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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별일 없는 날도 있어야 한다 - 2026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레퀴엠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공연이 있다지

by 장유진 에디터
2026.10.2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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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두고 왔다. 이런, 카메라를 두고 왔네. 그걸 오전 8시가 넘어서야 깨달았다. 하필 오늘은 공연이 있는 날인데, 어쩌나. 잠깐은 뭘 잘못한 사람마냥 화들짝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다. 그저 물건 하나를 두고 온 것뿐이다.


      잠시 놀랐던 정신은 금세 덜컹덜컹, 조용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나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 작은 일 하나에 매번 그렇게 놀랄 필요가 있겠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날도 있어야 한다.


      공연도 그렇다. 어쩜 그렇게 매일같이 감동하고, 실망할 수 있겠나. 때로는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대신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연도 있어야 한다. 늘 그렇듯 애써 별일 없이, 본디 별 탈 없이.


      오랜만에 객석 1층 L구역, 무대 왼편 7열에 앉았다. 평소에는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나 익숙한 1층의 다른 구역에서 공연을 보곤 했는데, 이날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무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리는 오히려 더 좋게 들렸다.


      원래 같았으면 이제는 반가워진 서울시향 단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느라 눈이 바빴을 것이다. 특히 나는 현악 파트 연주자들의 움직임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고, 연주자들의 모습도 대부분 옆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눈을 두는 곳도 달라졌다. 개별적인 움직임을 따라가기보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소리가 어떻게 모여드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오히려 연주자들의 움직임보다 소리가 모여 만들어진 웅덩이가 더 잘 보이더라.


      왼편에서 울리던 북소리까지 다른 악기들과 구별되어 또렷하게 들렸으니 말 다 했다. 각 악기 파트의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모여드는지 듣는 일도 재미있었다. 평소 옆모습만 보던 지휘자의 오른팔 너머로 펼쳐지는 연주 장면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무대도 무대, 객석도 객석.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딱 반씩 나눠 가질 수 있는 자리였다. 연주자들의 모습뿐 아니라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반응도 함께 둘러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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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해 보면 즐겨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내 마음 한편을 편안하게 만든다. 두 대의 피아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렇다. 그냥- 협연자가 등장하기까지의 서울시향을 내 곁 가까운 곳에 있는 익숙한 풍경처럼 여기는 일도 그렇다.


      두 대의 피아노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는 모난 구석이 없고, 티격대는 모양새도 없다. 예쁜 진주 구슬이 하나씩 굴러가는 것처럼 매끄럽다. 그 구슬 하나하나가 워낙 온순해서, 두 사람이 무대 위에서 악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마저 나도 모르게 잊게 된다. 분명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소리가 났다.


      모차르트를 들을 때면 내 안의 진폭이 크게 너풀-너풀거리거나 울렁-울렁대지 않는다. 만약 음악 안에서 내 일상에는 전혀 없는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면 생각보다 평면적인 이야기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오히려- 커다란 굴곡만 살피느라 발견하지 못했던 중간 지대의 대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그 안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오가고 있다. 그 음표의 세상을 기다랗게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마냥 느긋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홋차차! 흣차차! 서울시향 모터사이클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유센 형제의 손바닥 아래에서는 영롱하게 빛을 반사하는 진주 구슬이 도랑-도랑 굴러간다.


      내가 왜 또랑-또랑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선명하게 들리지만 지나치게 모서리를 세우지는 않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끝에는 늘 '포인'을 주고 있으면서도, 걷는 내내 입꼬리에는 미소를 싱긋 지어 보이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걷는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럼에도 다급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지닌 음색 때문이기도 할 테고, 연주하는 손을 제외하면 상체의 움직임이 많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차례 함께 무대에 오른 경험에서도 그런 여유를 엿볼 수 있겠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잠시 물러나고 형제 두 사람만 남았을 때는 서로의 잔향이 되기도 하고, 딱 맞춰 같은 순간이 되기도 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서로의 소리가 남긴 자리를 이어받다가도 같은 순간에 소리를 맞추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발박자를 맞추던 순간도 생각난다. 내게는 꼭 모차르트의 입장송처럼 들리는 대목이 있었다. 형제가 음표를 굴려 나가면 현악기 파트에서는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며 그들이 지나가는 길의 그림자가 되어 주었다.


      반듯, 반듯 걷는 건반 소리. 뒤편에서 예쁘게 소리를 끌어내는 현악 소리. 가만. 가만. 그렇게 편안함만 남겨 놓은 채 그 여정을 두리번.. 두리번.. 따라갈 수 있었다.


      별일 없이, 별 탈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후다닥 커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굳이 가뿐히 넘겨놓을 필요도 없는. 그러니까 진짜- 막 무리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느낌이 없어도 노래가 되는구나. 사실 그런 감각을 느끼려고 여기 오기도 했었지. 한참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


      되게 커진 호흡보다는 그냥 나누어 가지는 호흡을 음미할 수 있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을 만난 기분. 내가 알고 있던 소리의 기억이 눈앞에서 기분 좋게 펼쳐지고 있었다.


      평화롭다. 평화로워.


      그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음원으로 들었던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손안에 담기가 편했다. 그냥- 이게 연주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기술을 요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편안한 이지 리스닝이 없다.

       

       

       

      모차르트,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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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흐린 날을 걸으면서 레퀴엠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딱 오늘 하늘만큼이나 암울했고, 목소리는 한곳에 모여 있었으며, 악기들은 그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람 악기나 도구 악기나 울상은 아닌데 좀 울먹울먹거렸다.


      왜 이렇게 침울할까. 약간 먹구름을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이미 자리에 놓여 있는 먹구름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그곳으로 불러들이는 의식 같았다. 그 많은 목소리가 모여 없는 것을 불러내려 하니, 그 안의 열기가 얼마나 가득하겠는가.


      대리석 위든 황무지 평야 어디쯤이든, 목소리가 모이면 원래 없던 것이 그곳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그날의 모차르트를 차갑다고 묘사할 수는 없었다. 그 커다란 의식 앞에 초록색 후드 집업을 입고 앉아 있던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모차르트는 어쩌다 이곳에, 딱 이 계절에 찾아왔을까?


      그날은 단원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대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허공에 시선을 두기도 했다. 자세도 이리 고쳤다 저리 고쳤다 하면서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눈을 감고 듣는 편이 오히려 레퀴엠에는 더 좋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소리가 위로 넓게 오는구나. 그런데 마냥 멀리서 멋있게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흥미로웠다. 듣고 있는데도 ‘내가 뭘 듣고 있나’ 하는 생각이 반복해서 들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에는 내게 이 음악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말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를 믿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레퀴엠이 속한 커다란 세계 안쪽에 나를 놓아두어야 음악을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러기에는 출발점부터 '믿지 않는다'라는 말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러니 가만히, 얌전히 뒤따르지는 못하는 것이다.


      내게는 누구에게나 곁을 내어 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 아무나 객으로 받지는 않는 곳처럼 느껴졌다. 음악은 그런 내 사정과 관계없이 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수록 내가 그 안쪽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멍한 채로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종교가 있었다면 조금 더 흥미롭게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이 남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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