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30일,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 개봉 이후 한국은 지금 먼작귀 열풍이다.
일본 작가 나가노의 만화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난카 치이사쿠테 카와이이 야츠)’는 X(구 트위터) 연재만화로 시작했으나, 귀여운 캐릭터와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애니메이션화 및 극장판 상영까지 되는 등 현재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의 초반부로 다시 돌아가 보고자 한다. 해당 만화를 ‘작고 귀여워지고 싶은 욕망’과 ‘크고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각기 다른 캐릭터에 나뉘어 투영된 작품으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이다.
먼작귀의 시작은 나가노 작가의 개인 계정에 ‘살고 싶다’라는 멘트와 함께 올라온 한 장짜리 짧은 낙서 만화였다.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만화는 혼나면 귀엽게 울다가 도망치고, 힘들 때는 떼쓰다가 지쳐 잠들고, 기쁜 일이 있으면 춤을 추는 작은 소동물이 그려져 있다.
출처 나가노 작가 @ngntrtr X(구 트위터)
동물이라기보다도 어린아이에 더 가까울 것 같은 이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 삼인방 중 하나인 치이카와의 원형이 되는 캐릭터로, 이후 웹 연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정돈되었다. 캐릭터성은 대체로 유지되어 치이카와는 잘 울고, 몬스터 때문에 무서울 때는 싫다고 소리 지르며 떼를 쓴다. 기쁜 일이 있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탭댄스를 추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선 ‘이런 식으로 살고 싶다’라는 시선에 주목해 보자.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잠시 내려놓고,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 되어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다음 잠을 자고,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환호받는다. 그렇기에 ‘살고 싶다’ 시리즈는 수많은 책임과 의무에 짓눌려 있는 현대인들의 공감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하다.
만화 먼작귀, 출처 나가노 작가 @nanchiikawa X(구 트위터)
이런 맥락 속에서 ‘모몽가(하늘다람쥐)’의 캐릭터성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캐릭터로서의 ‘모몽가’는 몬스터 ‘데카츠요’가 몸을 빼앗은 상태다. 즉 ‘데카츠요-뭔가 크고 강한 녀석(난카 데카쿠테 츠요이 야츠)’의 영혼이 모몽가의 몸속에 들어가 있으며, 반대로 모몽가의 영혼은 데카츠요의 몸속에 있다. 편의상 현재의 모습을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다.
모몽가는 귀여워진 자신을 한껏 만끽할 뿐 아니라 쫓아오는 데카츠요에게 도발과 조롱까지 하며 많은 비난을 얻기도 한 캐릭터다. 이기적이고 고집이 센 데다 제멋대로라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만을 골라서 할 정도다.
이런 모몽가는 ‘작고 귀여워지고 싶은 욕망’의 꼭대기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작귀 친구들을 잡아먹는다는 다소 귀찮은 짓을 반복하지 않아도 이곳저곳에서 솟아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하늘다람쥐의 몸으로 돌아다니다 보면 누군가가 귀여워해 주기도 한다(설령 그것이 억지로 귀여워하라고 협박한 것일지라도).
잔뜩 귀여움받으려 하고,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피하고 싶은 욕망을 주도적으로 드러내는 모몽가의 모습은 귀여움을 의식하지 않는 다른 먼작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는 어쩌면 진짜 어린아이(치이카와)와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모몽가)의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만화 먼작귀, 출처 나가노 작가 @nanchiikawa X(구 트위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치이카와 웹 만화의 첫 시리즈인 ‘살고 싶다’ 1~6편 중, 6편에는 치이카와가 아닌 데카츠요가 등장한다. 훈훈하게 진행되던 시리즈는 갑자기 ‘뭔가 크고 강한 녀석이 되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짓누르고 음속으로 튀어 오르고 싶다‘라는 다소 무서운 내용으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 시기의 데카츠요는 아직 몸을 빼앗기 전이며, 이후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 되고 싶다’라는 욕망을 통해 몸을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반대로 작중 먼작귀 친구들이 랜덤하게, 혹은 어떠한 사건이나 감정적 변화를 통해 ‘몬스터(뭔가 크고 강한 녀석)’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몬스터가 된 캐릭터로는 ‘아노코’가 있다. 몬스터가 되며 강해진 아노코는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에 만족한다. 더 이상 힘들게 몬스터를 토벌할 필요도 없고, 귀찮게 하는 먼작귀 친구들은 거대한 몸과 강한 힘으로 가지고 놀 수 있다. 이런 아노코의 모습은 ‘살고 싶다’ 시리즈에서의 데카츠요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나가노 작가는 작고 귀여워져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크고 강해져서 모두를 누르고 싶은 마음과 같은 상반된 욕망을 만화가 진행됨에 따라 각기 다른 레귤러 캐릭터에 요리조리 배치하여 매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 상반된 욕망이 한 작가의 내면에서 동시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를 벗어던지고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과 모든 것을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서로 모순되어 보여도 동시에 공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