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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막은 이제 너무나 일상적인 콘텐츠가 되었지만, 공연에서는 아직 그렇지 않은 실정이다. ‘공연에 자막이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대사나 가사를 직접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또한 한국 공연장을 방문한 외국인 관객의 이해 또한 돕는다. 그리고 청인일지라도 공연을 더욱 깊숙이 이해하고 싶은 뮤덕들에게도 유용하다.
이렇게 모두가 하나의 콘텐츠를 동등히 향유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롯플래닛’은 실시간 공연 자막 서비스 ‘유니스텝’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관객석에 설치한 소형 단말기를 통해 공연의 대사, 효과음, 배경 음악 등을 설명하는 자막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현재 <한복 입은 남자>, <라이프 오브 파이>, <은하철도의 밤>, <긴긴밤>에서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공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시선에 활자를 띄워주는 오롯플래닛의 최인혜 대표는 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어떤 고충이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낄까? ‘공연 자막’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금부터 하나씩 알아가 본다.
공연 자막 서비스를 운영하시면서, ‘뮤덕’으로서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확실히 공연 산업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기획사 대표님들이나 창작진분들을 만날 때 제가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조금 더 제 제안을 들어주시는 느낌을 받기는 했어요. 우리 공연에 대해서 이렇게 애정이 있고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데, 굳이 뭐 안 해줄 이유는 없지. 약간 이런 게 있어서 조금 더 너그럽게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반대로, 너무나 사랑하는 분야이기에 겪게 되는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배우들을 실제로 만나거나 하는 것들이 엄청 설레고 떨렸었는데, 이제 그냥 리허설 할 때 나와 계시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무뎌지는 게 있어요. 근데 그런 부분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따뜻한 연기를 하는 배우인데 다른 어셔들한테 친절한 걸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진짜 저 사람 자체가 따뜻하니까 저런 게 나오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공연을 자주 안 보러 가게 되는 게 있어요. <라이프 오브 파이> 준비할 때는 콘솔에 전선을 연결할 수가 없어서 극장 라인에 따라서 전선 정리를 하는 무대 감독 체험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걸 언제 해보겠나 싶으면서도, 이제 이런 것 때문에 다른 공연장 가면 어디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고 그런 것들을 좀 훔쳐보게 되면서 좀 더 넓게 볼 수 있게는 됐지만 옛날처럼 순수하게 보기는 어렵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배리어프리 자막 회차를 진행했을 때가 <사의 찬미>때였죠? 무대가 아닌 관객석을 바라보며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공연장이었던 페이코홀이 콘솔 벽이 좀 높아서 그 앞에 관객석이 안 보여요. (감동 바사삭)
그래도 관객분들 앉는 거는 다 봤었어요. 공연이 시작하는 순간 진짜 땀이 너무 많이 나더라고요. 요즘에는 공연 전 리허설을 할 때 내부 테스트를 해보고 실제 관객들을 만나요. 그런데 그때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처음으로 자막이 나갔어요. 그래서 수백 번 본 작품이고 자막은 그냥 넘기면 되는 건데, ‘이거 실제 관객들이 있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딱 들면서 너무 떨렸어요.
그때 지인분이 보러 왔었는데, 그분은 자막 어플을 만드는 데 투입이 됐던 분이라서 자막을 넘기는 것과 기기에서 보이는 것 사이에 약간의 딜레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사나 노래가 나오기 전 조금 더 빨리 자막을 넘겼다는 걸 이해를 한 상태에서, 자막이 너무 클린하게 나왔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다시는 테스트를 하지 않은 채 본 공연을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공하시는 자막에는 대사뿐 아니라 넘버 가사도 들어가고, 무대의 정적이나 효과음 등 비언어적 요소도 들어가잖아요. 대사 및 가사나 비언어적 요소를 자막으로 옮길 때 가장 고심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이 부분에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데 전 그 고민을 사치스럽게 즐기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쓴 극도 아니고 제가 쓴 문장도 아니고, 또 배우도 아닌데 이렇게 대본을 들여다볼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모니터링 영상을 보면서 그 호흡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공연을 많이 본 사람들은 어떤 부분이 ‘킥’인지 알잖아요. 세 문장이 있을 때 마지막 문장을 위해서 앞 문장이 나오는 거면, 세 문장이 같이 나와 있으면 안 되죠. 그래서 그 호흡을 맞춰서 세 번째 문장을 나중에 보여준다든지 해요. 그런 것들이 배우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배우에 따른 편차로 인한 오류가 없을 정도로는 그렇게 조작을 해놓는 것 같고요.
노래하거나 빠르게 주고받는 대사들도, 사실 한 8문장이 같이 있으면 이 문장을 첫 번째 문장에 붙여야 하는지 세 번째 문장에 붙여야 하는지도 고민하거든요. 이 말이 느낌으로는 두 번째 문장에 붙였으면 좋겠는데, 앞의 말에 대답을 하는 문장이니까 한 번 놓친 분이 이해를 못 할 것 같다. 그러면 아쉬우니까 앞의 문장에 붙여서 말이 되게끔 성립이 되게 조합을 맞추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라이드> 공연을 할 때는, 거기에 클래식 음악이 많이 나오고, 특히 차이콥스키 음악이 테마곡이었어요. 근데 그게 너무 극적으로 중요한 장치인 거에요. 그냥 잔잔한 음악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차이콥스키의 무슨 곡이다’라는 거를 계속 반복을 해서 나올 수 있게 제시를 해놓고 혼자 되게 뿌듯해하면서 슬퍼했어요. ‘저 대사를 하는데 저 음악이 나오다니 너무 잘 만든 공연이잖아..?!’
요즘에는 자막 외적으로도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마 <프리다> 때 거의 처음 했던 것 같은데, 공연 자체가 분위기가 재밌고 춤추는 장면이 많으니까, 그런 장면에서는 기기에 그냥 자막을 하나도 안 띄워 놓는 것보다는, 탬버린이나 춤추는 이모티콘이라도 하나 넣어 볼까 해서 넣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거에요. 그냥 보시는 분들도 자막이 좀 지루하거나 할 수 있는데 그때 한 번 환기가 될 것 같았어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동물원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진짜 온갖 동물들이 막 소리 지르거든요. 그래서 ‘동물들이 소리 지른다’라고 적기보다는 거기 나오는 동물들의 이모티콘을 띄워 놓아요. 그러면 ‘끼끼’ 이렇게 동물 소리를 적지 않아도 ‘얘네가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구나’라는 것들이 표현이 되죠.
재밌네요. 자막 서비스를 이용하신 분들이 되게 많이 후기를 남겨주시잖아요. 관객분들이 남겨주신 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무엇이었나요?
난청인 협회에 계신 분이 아이가 청각 장애인인데,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싶어 한다고 계속 피드에 올리셨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마침 그 공연에 자막을 제공하게 돼서 초대를 해드렸어요. 항상 아이가 공연 볼 때 옆에 앉은 엄마한테 내용을 물어봤었는데, 이번엔 한 번도 안 물어보고 재미있게 봤다고 후기를 남겨주셨는데, 진짜 너무 좋은 거에요. 그 글이 올라온 날 아침에 일하기 싫고 좀 현타가 왔었거든요. 이 서비스를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구조로 하는 게 맞으려나? 시도만 하고 끝냈어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할 때쯤에 딱 그 영상을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중국, 일본 분들이 남겨주신 후기도 저는 너무 감사해요. 사실 공연 보고 후기 남기는 거 너무 귀찮은 일이잖아요. 근데 이 공급자한테 한번 꼭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중국 채널에서는 ‘언니 덕분에 잘 봤어요’ 이렇게 한국어로 적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너무 좋아하던 공연인데 이제야 처음으로 이해했다’고 말해주시기도 해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결국 외국인들도 청국장애인이랑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과 후, 공연장을 찾을 때 인혜 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예전엔 저도 공연장 들어갔을 때 그냥 무대만 구경했었는데, 이제 들어가면 전선이 어디로 빠지는지, 콘텐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이런 걸 봐요. 그리고 팔걸이 만지는 게 습관이 됐어요.(웃음) 이 공연장에서 언젠가 자막 서비스를 하러 올 수도 있으니까. 팔걸이마다 자막 기기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니까 계속 만져보고 ‘이 공연장은 ‘ㄷ’자 형 거치대로 가져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요.
2026년도가 벌써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갔네요. 2026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뭔가 올해에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자막 서비스 이용 관객이 그냥 별도의 거치대나 장비 없이 객석에서 휴대폰만 들고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미국 같은 곳은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데는 중간에 화장실도 가고 하는 편한 분위기긴 하겠지만요.
기기 기반으로 했을 때는 자막 서비스를 그 기기가 있는 극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근데 어플이나 NFC나 이런 걸로 하면, 사실 업로드만 다 해놓으면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자막을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가능성을 띄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고민하고 있는데, 자막 서비스 이용 관객의 옆에 앉은 사람이 이 정도는 봐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려나? 그러면 조금 더 너그러운 극장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잖아? 이게 너무 큰 과제인 거에요. ‘사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라는 생각도 하지만, 사실 극장 맨 뒷자리에 휴대폰이 들어가는 것도 원래 안 되는 거였는데 어쨌든 가능해진 거니까. 한 줄씩 앞으로 나가보게 하는 거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정말 기기를 빌리지 않고 자기 휴대폰으로 어플에 들어가서 자막을 보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10년 뒤, 한국의 공연 문화가 어떻게 변해 있기를 바라시나요?
뭔가 이 자막에 대한 욕심이 막 엄청 크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없는 공연장을 너무 많이 봐왔다 보니까, 사실 크게 기대는 안 하는 것 같긴 한데. 근데 그래도 극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서비스로는 좀 더 당연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페라글라스 대여하는 극장도 있는 것처럼, 굳이 막 엄청 어렵게 뚫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냥 당연히 ‘거기 자막 있지’ 그렇게 인지하고 오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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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발음 그대로 하면 [이네]인데, ‘가능하게 하다’라는 뜻의 영단어 enable과 비슷하다. 그래서 종종 닉네임으로 이네이블을 쓰곤 한다. ‘가능’이라는 단어는 무적 같은데 ‘가능하게 하다’는 그렇게 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무적은 아니여도 노력해서 되게 만드는 과정이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 최인혜 대표 블로그 중 발췌
최인혜 대표는 그 닉네임과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어떠한 불빛도 금지된 극장에서 핸드폰을 켜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 핸드폰에 공연 대사와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청각장애인과 외국인들도 공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앞으로도 최인혜 대표의 도전들을 통해 ‘가능하게 될’ 극장의 새로운 모습들이 기대된다. 모두가 동시대의 문화로 연결되는 세상을 향해, 이번 주에도 어딘가의 극장에서는 누군가가 자막을 통해 무대 위 세상을 만날 것이다.