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80쪽 신경과학자의 과학 에세이를 읽는 선택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 사람이 고등학교 이후로는 과학과 상관없는 전공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두께로 인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이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책의 목차 때문이었다.
책은 작가가 태어난 1975년부터 1998년 이후 현재까지의 타임라인을 5개로 나누어 구성했다. 인생 전체를 다루는 에세이라는 의미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그렇구나’하며 가볍게 넘길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약물 중독 부모 밑에서 자란 그가 어떻게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는지 궁금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되짚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까지 다시 들여다보며 자신의 이야기로 적어내는 일은 어떤 마음으로 가능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쉽게 꺼내놓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누군가는 후회스러운 선택을, 누군가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시절을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둔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개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최근에 나 역시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었다.
성장 과정이라고 말하는 학창 시절은 시간이 지나며 예쁘게 기억되지만, 다시 떠올려 보았을 때 가족과 친구 그리고 학업을 이어가며 치열했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한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선망하는 자리에 도착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해진 것은 그가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는지로 바뀌었다.

데이비드 수실로의 어린 시절에는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 부모의 약물 중독과 가난, 돌봄의 부재는 어린 그가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여덟 살 아이에게 어머니는 자신과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조차 없는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가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이자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이 흔들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일찍 헤어져 살고 있던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온 편지에 아이들은 돈을 보내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들을 사랑하는지 묻는다. 답을 표시해서 돌려보내달라는 아이들이 보낸 답장 앞에서 오래 멈추었다. 자녀로서 너무나 기본적으로 채워져야 하는 조건 없는 사랑마저 직접 물어야 했다는 사실이 당시의 생활을 설명하는 어떤 문장보다 아프게 다가왔다. 그런 환경에서 데이비드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인다.
수학과 과학에 재능이 있었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몰두하는 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을 알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도, 능력을 알아도 그것을 펼칠 여건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재능이 실제 삶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한 상황들이 필요했다.
과학은 그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중요한 도구였다. 하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도 풀리지 않는 질문은 있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과학 탐구대회를 돌아보며, 정작 자신의 삶에서 중요했던 문제들은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복잡성의 영역에 있었다고 말한다. 실험에서는 조건을 살피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생활은 그렇게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녹슬어가는 못이 담긴 유리병들을 갖고 체육관에 서 있었을 때, 나는 이미 이러한 과학의 근본적인 한계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깔끔하고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내놓은 단순한 과학 탐구대회 프로젝트 때문은 아니었다. 여덟 살이었던 내 삶에서 정말로 흥미로운 질문들은 왜 어머니는 일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전쟁 지역이라 불리는 동네에 살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과학이 아직 풀어내지 못한 복잡성의 영역에 속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 61쪽
그의 삶을 서술하는 방식에 과학적인 묘사가 많이 쓰인다. 과학이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컴퓨터과학과 신경과학 분야에서 그의 삶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는 내용들이 중간중간 시각적 자료도 포함하여 등장한다. 그는 친절하게 설명해줬지만 따라가는 일은 늘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전문적인 용어와 과학적 설명이 등장할 때면 읽는 속도가 느려져서 한 번에 못 이해하고 앞 문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설명을 모두 내 지식으로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사람이 무엇에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지는 알고 싶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실 그의 뛰어난 능력이 발휘되거나 대단한 일을 성취하는 순간이 아니었다. 그는 스물두 살에 이미 눈에 띄는 능력을 발휘하고 성과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삶의 방향과 희망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그의 능력이 뛰어나 그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앞으로 그가 살아갈 이유까지 분명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 지점에서 뜻밖에도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경험이 다르고 그가 이룬 대단한 성취를 내 삶과 나란히 놓을 수도 없지만, 많은 에너지를 쓰고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마음은 읽어 내려가며 낯설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다가 지쳤다면,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고 정리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온 차이만 있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둘 다 길을 잃은 순간에 다다랐다.

책을 읽기 전에는 작가의 삶에서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줄 몰랐다. 한 과학자의 특별한 인생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돌아보고 있었다. 특히 라케르차 박사와의 만남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데이비드는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겪어온 일들을 돌아본다. 처음에는 상담 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던 그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라케르차 박사의 말에 점차 자신의 과거를 꺼내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안다는 것과 과거 기억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면서도 그때 자신이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외면할 수 있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더는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데이비드가 그랬다. 특히 그처럼 나아가기 위해 앞만 보려고 애써온 사람에게 뒤를 돌아보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렵게 벗어난 시절로 다시 끌려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싶어 했던 사람이, 훗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500페이지 가깝게 써 내려갔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만약 누군가 책의 일부만 볼 수 있다면 두 사람이 만나는 마지막 5부를 추천하고 싶다. 라케르차 박사와의 대화는 데이비드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게 했다. 이 만남은 그가 컴퓨터과학에서 신경과학으로 관심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로도 이어진다.

이런 데이비드의 삶을 알고 나니 그가 인생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 ‘창발’의 개념이 이해되었다. ‘창발’은 여러 요소가 상호작용하면서 개별 요소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성질이 나타난다는 과학적 개념이다. 이것은 데이비드가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현재는 절대 하나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삶에는 재능도, 상처도, 공부도, 과학도,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있었다.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영향받으며 관심의 방향이 달라지고, 자신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그가 지나온 삶을 읽는 독자들도 처음에 생각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걸을 만한 하나의 탄탄한 길이 아닌, 시작점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선택의 연장선으로 이어가며 만들어 나간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사랑받고, 완벽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지지 없이 살아왔다. 버티고 사는 것에 익숙한 어린 시절에 학습한 삶의 태도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한계에 다다랐다. 공황 발작이 일어나고, 두려워했다. 라케르차를 만나며 뉴욕에서 생활을 시작한 그를 보며 <리틀 라이프>의 주드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픈 과거를 직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그 시작에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480쪽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처음 느꼈던 책의 두께가 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히 두꺼운 책으로 설명하기에는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몇 가지 불행과 몇 번의 성취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삶을 길게 펼쳐 보인 덕분에 나도 그를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인생은 도전 과제가 끊이지 않아요. 하지만 인생은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정신분석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과거가 현재와 결합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는 것이죠. 자신이 무엇을 성취하고 싶은지, '왜' 그것을 성취하고 싶은지 탐구할 수 있습니다. 그 탐구는 마음 자체만큼 깊은 곳까지 이어지죠.”
<카오스의 가장자리> 390쪽
그가 이야기를 맺은 방식이 좋았다. 지난 과거의 상처들을 바라보고, 아프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자기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을 사랑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나의 모든 시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여전히 떠올리고 싶지 않고, 곱씹을 자신 없는 순간이 있다. 그때의 나를 온전히 사랑하려면 세상을 바라보고 배우는 시간만큼, 나를 관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속도와 시선을 신경쓰는 우리는 그럴 시간을 갖지 못한다. 사치로 여기기도 한다.
연약하고 부족했던 그때의 나도 나름의 힘을 다했고, 그런 선택들과 만남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는 이곳까지 왔다. 그러니 이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그 아이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는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신경과학자가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초등학교 2학년 쓰레기통을 뒤지고 물건을 훔치며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친구와 공평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 보너스 목숨을 얻으려고 눈을 반짝이는 어린아이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