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성취는 어디까지가 그만의 것일까. 우리는 흔히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 방식을 설명한다. 하지만 온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성공은 없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혼돈 속에서 잠재력을 꽃피운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수실로'의 이야기이다.
약물 중독에 빠진 부모 밑에서 혼돈의 유년을 보낸 데이비드. 그는 보육원 생활을 거쳐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비상한 재능을 살려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어린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봐 준 선생님을 만나 처음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 그는, 이를 발전시키면 전쟁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뛰어난 지능은 어린 아이의 상처까지 감싸 안지 못한다. 어른들의 인정을 갈구하던 아이는 끝내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인다.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나 자신을 뛰어난 지능으로 정의했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그것을 이용해 어른들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고모는 다른 이유로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 자체의 본질적 가치에 기반을 둔 인정이었다. (p.253~254)
그에게 진정 필요한 건, 무언갈 증명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데이비드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까지 여정은 적잖은 답답함을 안겨준다. 시궁창 같은 삶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동안, 그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 오히려 그의 날개를 꺾는 듯한 순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또 상처를 받으면서도 도움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모순은 저자의 삶을 단순한 극복의 서사로 읽을 수 없게 만든다.
그 짧은 몇 주 동안 나는 '정상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느꼈다. 그것은 어른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내 존재가 중요한 의미가 있고, 내가 없으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p.119)
아이에게 살아가는 환경은 세계의 전부와 같다. 그 안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믿게 되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한곳에 오래 고착화된다. 발버둥 치지 않아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 그건 저자가 짧게 경험했던 여름 방학에 있었다.
보육원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여름이면 찾아와 그와 누나를 데리고 잠시 바깥 세상을 보여준 친척들이 있었기에, 데이비드는 최악의 상황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이 완벽한 보호자라서가 아니라, 그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누나와 어릴 적 친구 샤일로의 삶은 어쩌면 데이비드가 마주할 수도 있었던 다른 결말이었다. 자신은 재능을 발견하고 기회를 얻어 저명한 신경과학자가 되었지만, 누나는 오랜 결핍 속에 방황하다 생을 마감했다. 샤일로는 빈민가의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채, 구걸하는 삶을 살았다.
나이가 들어 삶을 돌아보게 된 데이비드는 깨닫는다. 한 사람의 성취에는 그 사람이 기울인 노력뿐만 아니라,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지탱해 준 운과 때, 그리고 주변의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는 사실을. 같은 출발점에서 갈라진 여러 갈래의 삶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혼돈이 독특한 관점과 회복력, 창의성을 주었을지라도 그 자체가 성취의 필수 조건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가능성 또한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을 겪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 책임의 대상을 자신이 아닌 명확한 원인 제공자에게 주는 것, 그리고 내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 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과거의 그림자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큰 무게를 지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제 내 삶을 정의하는 것은 과거에 내게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와 내가 무엇을 만들어가는가에 달려 있었다. (p.441)
어쩌면 저자는 불행을 탓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자신이 연구한 과학적 지식을 적용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과거에는 설명하지 못했던 카오스를 이젠 설득력 있는 언어로 설명하며 비로소 진정한 치유에 가닿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