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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근 삼십 년을 한 지역 안에서 살아왔다. 내 기억으로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아주 어린 날부터, 이제는 방 한 구석에 먼지가 드문드문 내려앉은 사진앨범 속 풍경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곳. 물론 이후로도 몇 번의 이사가 있긴 했지만, 같은 지역 내의 이사였던지라 내게 고향과 같은 동네는 여기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본가에 올라갈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은 지겹기보다는 애틋하다. 봄이면 집 앞 공원에는 커다란 목련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혔고 여름이 되면 유달리 녹음이 짙어지던 이름 모를 나무들, 길거리에 한바탕 쏟아진 은행 열매를 밟지 않으려 조심히 걷던 어느 가을날이 있었고, 해가 짧은 겨울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한 눈을 발로 쓱쓱 밀어내던 기억이 선명한 곳.


아마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면 이 정도까지의 회상에 잠기진 않았을 거다. 매일에서 가끔이 되어버리는 순간, 괜스레 애틋해지고 그리워지는 마음. 나의 인생은 대개 이런 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내 마음속 미련은 어찌나 동그란지. 평소에는 꽉 쥐고 있던 미련이 손에서 떨어져 버린 순간, 저 멀리로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어느새 감당하지 못할 크기의 눈덩이가 되어 제 살집을 불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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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애착바지였던 분홍색 프릴 바지, 동네 놀이터 모래 속에 묻어두었다 끝내 찾지 못한 500원짜리 동전,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 맥줏집,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당시에는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러나 이제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다가 괜히 울적해진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버리는 순간, 나의 이별은 늘 서러워진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이별 앞에서 서툴고, 우왕좌왕하고, 덤덤하지 못하며 멋도 없다. 어떤 이별은 떠올리기만 해도 눈가가 시큰하고 아리다. 이별에는 굳은살 따윈 없었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다.


왜 사람은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그러면 있는 힘껏 오래오래 안아줄 수 있을 텐데, 당연한 줄 알았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대할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왜 이렇게 지나간 과거에 연연할까 생각했다. 내일로 가고 싶은데, 오늘의 나는 자꾸 어제만 들춰보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속상했다. 지나간 일에 너무 마음 쏟지 말자는 말은 내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주문과도 같아서 그럴수록 자주 떠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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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인생에서도 한 번쯤은 이성적이고 준비된 이별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전 직장에서의 마지막 출근날, 나중에 오늘을 돌이켜봤을 때 미련 한 톨 남지 않게 출근길부터 하나하나 눈에 담겠다고 다짐했다. 근무를 마치고 팀 단톡방에 남길 메시지도 퇴사 일주일 전에 썼다. 고르고 고른 말로 너무 감정적이지는 않지만 빠짐없이 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그렇게 정돈된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이 건네는 케이크에도 여느 때와 달리 울지 않았고, '또 연락해'라는 말을 남기며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잠도 잘 잤다. 그런데도 가끔씩 아직 남아있는 동료들의 이야길 들을 때면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애써 지우려 할수록 얼룩은 자꾸 번졌다.


그제야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내겐 완벽히 준비된 이별이란 없구나. 어쩌면 평생을 준비되지 못한 채로 지나가버린 날들을 그리워하며 살겠구나,라는 걸.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앞에서 짙은 농도의 미련을 뚝뚝 흘리며, 두고 온 지난 기억들 사이에 애틋함과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책갈피를 끼워 넣는다. 아마 축축하게 젖은 페이지가 다 마를 때까지 넘기지 못할 거다. 마르더라도 금세 다시 들춰보겠지.


그렇다면 크게 노래를 불러야겠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연연(戀戀)하다'에는 집착하여 미련을 가지다라는 뜻도 있지만, '애틋하고 그립다'라는 형용사적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영영 떨쳐내지 못할 나의 연연한 날들에게 보내는 노래. 그때는 몰랐던 뒤늦은 답장을 전해본다. 아마 이 편지는 아주 가까운 미래의 내가 받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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