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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인류세를 이해하기 위한 현장 안내서 - 패치 인류세

세계와 관계 맺는 여러 방식

by 백소현 에디터
2026.10.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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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JYP엔터테인먼트가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추진하던 신사옥 건립 계획을 철회했다. 2023년 약 755억 원에 부지를 매입한 뒤 지하 5층, 지상 17층 규모의 사옥을 계획했지만, 매입 당시 공원으로 계획됐던 신사옥 앞 부지가 SH공사의 용도 변경으로 18층 규모의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는 용지로 바뀌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에 사생활 침해 우려 등으로 당초 구상한 사옥의 취지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JYP 측은 건립 계획을 접게 됐다.


      SH공사는 주변 토지이용계획이 변경될 가능성이 당초 분양 조건에 명시돼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신사옥의 설계를 맡았던 유현준 교수는 공원으로 예정돼 있던 부지를 상업 및 업무시설 용지로 변경한 결정에 대해, 당장의 재정적 필요를 위해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산을 소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원을 단순히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보존해야 할 도시 기반 시설로 바라본 것이다.


      해당 이슈를 통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빈 땅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일을 곧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빈 공간을 마주하면 그곳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무엇을 지을 수 있을지부터 상상하게 된다. 새로운 것을 얻는 과정에서 기존의 무언가는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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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치 인류세>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당연함에 물음표를 던진다.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균열이 생기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예가 메르카토르도법이다. 오늘날 친숙한 메르카토르도법은 둥근 지구를 평면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면적을 실제와 다르게 나타낸다. 유럽과 북아메리카 등 고위도 지역의 면적이 실제보다 크게 표현되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는 식이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재현한 결과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의 시선은 특정 관점 안에 갇히기 십상이다. 나아가 책은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보며 돌보는 다른 방식들을 지우는 데 우리 역시 공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이제 개발은 그것이 이루어진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특정한 장소에서 시작된 변화는 다른 장소와 연결되고, 그 영향이 누적되면서 인간과 비인간, 생태계와 인프라 사이의 관계를 재편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삶과 관계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발생하는데, 바로 책에서 인상 깊었던 개념(현상) 중 하나인 '파열'이다.

       

      4장에서 설명하는 '파열'은 기존의 제국주의적, 산업적 인프라가 반복 및 건설되면서 지구의 생태계를 얼마나 변화시켰고, 복원이 불가능해졌는지를 이야기하는 개념이다. 책은 보다 쉽게 '우물'을 예시로 든다. 우물을 파는 일은 어찌 보면 물을 얻기 위한, 단순한 시설의 설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물이 만들어지고, 소들이 물을 얻기 위해 우물 주변으로 모여들게 되면 우물 주변의 풀은 모조리 소의 먹이가 된다. 이로 인해 주변은 풀을 중심으로 한 생물학적 군집이 파괴된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가축의 이동과 분포를 바꾸고 나아가 식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건 우물이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인간이 특정한 목적에 따라 만든 시설이 그 목적의 범위를 넘어 다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사소한 개입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그 결과로 기존의 관계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면, 변화는 처음의 의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 파열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서 드러난다. 

       

       

      짓기는 의도치 않게 주변 생태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영향은 대부분 간과되고, 특히 짓기 프로젝트를 고안한 사람들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패치 인류세> 11장 : 짓기와 허물기, p.351

       

       

      책은 그 밖에도 11장 '짓기와 허물기'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짓고 더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것을 의도적으로 허물거나 '짓지 않음'으로서의 허물기 방법에도 주목한다. 여기서 허물기는 단순한 파괴가 아닌, 기존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고 그 질서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훼손했는지를 돌아보는 일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짓기와 허물기’는 비단 건축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닌 듯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채우며 머릿속 생각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글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후 삭제와 수정의 단계가 필요할뿐더러, 의도적으로 비워낼 줄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공들여 써내려 간 글을 지우는 일이 아깝고 망설여지지만, 비워내야 비로소 드러나는 의미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다시 JYP 신사옥 건립 철회 사례로 돌아와 보자. 공원으로 계획됐던 부지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온다면 당장의 경제적인 활용도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원이 제공할 수 있었던 녹지와 휴식 공간, 그리고 미래 세대가 누릴 수 있는 도시의 여유 공간은 줄어든다. 유현준 교수가 지적했듯, 공원은 단순히 개발되지 않은 땅이 아니라 도시가 미래를 위해 남겨둘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책이 던진 질문은 결국 무언가를 더하는 일에만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의 시선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위기가 지나친 개발과 확장, 세계를 바라보는 익숙한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면, 해법을 역시 '짓는 일'에서만 찾을 수는 없을 테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남겨두어야 할지 묻는 일. 발전을 새로운 건축물이나 인프라의 확장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우리가 지켜야 할 공간과 관계까지 함께 고려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이태수, 「JYP, 고덕 신사옥 건립 최종 철회…"사업 진행 어려워"」, 연합뉴스, 2026.10.08.

      서울특별시 대변인, 「[설명자료] JYP, 고덕 신사옥 건립 최종 철회」, 서울특별시,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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