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했으며, 15세기 말 로마 등지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 벽화 양식을 지칭하며 시작된 이 용어는, 18세기까지는 '기이함', '우스꽝스러움', '부자연스러움' 등 광범위하고 경멸적인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되어 왔다.


독일의 문예이론가, 볼프강 카이저(Wolfgang Kayser)의 저서,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Das Groteske: seine Gestaltung in Malerei und Dichtung)에서 그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정의에 새로운 특성을 덧씌운다.


 

"그로테스크는 생경해진 세계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하다. 동화의 세계를 외부에서 관찰할 때 우리는 그것을 생소하다고 하거나 익숙하지 않다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생경해진 세계는 아니다. 생경해진 세계란 우리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던 것이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세계가 어떤 변화를 거친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갑작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은 그로테스크의 본질적 특징이다."


- 「Das Groteske: seine Gestaltung in Malerei und Dichtung」, Wolfgang Kayser 중

 

 

그는 그로테스크가 '생경한' 세계가 아닌, '생경해진' 세계라고 언급하는데, 이 두 상태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생경한' 세계는 어떠한 과거의 서사나 형상을  동반하지 않지만, '생경해진 세계'는 과거의 '생경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전제되어야 설명이 가능해진다.

 

즉, 그레고리가 __스스로 생각하기에__ 평범한 외판원에서 기이하고 아주 생경한 형상의 벌레로 '변신'한 것과 같이, 그로테스크에는 '생경하지 않았던 역사'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여기서 언급하는 '생경함'이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편안하게 느끼던 일상적인 세계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낯설고 섬뜩하게 변해버리는 '익숙함의 배신'이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그로테스크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다."


- 「Das Groteske: seine Gestaltung in Malerei und Dichtung」, Wolfgang Kayser 중

 

 

우리는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이 포함한 '일상적이지 못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사건과 존재로 인해 이야기들이 그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같이 듣고자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로테스크의 원심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로부터 출발한다. 현실의 붕괴로 인해 찾아오는 괴이한 존재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히 유지될 것이라 굳게 믿어 왔던 세상의 질서와 상식 자체가 '허상'이었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살아 있는 현실 세계의 질서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삶 자체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그레고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가 괴기함을 포착하는 지점은 '아주 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있다.' 가 아니다. 평범한 외판원이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아주 큰 벌레로 변해버렸다.'는데 있다. 한 인간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삶'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가중된다.

 

한편, 작품이 주는 생소한 감각은 독자들이 책의 다음 페이지를 펼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한 장을 넘기면 그레고리가 눈 뜨고 보기 힘든 벌레로 변신 '당해'있고, 그 다음 한장을 넘기면 그의 가족들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다, 어느 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헛헛한 감정을 느낀다.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담담하다. 마치 변해버린 신체로 바닥을 기는 것과, 아침 7시마다 기차를 타고 매일같이 출근을 해 가족을 부양하던 '변신 이전'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그레고리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기도' 했다. 우리가 단순히 그의 신체의 변형에 초점을 두면 그는 명백히 변한 게 맞을 테지만, 그의 '정신' 그리고 '자아'가 어떠했는지를 보면 그 변화의 기준이 상당히 모호해진다. 카프카가 묘사한 그레고리는 하나의 '자아'를 유지하는, '자아의 단일성'을 표방한다. 그레고리, 그에게 있어 변화한 것들은 그의 '자아'가 아닌, 그 자아를 둘러싸고 있던 __외향, 입맛, 신체, 상황 등의__ 일부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반전되는 그의 삶과 세계는 '그렇다면 진정 존재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 자각하게 한다. 그 '허상'을 발견한 우리는 그저 그로테스크라는 '거울' 앞에 서 있다. 그 반사면이 비쳐 보이는 것은 사실 '괴물의 나라'가 아닌,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


언어가 그려낸 그로테스크가 있다면, 붓이 그려낸 그로테스크도 있다.

 

글을 닫기 전, 하나의 그림을 마저 보고자 한다.

 

 

보스 그로테스크.jpg

Atelier van Hieronymus Bosch, Triptiek met de bekoring van de heilige Antonius,

Koninklijke Musea voor Schone Kunsten van België. 직접 촬영.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기괴한 괴생물체들과 왜곡된 인간 군상. 작품은 현대까지도 신비로운 걸작으로 남아 있는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riptiek met de bekoring van de heilige Antonius)이다.

 

보스의 화면 속 괴물들은 단순히 악마를 묘사한 상상력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 생명체와 무생물이 뒤섞인 기이한 존재들은 현실의 질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계를 시각화한다. 성 안토니우스를 둘러싼 것은 '지옥'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현실 속으로 스며든 유혹과 공포다. 카프카가 평범한 외판원을 하루아침에 벌레로 만든 것처럼, 보스는 익숙한 세계 자체를 악몽으로 변모시킨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를 사용하지만, 모두 '현실이 더 이상 현실처럼 작동하지 않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그로테스크의 계보 위에 놓인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 온 물리적·도덕적 질서의 이면에는 이미 균열이 존재하고 있었다. 낯선 존재들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균열을 마주한다. 그로테스크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단순한 기괴함이나 혐오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이면을 드러내고, 우리가 믿어 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미학적 장치다. 그렇기에 보스의 지옥도, 카프카의 벌레도 결국 우리와 동떨어진 환상이 아니다. 괴물은 낯선 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지옥의 화면이 끝내 비추는 것은 괴물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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